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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Sep 10. 2022

인간은 왜 이따위로 생긴 것일까?-6

2. 진화론의 진화

라마르크는 1809년 저서 '동물 철학'에서 '동물들은 일생동안 자신의 필요에 의해 특정 형질을 발달시키며 이를 자손에게 물려준다'라고 발표하였다. 라마르크 주의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문장이다. 그런데 이 문장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가지 가설을 주장하고 있다. '동물들이 필요에 따라 특정 형질을 발달시킬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이 유전된다'는 것이다.


우선 첫 번째 가설은 우리의 경험상 일견 옳은 것처럼 보인다. 생물 개체는 성장, 노화하면서 또한 인생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변화한다. 사람을 보면 알 수 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탯줄을 달고 태어난 아기가 점점 몸이 자라고 머리가 깨어 한 사람 분의 제 몫을 하다가 나이가 들면 얼굴에 주름이 지고 체구는 다시 왜소해지며 등이 굽는다. 여기까지는 자연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성장과 노화에 경험과 훈련이 더해진다면 문제가 다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몸의 단련을 열심히 한다면 근육을 키워 우람한 체격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커진 몸으로 장정 두세 사람의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 머리도 마찬가지이다. 상인의 아들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장사를 배워가며 셈하는 법을 익힌다. 팔고 사는 물건값들을 끊임없이 계산하다 보면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꼭 손가락을 꼽지 않고도 머릿속으로 복잡한 주판알을 튕길 수 있을 것이다. 즉 셈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이 발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획득 형질이라고 한다.


만약 이런 획득 형질이 자손에 전달된다면 어떻게 될까? 바디 빌더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몸이 클 것이고 그가 일생동안 더 노력한다면 아버지보다 더 큰 체격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상인의 아들의 아들은 선천적으로 남들보다 셈이 빠를 것이고 그의 남은 일생 동안 그 기술을 더 갈고닦는다면 그의 아버지보다 더 빠른 계산 능력을 가질 것이다. 라마르크는 두 번째 가설에서 분명히 말하였다. 획득 형질이 유전된다고 말이다. 즉 한 세대에서 성장, 경험한 것이 생물의 형태와 성질에 영향을 주며 이것이 자손에 전달되기 때문에 세대가 반복되면 생물체는 서서히 그 형질을 바꾸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형질은 발달해서 전달되는 반면, 그렇지 않은 형질은 퇴화해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생물은 점점 환경에 적응하기 용이하도록 변화하게 되며, 이것이 긴 시간에 걸쳐 누적되는 것이 곧 진화라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https://m.blog.naver.com/orbital__/220045005723


라마르크가 생각하기에도 이런 설명은 독자들을 이해시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여겼나 보다. 그의 가설을 아주 쉽게 설득하기 위한 예시를 들었다. 바로 귀여운 기린을 등장시켜서 말이다. 기린이라는 동물의 가장 큰 특징은 몸통과 다리에 어울리지 않게 긴 목이다. 기린의 목은 왜 그리 길어졌을까? 라마르크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원래 기린의 조상은 목이 짧았다. 목이 짧은 조상이 살던 시기에는 기린의 먹이가 되는 나뭇잎이 달린 나무의 키도 작았다. 그런데 환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키가 작은 나무들이 사라지고 키 큰 나무들만 남게 되었다. 기린은 나뭇잎을 따먹기 위해 목을 뻗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린의 목이 아코디언처럼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용을 많이 해서 신체의 일부가 발달했다는 말이다. 목을 길게 늘린 기린의 자손은 원래 목이 길게 태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나무의 키가 점점 자랐다. 기린의 자손들은 목을 더 늘려야 했다. 그렇게 해가 바뀌고 세대가 이어지면서 기린의 목은 하염없이 길어졌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기린들이 그 진화의 결과물이다. 만약 기린이 나뭇잎이 아닌 땅에 자란 목초를 뜯어먹는 동물이었다면, 아니면 기린의 먹이가 되었던 나뭇잎이 달린 위치가 높아지지 않았더라면 기린은 아직도 짧은 목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생명체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신체의 일부를 발전시키고 이렇게 얻어진 형질의 변화가 후손에게 그대로 전달되면서 서서히 진화가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자, 여기까지 들으면 라마르크의 가설은 꽤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독자들은 마음 한 구석에 무언가 찜찜함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러면 내가 대신 라마르크에게 질문해 보겠다.

라마르크의 동네에 목수가 살고 있다. 목수는 단단한 나무를 깎아내기 위해 대패질을 하고, 못을 박기 위해 망치질을 반복한다. 그러면서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히게 된다. 이것은 손바닥 가죽을 두껍게 해 줘서 목수가 그의 험한 작업을 할 때 손에 가해지는 충격을 줄여준다. 굳은살이 목수로 하여금 손에 고통을 덜 느끼고 쉽게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즉, 환경에 적응하기 쉬운 우수한 형질이 개발된 것이다. 열심히 일하던 목수가 혼인하여 아들을 낳았다. 목수는 우선 아들의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자신의 뒤를 이어 목공술 가업을 이어받아야 할 아들이 목수에 적합하게 태어 낳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아들의 손바닥은 솜뭉치처럼 부드럽다. 혹시나 성인이 되고 나면 굳은살이 나타나지 않을까 기다린다. 하지만 굳은살은 여전히 돋아나지 않는다. 아버지에 의해 획득된 형질이 왜 아들에게서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왜 기린의 목은 점점 길어지는데 목수 집안 자손들의 손은 짐승의 가죽처럼 강해지지 않는 것일까? 이것은 라마르크의 가설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가 가진 의문을 선대의 과학자들이 안 가졌을 리가 없다. 과학자들은 운동으로 근육을 발달시킨 동물을 번식시킨 결과 그 자식은 근육이 발달한 상태로 태어나지 않음을 확인하였다 운동을 시키지 않은 개체의 자식과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독일의 어느 과학자는 생쥐의 꼬리를 계속 자르고 그 후손들의 꼬리 길이를 측정해 보았다. 하지만 후손들의 꼬리는 짧아지지 않았다. 획득된 형질이 유전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즉,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앞서 말한 두 번째 가설 '획득 형질이 유전된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으면서 계속 발목이 잡혔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이치에 맞는 가설이라 하더라도 관찰이나 실험에 의해 증명되지 않는다면 진실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 과학이다. 따라서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오랫동안 과학적 이론으로서의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을 무턱대고 무시할 수는 없다. 그의 가설은 과학사에서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은 다양한 가설들이 제시되고 그것이 냉혹한 검증의 과정을 거쳐 모순이 없고 재현성이 확실한 것들만 살아남는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살아남는 것들은 확립된 이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이것들이 쌓여나가 향후 새로운 발견과 발명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학적 사고가 등장하기 전에는 '생물은 신이 창조했으며 줄곧 변화하지 않았다'는 증명되지 않은 가설이 있었다. 이 가설은 종교적인 이유만으로 진리라고 불리었으며, 검증이라도 하려 치면 신에 대한 의심이자 도전으로 여겨 조롱과 탄압이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용감한 라마르크는 다윈에 앞서 '최초의 진화론'이라고 할 수 있는 가설을 신심으로 충만한 인간 세계에 던졌으며 당대 및 후대의 과학자들이 이 가설이 맞는지 자유로이 검증을 시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것이 라마르크의 위대한 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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