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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Sep 21. 2022

나는 또 왜 이리 생겨먹었을까?-6

중년의 문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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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 가장 처음 올린 글 몇 편에서 내가 왜 이래저래 책 읽기를 다시 시작했는지 적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중년에 이르러, 정확히는 갱년기에 들어 내가 그동안 이뤄왔던 것들에 대한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뤄왔던 것이라 하면 청년기부터 내가 종사했던 직업에 관련한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조금 더 넓게 확장하자면 가정 다반사를 포함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아내와는 이미 20년 가까이 결혼 생활을 이어왔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이제 막 성인 딱지를 달기 시작했다. 아내도 아이들도 이제는 나의 손길이 크게 필요하지 않았고 또한 그들도 그러기를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는 그리 생각했다. 나는 난데없는 고독감을 느꼈다. 칠흑같이 깊은 밤 허허벌판에 동떨어진 기분이었다. 나는 보이지 않는 암흑 속으로 양팔을 휘저었다. 무엇이라도 손 끝에 닿는다면 나의 오감을 총동원하여 정성스럽게 그것을 쓰다듬고 끌어안으려 하였다. 그러나 잡히는 것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의 유치한 고민이 감정의 사치였을 수도 있다. 아내가 고백하건대 그때도 아내는 나를 무척 걱정하였다고 한다. 아이들도 갑자기 달라진 나를 챙겨주려 애썼다고 한다. 그러니까 결국 나는 스스로 줄을 끊고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연이 된 꼴이었다. 연은 바람을 맞아 날아오르려 하고 줄은 연을 구속하기 위해 팽팽하게 긴장한다. 원심력과 구심력, 그 두 가지 힘이 균형을 잡지 않으면 연도 끈도 아무런 기능을 못한다. 줄은 연을 잡고 있었지만 연은 줄을 베고 자신을 책임져 주지도 않을 바람을 타고 날아올랐던 것이다.


한참을 방황하던 나에게 다시 다가와준 것은 오래전에 잊고 지내던 책들이었다. 우연히 내 방 책장에 꽂혀있던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십 수년 전 읽었던 책이었다. 그 당시 나는 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였고 살아가는 것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였다.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하려고 하였다. 어차피 손해 볼 것은 없었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그렇구나. 어린 시절 나는 책 읽기를 무척 좋아했었지. 그것을 지금 다시 시작해 보면 어떨까?'하고 말이다. 결국 나는 그 책을 빼내 들었다. 여기서 반전이 있을 만도 하건만 역시 오랜만에 다시 읽는 책은 별로 재미있지 않았다. 지루한 며칠을 보내던 어느 날 나는 몇 장 읽지도 않은 책을 책상 위로 심드렁하게 집어던졌다. 그때 문득 눈에 비치는 것이 있었다. 책 표지 안쪽의 속지였다. 예전부터 심심치 않게 나는 책을 구입한 감회나 다 읽고 난 후 느낀 점을 속지에 적어놓곤 했었다. 그것이 표지가 펄럭이며 들춰진 것이었다. 궁금증이 생겨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속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 2002년 5월, 우연히 집어 들었던 이 책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이 얇은 책을 통해 나는 2500년 전 그리스를 여행했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그리고 에우리피테스(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작가들)를 처음 만났다. 그들이 나를 전율케 했다. 그리고 라오콘(고대 그리스의 석상, 나중에 소개해 드릴게요)에 눈물 흘렸다."


이 책들이예요.


나는 갑자기 흥미가 동하였다. 젊은 시절의 내가 시간을 뛰어넘어 나이든 내 귀에 속삭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젊은 나를 전율케 하고, 무엇이 젊은 나를 눈물 흘리게 했는지 찿아야 할 참이었다. 다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숙독하기 시작했다. 정신을 집중하자 내 목소리 뿐 아니라 작가의 숨결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글이 소리로 들리는 순간 감동하지 않을 재간은 없다. 나는 근 20년 전처럼 다시 전율하고 눈물 흘렸다. 감동은 한 순간이지만 여운은 오래 간다. 나는 다시 책읽는 즐거움을 흐릿하게나마 다시 깨달았다. 연이어 읽을 책들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세상에 맥락없는 우연은 없다. 대부분은 필연이며, 그렇지 않게 보인다면 필연이 우연으로 가장하였거나 들키기 않게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시작한 책읽기는 여러 분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계속)


*표지 이미지 출처: 서강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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