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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Sep 28. 2021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는가

초보 작가의 고백-2

글이라는 것이 다짐만으로 쓰여지는 것은 아니다. 마치 우물에서 퍼내는 맑은 물처럼 글로 쓸 재료들과 생각이 마음속에 고여 있어야 한다. 고이다 못해 솟아나는 샘물처럼 생각이 넘쳐난다면 타이핑하는 손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주옥(珠玉) 같은 글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마음속은 메마른 우물과 같아서 박박 긁어모아도 한 바가지가 채 되지 않는 흙탕물만이 고여 있는 경우가 많다. 맑은 물이 찰랑찰랑 고이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과 학습, 주위에 대한 관심(關心)과 공감(共感)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쉽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독서(讀書)이다. 하지만 독서라는 지하수맥 (地下水脈)은 수원지(水源池)에 따라 색깔이 다른 법이다. 예를 들어 시로, 소설로, 희곡으로 독자들의 감성을 아우를 만한 물이 붉은색이라면 나의 우물에 고인 물은 전공 서적만을 읽어 고인 푸른색이었다. 푸른색 물로 붉은 옷감을 물들일 수는 없었다. 이렇듯 나의 시, 나의 소설, 나의 희곡을 쓰기 위한 노력은 시작부터 막혀 있었다. 할 수 없이 나는 방향을 바꿨다. 우선 우물에서 새어 나오는 푸른 물로 푸른 옷감부터 물들여 보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내 전공 분야의 환자들을 위한 질환 설명서를 쓰기 시작했다. 우물은 충분히 차 있었다. 목 디스크, 후종인대 골화증, 경추 불안정 등 세 권의 책을 한 달 만에 써 내려갔다. 생각은 날았고, 손은 달렸다. 거침이 없었다. 나는 일반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아주 쉬운 용어로 재미있는 비유를 써가면서 내용을 만들었다(그런 줄 알았다). 완성된 원고를 들고 예전에 함께 정형외과 교과서를 편찬 한 경험이 있는 출판사 사장님을 설득하여 출간을 부탁드렸다. 나는 나의 책들이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차 있었고 그런 나의 감언이설(甘言利說)에 혹하신 출판사 사장님은 오랜만에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렇게 대망(大望)의 1쇄(刷)가 2020년 9월에 출간되었다. 사장님과 나는 곧 넘쳐나게 될 수요에 대비해 2쇄, 3쇄를 추가로 찍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책들이 시중에 선보인 지 한 달여가 지났다. 그동안 나는 내 책을 읽어 본 여러 의사들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그중 대부분은 정형외과 전문의들이었다. 공통된 의견이 ‘책의 내용이 다소 어렵기는 하나 자신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의외의 반응이었다. 일반인들을 위해 쓴 책이 정형외과 전문의에게 다소 어렵다니, 환자들에게가 아니라 의사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니 말이다. 사실 그랬다. 나는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책을 쓰지 못한 것이었다. 책을 사보는 사람들은 일반인이 아니라 의사들이었고 그들의 시장(市場)은 일반인의 시장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았다. 2쇄는커녕, 1쇄도 가뭄에 콩 나듯 팔렸다. 애초 출판사에 인세 지급을 독촉하는 전화를 주기적으로 걸 계획이었던 나는 오히려 출판사에서 오는 전화를 피하는 신세가 되었다. 큰 빚을 지셨을 출판사 사장님께 죄송해서 차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의 첫 책들은 그렇게 실패했다. 괴로움과 죄책감을 씻기 위해 나는 다른 일에 집중하려 했다. 그것이 한자(漢字)였다. 최초의 책을 쓰면서 나는 반복적으로 나오는 의학 용어의 한자를 삽입하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말에서 한자로 이루어진 단어는 열에 여덟을 차지한다. 한자를 모르면 그 정확한 뜻을 파악(把握) 하기 어렵고 미묘(微妙)한 의미의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우리말로 우리글을 쓰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오히려 한자 공부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생각들이 나를 곧 한자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흰 종이에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글자들을 쓰고 또 그것을 익혀 나가며 한 글자 한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이 마치 문맹(文盲)을 벗어나는 것처럼 흥분되고 신기했다. 그런 와중에 못된 버릇이 도진 나는 내친김에 한자 능력 자격을 따고 싶었다. 그것도 가장 어려운 등급인 특급(特級) 자격을 말이다. 한자 특급 자격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약 6천 자의 한자를 막힘없이 읽고 쓸 줄 알아야 한다. 출제 기관의 소개에 따르면, 이 정도가 되면 한문 고전(漢文古典)의 해석과 연구에 어려움이 없을 정도가 된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사마천의 사기(史記) 등을 한글 번역본이 아닌 한문 원본으로 술술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수준이 되는 것이다. 역사 공부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참으로 꿈만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5개월간을 과거에 응시하는 선비처럼 공부했다. 노곤한 3월의 어느 주말,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로 가득 찬 어느 교실에서 가장 어린 나이의 응시자로서 쓸쓸히 시험을 보았고 결국 특급 자격증을 따게 되었다. 합격 발표날, 나는 꿈에 그리던 사기 원서(史記原書) 열 권을 한꺼번에 구입했다. 이제 원문에 숨어있는 깊은 뜻을 음미하면서 중국 고대사 여행을 떠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하지만 그 일주일 동안 나는 책에 실린 원문을 거의 읽지 않았다. 그 밑에 달려있는 한글 독해(讀解)만을 읽고 있었다. 한문은 여전히 너무 어려워 해석이 되지 않았고, 성미 급한 나는 대신에 번역본 읽듯이 책을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그 일주일 동안 내가 느낀 것이라고는 한국 사람은 뭐니 뭐니 해도 한글에 먼저 눈이 간다는 것, 그리고 한글은 정말 잘 만들어진 문자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사기 원서들은 내 책꽂이에 깨끗하게 전시되어 있다. 원서 읽기를 포기한 내가 한자 실력을 유지하는 방법은 어쩔 수 없이 이런 글에 한자를 가능한 많이 넣어 자랑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내가 한자를 많이 혼용하는 이유가 친절하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실히 밝힌다.


갱년기의 고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한 몇 번의 시도가 모두 좌절감으로 끝을 맺었다. 이제는 붉은 흙탕물이라도 퍼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부족하나마 나의 소설을 쓰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수준의 글이 되지 않더라도 지금 뱉어내지 않고는 단단히 응어리질 것 같은 무언가가 가슴속에 가득 차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느 휴일 아침 나는 노트북을 열고 두서도 없는 글을 미친 듯이 써 내려갔다. 그렇게 나만의 글쓰기가 첫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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