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인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잠을 깼다. 워낙에 깊이 잠들지 못하는 습관 탓도 있지만 무슨 소린가 들렸기 때문인 것 같다. 내 몸을 누인 작은 침대 건너편에는 나무 창살과 불투명 유리로 된 장지문이 있다. 그것은 두 평 남짓 되는 거실로 통한다. 그렇다. 이곳은 내가 살던 아파트가 아니다. 그보다 훨씬 작은 오피스텔이다. 벌써 귀 윗머리가 희끗희끗 변해가는 아이들이 나를 위해 얻어준 오피스텔.... 방 하나, 욕실 하나, 그리고 거실이자 부엌이자 식당이자 현관인,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공간 하나. 한 사람 말고는 더 살기도 쉽지 않은 이 작은 집의 빠듯한 공간에서, 있지도 않은 사람의 소리가 들린 것 같다.
“달그락, 달그락"
작은 소리가 들려온다.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헛것을 들은 게 아니라는 안도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만드는 무엇인가에 불안해진다. 현관 옆에 쌓여 있는 일회용 물병을 옮기는 것인지, 밑반찬만 가득한 냉장고 안을 정리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탁자 위에 올려놓은 내 소지품을 뒤지는 것인지. 거기에는 내 지갑도 있는데... 딸아이가 내일 집에 다녀오라고 쥐여준 만 원짜리 열 장, 이 집 잠금장치의 카드 열쇠, 그리고 아들 녀석이 만들어준 신용카드 하나. 잃어버리면 속상하고 귀찮을 만한 것들로 채워진 고동색 작은 가죽 지갑.
그 속상함과 귀찮음에 대한 저항이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켜 세운다.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확인해 봐야 하는데....’
침대를 내려가 장지문을 살며시 열었다. 익숙한 어둠. 창문이 있는 침실로부터 가장 먼 곳, 그래서 가장 그늘진 곳. 새벽 2시, 인간의 망막이 구별해내기에는 쉽지 않은 암흑이 덧칠해진 그곳. 더 소리는 나지 않는다. 내 눈이 어둠을 한 꺼풀 벗겨 낼 때쯤 익숙한 실루엣들이 서서히 나타난다. 식탁, 욕실 문, 물통 더미, 신발장, 냉장고, 찬장, 그리고 소파. 최소한 살아있는 것들은 없다. 살아있지 않은 것들이 '달그락' 소리를 조금 전까지도 냈던 것인가? 아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살아있지 않은 것들은 소리를 내지 못한다. 바람도 없고, 진동도 없고, 온도 변화도 없었던 이 작은 공간에서는....
누가 다녀간 것일까?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아니, 내가 나올 것을 어떻게 알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을까?
현관문 손잡이를 돌려보니 잠금장치는 잠겨있었다. 누가 억지로 연 흔적도 없다.
누굴까? 왜 오고, 어떻게 간 것일까? 아니 정말 왔다 간 것일까?
불현듯 지갑이 생각났다. 탁자 위를 확인했다. 어제 보던 신문, 책 몇 권, 안경, 그리고 그 옆에… 있어야 할 지갑이 없다. 지갑이 없다면 그 안에 있어야 할 만 원짜리 들과 카드 열쇠, 신용카드도 없는 것이다. 이런 젠장. 기분이 상한다. 돈도 돈이지만 카드 열쇠, 신용카드를 다시 만들자면 아이들을 또 괴롭혀야 한다. 모르는 사이에 다른 곳에 떨어졌는지 거실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져본다. 탁자 밑, 욕실, 냉장고, 심지어 소파에 있는 틈새에까지 손을 넣어 훑어본다. 지갑에서 떨어져 나왔을 법한 동전 하나 남지 않고 흔적 없이 사라졌다. 역시 그가 왔다 간 것일까?
(계속)
* 표지사진출처: 킹덤; 아신전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