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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The Same Moon 07화

【멜번에 가야 하는 이유】

호주 멜번 여행기

by 글로


호주는 영국령하에 있던 나라다. 1901년 독립했다. 멜번은 특히나 유럽의 향기가 많이 풍긴다. 트램이 출발할 때 내는 정겨운 소리와 긴 애벌레같은 모양은 이곳을 낭만적인 도시로 만든다. 무료트램존이 있어 시내만 돌아다니는 사람이라면 교통비 없이 얼마든지 도시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다. 트램은 외곽까지 모두 커버해준다. 대신 트램의 길이가 짧다. 시티의 트램이 4량이라면 외곽의 것은 버스처럼 1량 짜리들이 많이 있다.

트레인, 트램, 버스, 택시 다양한 교통수단이 있어 어디나 마음 먹은대로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다. 구글지도는 수시로 제일 효과적인 교통편을 제공해주니 편하다. 대부분의 교통수단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통합해서 사용할 수 있으며 탈 때 내릴 때 모두 태그해야한다.

밖을 보면서 다닐 수 있는 트램을 제일 많이 이용했다. 택시는 호텔에서 다른 호텔로 이동할 때 딱 한번 우버를 이용했다. 캐리어를 끌고 긴 거리를 이것 저것 갈아타며 다니느니 택시로 한 번에 가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다.


우리가 머물렀던 서던크로스역은 우리나라로 치면 용산역 같은 곳인데 많은 행선지의 기차들이 머무른다. 숙박한 호텔이 바로 이 서던크로스역 바로 앞이라 잠들기 직전까지 기차 소리에 신경이 쓰이긴 했다. 그러나 그것도 첫날 일이고 다음날부터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다. 방을 바꿀 생각까지 하게 만든 기차소리는 아무렇지 않은 작은 소음이 되었다. 같은 기차소리인데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도 적응이 되고 내성이 생기는 인간의 능력이란 대단하다. 일정 부분 포기한 것도 있기는 하다. 여자들은 짐이 많아 방을 옮기는 귀찮음을 감당하기가 싫었던 거다.


여행하는 10일 동안 단 한번도 비를 만나지 못했다. 비가 오기는 했지만 마치 우리의 여행을 배려라도 하듯 밤에만 내리고 아침에는 더 맑고 깨끗한 공기를 선물해주었다. 온도는 18에서 20도 정도로 돌아다니기에 알맞은 온도였다. 안에는 반팔, 겉에 얇은 셔츠를 걸쳐주면 좋을 정도의 날씨다. 하늘은 코발트 블루, 키 크고 풍성한 나무들과 어우러져 스카이라인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미세먼지도 없다.

날씨가 좋고 나무가 많으니 어디든 카메라에 담으면 그림 같은 풍경이 나온다. 보태니컬 가든의 풍경은 오래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꼭 관광지를 가지 않아도, 조금만 트램을 타고 외곽으로 나가도 어디든 잔디와 푸른 하늘, 색다른 나무를 만날 수 있다. 사람이 없어 조금 두려운 마음이 이는 것이 문제긴 하다. 주택가는 거짓말처럼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다. 모두 일을 하러 간 건지 집안에 있는 건지 인도를 걸어가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


예전에 호주에 거주할 때도 밤에 수업이 끝나 버스를 타고 주택가에 내리면 고양이 그림자만 왔다 갔다 했었다. 지금도 다를 바가 없다. 사람 만나기가 어렵다. 동네마다 있는 콜스나 울월스등 마트가 있는 상업지구에 가야 그나마 카페나 미장원에 있는 손님들을 만날 수 있다. 시티에만 바글바글할 뿐 그곳을 지나가면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다.


호주에서 뭘 했냐고 물으면 대답할 말이 없다. 예전에 다녔던 대학교 캠퍼스에 다녀왔고 나무를 많이 보고 왔다. 앞에서 다녀왔던 치앙마이나 싱가포르에서도 여전히 나의 관심은 관광지에 있지 않았다. 오로지 나무, 자연, 향기가 궁금했다. 그곳에는 어떤 나무들이 자리하고 있는지, 스카이 라인이 어떤지, 사람들은 마트에서 무엇을 사는지 등이 궁금했다. 엄청난 절경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관광지가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 나이가 있으니 젊었을 때 꽤나 유명한 관광지들을 도장찍기하듯 돌아다녔지만 남는 것도 없고 만족도도 높지 않았다. 줄만 서고 들어가서는 사람들 등만 보다가 겨우 기념품 하나 사 들고 나온 기억이 많다.

그러니 나는 아무래도 자유여행을 선호하는 것 같다. 멜번은 자유여행 하기에 좋은 여행지다. 꽃이나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을 떠나기 싫을 것이다. 아름다운 식물들의 모습에 넋을 잃고 모든 마음의 욕심을 내려놓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면 간단히 요기하고 멋진 카페를 찾아나선다. 마트에서 산 간단한 샌드위치나 콜드푸드로 점심을 먹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곳은 그러기에는 낭만적인 곳들이 너무 많다. 유유자적한 분위기의 카페와 자유롭게 일하는 듯 보이는 직원들, 유유히 흐르는 음악, 꾸민 듯 아닌 듯 멋스러운 가게 분위기에 취해 음식을 먹다 보면 시간이 흐르는 것이 못내 아쉽다.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음식이 빨리 나오지 않아도, 다소 음식이 내 취향이 아니어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고맙다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부분의 합이 전체가 아니듯, 이 분위기를 하나하나 쪼개서 분석할 수는 없다. 무엇이 어떻게 조합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멋있다. 왜 멋있냐고 묻는다면 또 할 말이 없다. 단순히 티셔츠에 청바지만 입어도 간지가 흐르는 사람처럼 그렇게 멜번의 카페는 멋있었다. 스타벅스와 같은 커피 체인점은 없었다. 카페마다 식당마다 분위기와 메뉴가 다르다. 다양한 분위기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고 음식을 내놓는 접시나 식기나 내용물도 모두 조금씩 차이가 있다.

다 가볼 수도 모두 맛볼 수도 없지만 왜 그렇게 욕심이 나던지. 쇼핑에 전혀 관심이 없는 나와 딸은 오로지 멋있는 카페를 찾아 앉아 음식을 탐닉하고 즐기는 것으로 경비를 탕진했다. 다시 와도 여러 번 와도 아마 똑같이 멋스러운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보며 로컬처럼 자연스럽게 주문하고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고 돌아갈 것이다. 그러려고 오는 것이다. 멜번이라는 멋진 곳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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