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작가, 북유럽 작가의 작품이 궁금했다. 시리도록 추운 나라의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들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갈까?
주인공 ‘나’는 운전을 하다 숲으로 들어오게 된다. 거기서 벌어지는 기이한 경험들을 자세하고 몽환적으로 묘사했다. '욘 포세' 글의 특징인 반복과 섬세함은 이 책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앞 문장을 조금 다르게 반복하거나 확장시킨다. 문장을 계속 굴리며 사건을 전개시킨다. 조금씩 조금씩 덧붙이며 눈덩이가 커지듯 상황을 펼쳐간다.
‘그건 천사였을지도 모른다. 신의 천사, 그 존재는 너무나도 순수한 흰빛을 발하지 않았던가, 아니 그것은 악마였을지도 모른다. 악마도 빛을 발하는 일종의 천사니까 말이다.’
‘나는 사방팔방을 헤맸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고 생각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 귀에 들리는 것은 나는 여기 있다고 말하는 작은 속삭임인가, 아마도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그저 나의 상상일지도 모른다. 내가 들은 것은 분명한 목소리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계속 나에게 이리 오라고 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버지를 나무라며 무슨 말이든 해보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을 붙잡을 수 없다. 피곤해서 쉬고 싶다. 바위를 보며 앉고 싶지만 왜 저기에 바위가 있는지 궁금해한다.
한 남자가 보인다. 검은 양복을 입고 있다. 나에게 다가온다. 자세히 보니 얼굴이 없다. 나는 미쳐버린 걸까, 환영을 보고 있는 걸까?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의 반대편에는 여전히 순백색의 무엇이 빛나고 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일이다. 이건 이해가 아니라 단지 경험만 할 수 있는 일인지 모른다.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 말이다. 하지만 일어나지는 않고 단지 경험만 하는 일이 가능할까.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일은 어떤 면에서는 실제고, 우리는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이해한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저기엔 순백색의 존재가 빛을 발하며 서 있고, 그 존재의 뒤쪽에서 옆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는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가 맨발로 눈 위에 서 있으며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와 순백색의 반짝이는 존재 사이에는 나의 부모님,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 손을 잡고 서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는 순백색의 존재를 따라 나, 나의 어머니, 나의 아버지, 검은 양복을 입은 얼굴 없는 남자가 맨발로 무의 공간 속으로 들어간다. 갑자기 흰빛이 나타난다는 대목에서 리얼리티가 파괴된다. 환상이 결합된 상상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앞에 있지만 없는 사람들, 들리지만 들리지 않는 이야기. 들리기도 하고 들리지 않기도 하는 소리들, 보이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현실에서와 똑같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결정적으로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의 출현으로 이야기가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저승사자인가?’ 내 머릿속 고정관념으로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라면 죽음의 사제가 떠오르니 말이다. 그럼 하얀빛은 과연 무엇일까? ‘천사?’
전체는 부분의 합이 아니듯 책 내용의 요소를 분석해도 내용 전체를 이해할 수 없다. 머릿속으로 상상이 되었다. 숲속에서 길을 헤매는 한 남자, 그들 앞에 나타난 하얀빛, 어머니와 아버지의 환영, 그리고 검은 양복을 입은 얼굴 없는 남자.
꿈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이야기. 죽음으로 가기 전 만난 존재들인가? 작가는 이야기를 지어내지 않고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잘 듣고 써 내려 간다고 말했다.
그 안에 존재하며 숨 쉬는 이야기, 그가 우리 앞에 내놓은 이야기. 각자 상상대로 느끼는 대로 이야기를 경험하면 되지 않을까?
이 이야기에 선이 무엇이며 악이 무엇이며 어머니가 상징하는 것은, 아버지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검은 양복의 얼굴 없는 남자가 나타내는 것이 무엇인가를 파고 드는 것은 별 의미 없는 일이라 생각되었다.
마음속의 공포가 드러난 것일까?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천국으로 갈지 지옥으로 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꾸게 되는 꿈인가?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존재, 어머니와 아버지, 죽기 전까지 잊지 못할 가장 가까운 관계의 사람들이 등장하는 꿈. 작가의 꿈을 공유하며 또 하나의 다른 세계를 경험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