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이야기
【지금은 없는 이야기】

by 글로

최규석, 사계절, 2011


가위바위보


모든 것을 가위바위보로 정하는 마을, 위험한 일을 하다가 손을 다쳐 주먹을 펼 수 없게 된다. 주먹밖에 낼 수 없다는 걸 알아챈 마을 사람들, 그는 가위바위보에서 항상 져 마을의 위험한 일만 맡게 된다. 마을 대표에게 안 다친 왼손으로 하게 해달라고 했지만 규칙이 오른손이기 때문에 안된다고 거절한다.


그러면서 제안을 한다. 이 규칙을 바꾸려면 우리 모두를 이겨보라고.

‘우리 모두를 이기면 자네 맘대로 규칙을 바꾸는 거야’

결국 너의 얘기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대표의 의지가 보인다. 마을의 위험한 일을 하다가 다치게 된 약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이용한다. 곤경에 빠지게 하는 상황이 안타깝고 강자들의 극단적인 이기심이 겨울의 매서운 바람처럼 차갑다.



원숭이 두 마리


검정원숭이와 빨강원숭이가 있다. 검정이의 먹이를 빨강이에게 주는 주인. 검정 원숭이는 게으르다고 먹이를 조금만 준다. 검정원숭이는 열심히 일하지만 빨강이는 더 열심히 일한다. 검정원숭이는 점점 병들고 거칠어진다. 검정원숭이는 그만 실수로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다.


빨강원숭이는 혼자 검정원숭이의 일까지 해야 했다. 주인이 계속 칭찬을 하자 기분이 좋아지고 자부심이 있었다. 자신이 주인에게 이용당하는 것도 모르고 몸이 부서져라 더 열심히 열매를 따다 주인에게 바쳤다.

미리 미리 나눠주고 검정 원숭이와 사이좋게 지냈다면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됐을 것을 빨강이는 몰랐던 것일까? 알면서도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기분에 빠져 멀리를 내다보지 못하고 순간의 즐거움을 택한 것일까? 안타까운 일이다. 조금만 마음을 넓게 썼더라면 친구와 오래 편안히 일할 수 있었을 텐데 경쟁을 부추긴 주인에게 착취만 당한 것이다.



어떤 동물


그 동물들은 귀도 없고 목소리도 없고 눈도 없고 털가죽도 없는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소리를 내서 왕따를 당하는 동물이 있었다. 동물들은 조물주에게 그 동물의 소리가 거슬려서 살 수 없다고 불평을 터뜨린다. 조물주는 동물들의 귀와 목소리를 없애버렸다.


한 녀석이 거칠고 뻣뻣한 털을 갖고 있다. 또 조물주에게 저놈의 거친 털이 보기 싫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조물주는 모두의 털을 없애고 털을 볼 수 없도록 눈도 없애버린다.


무리에서 다른 존재가 나왔을 때 자신들과 같아지도록 강요하고 미워한다. 결국 공멸해버리고 마는 슬프고도 현실적인 이야기다. 그 존재가 없어지면 좋을 것 같지만 모두 같아짐으로해서 아무런 개성도 없고 존재감도 없는 무리가 되어버린다. 눈이 없고 귀가 없는 세상을 사는 그들은 얼마나 세상이 단조롭고 재미없을까? 서로의 개성과 다름을 존중했다면 다채롭고 건강한 무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도 언젠가 그들과 다른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망각한 것에 대한 대가다.



늑대와 염소


염소들이 들이받자 늑대들은 현명하고 나이 많은 늑대에게 조언을 구한다. 검은 염소와 흰 염소 중 흰 염소만 골라서 사냥하라고 알려준다. 점점 흰 염소만 잡아먹히는 걸 알게 된 검은 염소들은 늑대가 와도 싸울 생각을 안 한다. 흰 염소가 잡아먹히는걸 구경만 한다. 왜 도와주지 않냐고 항의해도 검은 염소들은 도와줄 생각을 안 한다.


이제 흰 염소를 모두 사냥해버리자 나이 많은 늑대는 새로운 조언을 해준다. 이제 검은 염소중에 아무 염소나 내키는 대로 잡아도 된다고 말해준다.

이제 검은 염소들은 한 마리가 잡아 먹히면 그놈이 왜 잡아 먹혔는지 알아내느라 대항할 생각을 못할거야. 뿔이 굽어서 먹혔는지, 다리가 짧아서 먹혔는지, 암놈이라서, 아니면 수놈이라서 먹혔는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하겠지. 스스로 먹힐만한 이유가 있어서 잡아먹히는 거라고 여기는 놈들을 사냥하는 건 식은 죽 먹기지.

자신의 무리만 피해를 보지 않으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연대의식을 무너뜨려 모두를 망하게 한 이야기. 흰 염소가 사냥대상이 될 때 함께 도와주었으면 늑대를 물리칠 수 있었는데 그 반대의 경우를 초래했다.


조직 내에서 나만 위기를 피하면 된다고 하며 동료를 도와주지 않으면 나에게 위기가 찾아왔을 때도 마찬가지다. 도움을 받지 못한 동료는 내가 했던 것처럼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손 놓고 있을 것이다. 새옹지마, 사람의 일은 알 수 없다. 동물들이 그랬던 것처럼. 결국 혼자 존립할 수 있는 개체는 없다. 하찮게 여기는 개미들도 치밀하고 놀라운 시스템으로 그들의 세계를 구축하지 않는가? 내 이익에만 눈이 멀면 미래에 도움 받지 못하는 건 인간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인가보다.



지금은 없는 이야기의 우화들은 우리 인간에게 적용해도 맞춤 신발처럼 꼭 들어맞는다. 혼자만 잘 살려고 할 때 종국에는 공멸하고 만다는 아픈 진리를 깨닫게 해준다. 지금은 손해보는 것 같아도 전체를 생각하고 나아갈 때 그 조직은 건강해지고 함께 행복할 수 있다는 평범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진리에 대해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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