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지음 / 책 만드는 집 / 2015
기요는 도련님의 하녀, 명문가의 딸이지만 집안이 몰락했다. 도련님의 매사를 칭찬한다. 괴팍한 성격마저도 대쪽처럼 곧고 좋은 인품이라고 말해준다. 도련님은 모든 것을 귀찮아하는 편이지만 물리전문학교에 진학한다. 졸업하고 시골학교에서 수학교사로 일한다.
‘도련님’은 가독성이 좋고 재미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 생각났다. 암울하지만 재미있는 작품이다. ‘인간실격’의 주인공도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우울한 인생을 살았다. 도련님은 호칭에서 풍겨지듯이 귀한 대접만 받고 고생을 별로 안했다.
발령받아 간 중학교에서 여러 가지 우여곡절,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겪는다. 덩치 큰 까까머리 학생들을 40명이나 가르쳐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힘들어한다. 하숙집 주인이 골동품 강매하는 것을 못 견뎌 한다. 어디를 가든 일거수 일투족을 학생들이 알고 있고 심지어 학교에서 놀림까지 받는다.
힘들 때는 자신을 아낌없이 칭찬해준 기요를 생각한다. 엄마나 애인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어릴 때부터 자신을 돌봐온 하녀 ‘기요’를 생각한다. 칭찬 받는 나보다 칭찬하는 본인이 더 훌륭하다고 하며 기요의 인간성이 얼마나 훌륭한지 말해준다.
부임한 학교의 교사들이 도련님의 눈에 들 리 없다. 하나같이 괴이하고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생각나는 대로 그들의 특징을 잡아 별명으로 부르고 기억한다. 교장은 너구리, 교감은 빨간셔츠, 영어선생은 끝물호박, 수학은 센바람, 미술은 딸랑이라고 이름지었다.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영어선생의 얼굴이 노란 것을 보고는 끝물 호박이라고 부른다.
하루는 도련님이 기숙사 숙직을 하려고 누웠는데 깜짝 놀라서 일어난다. 학생들이 잠자리에 메뚜기를 넣어 놓은 것이다. 학생들을 혼내려고 기숙사로 올라가니 쥐죽은 듯이 조용하다.
돌아서 나오려고 하면 어디선가 함성소리가 들린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이제 잠은 포기하고 기숙사 중앙에 앉아 밤을 새운다. 함성소리는 나지 않지만 밤을 꼴딱 새운다. 학교를 그만두든지 기숙사생 전체에게 사과를 받든지 둘 중 하나를 하려고 결심한다. 도련님의 배짱이 두둑하다. 자신이 밑바닥까지 떨어지지는 않을거라는,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을 거라는, 어떻게든 될거라는 믿음이 깔려있다.
자유분방하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일관하는 철부지인데 밉지가 않다. 나름의 논리도 있고 남에게 아부하지 않으며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려 노력한다. 기요의 다정함은 편지에도 묻어있다. 엄마가 아니어서일까? 오로지 애정으로만 똘똘 뭉쳐진 기요의 도련님을 향한 사랑과 걱정이 둘 사이의 관계를 짐작하게 한다. 무한히 주고 무한히 받는 존재. 도련님도 기요의 따뜻한 시선과 마음을 알고 있다.
끝물 호박 선생의 어머니가 교장에게 아들의 월급을 올려달라고 얘기한다. 교장은 우리 학교는 그런 돈이 없고 다른 학교로 가면 받을 수 있다고 전근을 추천한다. 그 대신 도련님에게 월급을 더 준다고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도련님은 그 사실을 듣고 펄쩍 뛰며 거절한다.
올려주겠다는 월급을 거부하는 당당함이 예사롭지 않다. 일반인이 가지지 않은 대쪽같은 자신만의 기준에 의해 거칠 것 없이 행동하는 도련님이 멋있다. 사사건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는 빨간 셔츠와 부하처럼 행동하는 딸랑이를 혼내주기로 한다. 마치 시골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에게 흙을 뿌리거나 돌을 던지거나 발을 거는 장난을 하듯 계획을 세운다. 흡사 어린아이들 같다. 센 바람과 함께 빨간 셔츠를 놀려줄 계획을 세우는 것이 재미있다.
좁은 동네에서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않는다. 도련님이 다니는 곳을 학생들은 다 안다. 그 다음 날 소문이 돌아 놀림을 받는다. 튀김집, 당고집, 온천에 빨간 수건을 들고 가는 것까지 알고 있다. 그렇다고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을 포기할 수 없으니 당당히 다니지만 많이 불편해한다. 퇴근하고 남는 시간 동안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못하게 생겼으니 말이다. 여간 귀찮고 성가신 게 아니다.
그 와중에 기요와 도련님은 편지를 주고 받는다. 눈물을 흘리며 도련님에게 쓴 기요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편지. 거기에 답장하는 도련님의 마음. 둘은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낀다. 인간 대 인간으로 말이다.
학생들 싸움에 끼어 말리다가 얻어맞기만 하고 경찰서에 끌려가기까지 한다. 신문에는 교사들이 잘못했다는 억울한 내용만 실린다. 교장과 교감은 신문사가 학교에 악감정이 있는 것 같다고 단정짓는다. 알고 보니 기사는 빨간 셔츠가 꾸민 일이다.
온천마을 ‘마스야’ 여관 2층에 숨어 빨간 셔츠를 기다린다. 기생과 함께 새벽에 나오는 빨간 셔츠를 흠뻑 패주고 사표를 낸다.
‘그날 저녁 나와 센바람은 이 더러운 동네를 떠났다. 고베에서 도쿄까지는 직행으로 갔다. 신바시에 도착했을 때는 드디어 사람이 사는 곳에 돌아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기요는 함께 살다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다. 마지막 날, 무덤 속에서 도련님 오시기를 기다리겠다고 소원을 말한다.
이야기는 사방팔방 어디로 튈지 모른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다음 이야기는 무엇이 펼쳐질까 예측이 안되고 스토리를 접할 때마다 신선함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림이 그려지기도 한다. 유쾌한 이야기가 연속적으로 펼쳐진다. 갈수록 유쾌함은 층층이 쌓이듯이 더해진다.
이 소설은 어른을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다. 구태의연한 일상과 생활에 묶여 소신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걱정마, 이렇게 살아도 돼’하고 시원하게 한방 날리는 느낌이다. 그러나 도련님은 결혼을 하지 않았고 부양가족이 없어서 가능한 것이 아닌가싶기도 하다. 결이 다르면서 통쾌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