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고신
상담소장 구고신은 ‘떼인 임금 받아드립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건 노동상담소를 운영한다. 알바생이 중국집 ‘신선각’에서 떼인 돈 700만원을 찾아준다. 근처 아는 모든 곳에 전화를 돌려서 시켜먹지 말라고 하자 사장이 마지못해 알바생에게 돈을 준다. 24살의 노숙하던 청년에게 돈을 받아준 것이다.
이과장
마트에서 일하는 이과장. 점장이 내린 지시를 이행해야 하는 부장. 모든 판매직원을 내보내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인격모독이든 징계든 해서 제 발로 나가게 하라는 거다.
이과장은 이 모든 것이 불법이라고 말한다. ‘지시하면 실행한다. 그 익숙하고 당연한 반복이 깨졌다. 여기서부터는 미지의 영역이다. ‘모가지를 반쯤 비틀다 놓쳐버린 어설픈 도살자는 다음 단계를 모른다’
‘어쨌든 나는 모든 곳에서 누군가의 걸림돌이었다’
과거의 모습들이 중간에 플래쉬백으로 삽입된다. 반에서 친구를 괴롭히는 친구에게 하지 말라고 말린다. 육군사관학교를 다닐 때 부정선거를 조장하는 선배를 보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험난한 정의의 길을 가자고 동기 생도를 설득하기도 한다.
‘또 도망쳐야 하나? 도망쳐서 온 곳이 여기인데 다시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저 밖 어딘가에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아도 되는 곳이 있을까?’
이 과장은 자신을 고라니에 비유한다. ‘도로에 갑자기 뛰어든 고라니, 비키라는 말에 나도 비켜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안되는 내가 나도 미치겠다’
‘난 이미 죽었고 내 발로 알아서 치워져 줄 마음은 조금도 없다. 날 치워봐라’
송곳
‘비겁하고 무력해보이는 껍데기를 잡고 흔들고 압박하면 분명 하나쯤 뚫고 나온다’ 이 과장의 독백이다. 다음 한발이 절벽일지 모른다는 공포속에서도 제 스스로도 자신을 어쩌지 못해서 껍데기 밖으로 기어이 한걸음 내딛고마는 그런 송곳같은 인간이. 분명 하나쯤 뚫고 나온다
가장 앞에서, 가장 날카롭다가 가장 먼저 부서져머리고 마는
노조
‘노조운동 10년 해도 사장되면 노조 깰 생각부터 한다.’ 라는 말도 나온다. 노조는 모든 기업가들에게 걸림돌로만 여겨지는 걸까? 회사의 앞길을 가로막기만 하는?
프랑스 지점장은 왜 노조를 거부하는 걸까? 여기서는(한국) 법을 어겨도 처벌 안 받으니 가능한 얘기라고 역설한다.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프랑스에서의 마인드와 한국에서의 마인드가 다르다. 혹은 자신이 노동자일때와 관리자일때의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잘 표현하는 문구다.
완벽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며 살지만 허울뿐인 조직이 원망스럽다.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는 노동현장, 하라면 하고 더 일하라고 하면 집에 가지도 못하고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잘못 한 것이 없어도 일자리에서 내 몰려야 하고, 어디에 가서도 억울함을 토로할 수 없이 길 한복판에 내 던져지는 이 비굴한 기분은 어디에서 해소할까?
누군가는 밥을 차려야 한다. 고생한 사람이든 아니든 함께 밥을 먹는다. 남의 이익을 위해 희생할 수 있나? 권리를 쟁취하고 처우가 조금이라도 개선되는 데는 누군가의 노력이 필요하다. 다수가 참여하면 좋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 극소수의 희생으로 다수가 혜택을 받는다. 그 소수가 움직여주지 않으면 세상에는 변하는 것이 없다. 누군가는 밥상을 마련해야 한다. 엄중하고도 부조리하며 현실적이다.
‘천막 치는 건 일도 아니다. 지키기가 어렵다’는 말은 무엇에든 적용된다. 무엇이든 시작이 반이라지만 나머지 반을 잘 지켜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내가 필요한가? 한 걸음이, 하룻밤이 부족해서 이루지 못하는 일들이 많이 있다. 마지막 있는 힘을 짜내 목표를 달성해내지 못한다. 죽을 힘을 다해도 되지 않을 때 포기해야 하는가? 벼랑 끝인지 아닌지는 가보아야 알 수 있다. 정말 끝이 보여도 갈 수 있는가? 밑이 벼랑인데도 끝까지 갈 수 있을까?
‘꼬리로 파리를 쫓으며 밭을 가는 소처럼 회사는 우리를 공격하면서도 성실하게 전진하고 있었다’ 결국 노조는 파리 만한 존재밖에 안 되는가? 귀찮기는 하지만 별거 아닌 존재, 무시해도 좋은 존재, 앞으로 전진하는데 크게 방해가 되지 않는 존재, 걸어 나가는 데 있어 별 무리가 되지 않는 존재? 조합원들은 자괴감이 들 것이다.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전체와 나 자신을 위해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변화와 권리를 위해서는 큰 걸음도 내디뎌야 한다.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자신과의 약속, 뚝심도 필요하다.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힘을 합치면, 그 조직이 부서지지 않는다면 송곳을 중심으로 무엇이든 뚫을 수 있다. 다만 그 송곳이 될 힘이 나에게 있는가? 그 송곳에게 난 모든 걸 걸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