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현 Sep 29. 2020

전쟁의 상흔, 미술이 되다

남관의 미술읽기

정과대화, 73x116cm, oil on canvas, 1978, 남관 기념사업회



  식민 지배와 전쟁으로 얼룩진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생사를 오가는 경험을 한 이들은 작품에서 어떻게 이를 표현하였을까? 14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태평양미술학교를 졸업한 남관은 2차 세계대전 때 도쿄에서 폭격을 목격하였고 이후 귀국하여 서울에서 한국전쟁을 경험하였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순간을 목격한 남관은 그 비참한 모습이 뇌리에 박혔고, 그 기억은 역시 전쟁을 경험한 파리로 건너가 당시 유행하던 앵포르멜 화풍을 더한 작품으로 풀어나갔다. 남관이 체험한 전쟁의 잔상은 그의 머릿속에서 무한히 재생되고 있었으며 이를 그의 작품에서 그만의 체험이 아닌 실존과 관련된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로 끌어내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로 파리에서 14년간 체류하며 1966년 망통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여받았고, 파리 시립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었으며 프랑스, 독일, 스위스 등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개인전을 통하여 작품을 선보였다. 이후 귀국한 후에도 파리 시에서 제공받은 작업실을 오가며 그는 우직하게 작품 활동을 지속하며 세계 각국에서 전시를 통하여 작품을 선보였다. 남관은 인간 내면에 대하여 끊임없이 고민하고 탐구하였으며 조형적으로도 다양한 기법을 활용하여 그의 작품을 완성시켰고 이러한 열정은 그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미술가로 성장하게 한 밑거름이 되었다


태양에비친허물어진고적, 160x130cm, 캔버스에 유채, 1965, 남관기념사업회


남관의 조형적 근원

  남관의 전쟁에 대한 경험은 인간에 대한 실존의 문제로 직결되었으며 이는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그가 목격한 참혹한 광경이 사실적으로 그림에 묘사되지 않았다. 파리 이전 남관은 일본 유학 시 배운 구상 미술에 심취하였으나 파리에서 앵포르멜 미술을 마주한 남관의 그림에서는 글자와 같은 기호들 돌과 유물 같은 물건들, 그리고 마스크를 떠올리는 인간의 형상들과 같은 추상적 요소들로 화풍이 변화하였다. 그는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의 조형적인 독자성을 위하여 글자의 형상을 차용하였고 한국의 금관과 같은 유물을 연상시키는 형상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조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특히 글자의 형상을 차용한 조형 요소는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에 체류하였던 이응노의 그림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도불 시기는 남관이 조금 더 빠르나 문자 추상에 대한 논의는 두 미술가가 생전에 격렬한 논쟁이 있었던 예민한 부분이다. 남관의 문자 추상은 인간의 눈, 코, 입을 연상시키며 자유분방한 화면 구성과 한 화면 내에서 기법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는 차이가 있다. 또한 문자를 패턴화하여 다양한 것들을 연상시킬 수 있도록 구성하는 시도를 하였다.   


남관의 파랑

 남관의 그림은 어떻게 그렸다는 것을 한눈에 확연히 알 수 없다. 그의 그림은 시각적으로 단순하게 붓질로 구성되지 않았기에 그렇게 느끼는데, 마치 찍어낸 것 같기도 하고 번지기도 한 것 같은 재료의 활용이 한 화면에 들어서 있으며 이러한 기법의 복합적인 활용은 그의 그림에 신비성을 더한다. 남관은 종이나 헝겊을 활용하여 붙인 콜라주와 떼어낸 네거티브 콜라주 그리고 태우거나 번지거나 지우는 우연의 효과를 더하는 데콜라주의 기법을 다양하게 작품에서 실험하였다. 남관의 다양한 매체와 기법을 실험한 그의 그림은 눈으로 감상하며 촉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각적 촉각성이라는 공감각적인 심상을 더해주는 특징을 보인다. 또한 그가 화면 위에 올린 다양한 층은 깊이 있는 색감을 보여주기도 한다. 

  남관의 미술이 지니고 있는 큰 특징 중 하나는 뛰어난 색감의 활용이다. 특히 남관은 푸른색의 활용에서 이러한 성격이 매우 잘 나타난다. 그의 그림이 지닌 다층적인 표현법은 푸른색이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으며 특히 여러 번 올려 표현한 푸른색에서 깊은 느낌을 전해 준다. 또한 그냥 푸른색만 활용한 것이 아닌 여러 가지 색상을 함께 표현하여 다양한 변화를 주었다. 파란색 회화로 유명한 프랑스의 이브 클랭의 작품을 보면 형광빛을 한 파란색을 활용하고 있으며 파란색과 흰색의 대비만을 주로 활용한다. 이것은 남관의 푸른색과 크게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남관의 작품에 등장하는 파란색과 다양한 기법을 통한 여러 색감의 활용은 한국적인 정취를 불러일으키며 동시에 깊이감을 더해주고 있다.  

묵상, 91x73cm, oil on canvas, 1978, 남관기념사업회


독백, 72.5x54cm, oil on canvas, 1968, 남관기념사업회



  남관은 그림을 위하여 일본으로 또 프랑스로 이주하며 자신의 그림을 발전시키고 또 그 가치를 고취시키는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 당시 미술계의 주요국이었던 파리의 미술가들과 작품을 나란히 할 수 있었다. 40대의 나이에 파리에 이주하여 4년 만에 1958년 살롱드메에 출품하여 유럽에 그의 이름을 알렸으며, 이후 유럽 각국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남관이 이루어낸 예술적 성취는 다양한 평론가들의 비평을 통하여 검증할 수 있다. 1973년 파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인 베르나르 도리발은 “투명하고 무지갯빛이 융합된 마티에르는 한국 화가가 서양의 화법을 몸에 익히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그것은 극동의 피를 이어받은 그의 정묘하고도 세련된 감성에 뒷받침되고 있으며, 그의 작품은 동과 서의 문화적 결혼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1990년의 일본에서 개최된 전시의 서문에서 기와기다 미치아키는 “남관은 동 서양의 미관을 연결하며 독자의 경지를 이룩한 현대작가라는 평가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단색화 화풍의 주요 미술가들에게서 조금 밀려 남관이 창조해 낸 독창적인 미술 세계는 그 관심이 덜한 편이다. 그러나 그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가 경험한 전쟁의 참상을 묵묵히 그려냈으며 이를 세계적인 화단에 등장시킨 미술가로서 중요한 업적을 이룬 미술가이다. 남관의 근면하고 성실한 자세로 이룩한 예술세계는 서양과 동양을 가로지르며 발전하여 왔으며, 그의 작품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인간의 다양한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있다.   


밤환상, 72x91cm, oil on canvas, 1983, 남관기념사업회


*이 글은 월간 비자트와 중기이코노미에 기고되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심플하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