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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아 May 02. 2024

그날의 너, 눈부시던 햇살

'그날의 너, 눈부시던 햇살'


내가 잠잘 때마다 늘 듣는 뉴에이지 피아노 곡의 제목이다.


그리고 혼자인 나를 늘 달래주는 음악이다.




이십 대 초반, 심지어 만 나이로는 아직 십 대였던 내가 성인이 되자마자 바로 시작한 프랑스 유학은 당시 큰 외로움으로 다가오곤 했다.


그중 특히 외로웠던 시간대는 저녁 8시쯤부터 잠들기 전까지였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모두 자고 있을 새벽이며, 외국 친구들과는 메신저를 통해 자주 연락하진 않았던 만큼 완전히 홀로 남는 시간. 


내가 살았던 지역은 한국인도 거의 없던 데다 학교 근처의 기숙사 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동기들과 달리 중심가에서 약간 떨어진 개인 숙소에서 머물던 나는 대부분의 평일 저녁을 늘 고립된 채 보냈다.


외로웠던 나날. 어떤 상호작용도 없이 하루하루를 삼키던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늘 무언가를 하려 애썼다. 어떤 날은 긴 밤산책을 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그림을 그리거나 일기를 쓰기도 하는.


지금 나의 기록하는 습관도 이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싫었기에 뭐라도 하며 그 빈 공간을 채워나갔다.




그래도 바깥에 사람들이 다니는 모습을 바라보며 내 할 일을 하다 보면 조금은 괜찮았지만, 완전한 밤이 찾아오고 모든 불이 꺼지면 찾아오는 적막함은 받아들이기가 쉽지가 않았다


어둡고 조용한 내 방에서 눈을 감고 있으면, 먼 외국땅에 홀로 있다는 감정이 사무치게 느껴졌다. 그 당시에는 그랬다.


언젠가부터 나는 노래를 켜고 잠들기 시작했다.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즈음엔 잠들기 전 아주 잔잔한 노래들을 작은 소리로 켜두곤 했다.


당시의 플레이리스트가 어땠는지 이제는 기억하고 있진 않지만, 유일하게 아이유의 '무릎'이라는 노래를 자주 켜두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유학생활이 익숙해져 버릴 만큼 익숙해져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쉽게 먹혀버리지 않게 된 이십 대 중반.


당시에는 만남을 이어가던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성인이 된 후로 늘 혼자 살았던 그녀 역시 나와 같은 습관이 있었다. 


우리는 노래 취향이 비슷한 듯 달랐기에 그녀의 플레이리스트를 딱히 선호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당시 그녀를 통해 뉴에이지 피아노 곡이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되었다. 잔잔한 피아노곡의 흐름에 얼마나 마음이 편안했던지.


같이 아침을 맞이한 후, 잠결에 들렸어도 너무 좋았던 피아노 곡 중 하나의 제목을 물어봤을 때, 그녀는 내게 바로 정답을 바로 알려주는 대신 이런 퀴즈를 냈었다. 


"창밖을 한번 볼래? 그걸 보는 네 모습이 이 노래 제목의 힌트야."


얇은 커튼을 뚫고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 맑게 들어오고 있었고, 그녀는 햇빛이 비치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제목을 알려주었다.


그 곡의 제목이 바로 '그날의 너, 눈부시던 햇살'이었다.




나는 저 노래가 참 좋았다. 서정적인 감성이 묻어나는 제목은 물론, 곡 자체에서 느껴지는 따듯함은 늘 내가 혼자가 아님을 알게 해 주었다.


저 시기가 내게 있어 아주 좋았던 것도 있다. 하나같이 성격도 좋고 착한 친구들을 가득 만났던 데다, 학교생활도 정신없이 바쁘지만 보람도 넘치고, 무엇보다 내 곁에 늘 있는 여자친구의 존재감이 컸던 만큼 나쁜 일은 전혀 없었지.


다만 그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코로나가 시작되며 그 많은 친구들은 모두 귀국했고, 나의 학교생활도 무너졌으며, 여자친구 역시 떠났다. 


이때부터 다시 외로움의 시작이었다. 내게 있어 무엇보다 따듯했던 그 곡은, 다시금 나의 외로움을 대표하는 음악이 되었다. 

 



어떠한 습관이 이전 연인과의 만남을 통해 생겼을 때, 사람들은 '전 연인 작품'이라는 말을 쓰곤 한다. 나는 이 말이 참 웃기면서도 재밌다.


내게 있어서 저 음악은 '전 여자 친구 작품'이겠지. 하지만 달리 숨기진 않는다. 나라는 인간의 갤러리엔 '전 연인 작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친구의 작품'도 있고, '가족의 작품'도 있다. 별로 좋아하진 않던 사람의 영향을 받은 '싫은 사람 작품'도 있다. 우리는 누구나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중학생 때 좋아했던 아이가 뮤지컬을 좋아했길래 같이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아이보다 뮤지컬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젠 그 아이의 얼굴도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난 아직도 뮤지컬을 좋아한다.


한때 동고동락하며 같이 일을 했던 사람. 비록 마지막에 크게 틀어져서 더 이상 보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가 내게 가르쳐준 일 덕분에 현재 나만의 사업체를 꾸려나가 열심히 살아간다. 그가 없었으면 시작하지 못했을 일이다.


요컨대 내가 좋아하고 지금은 내 것인 것들이,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이제 와서 딱히 중요하지 않다. 그 모든 것들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나만의 것이 되었던 것이다.




그 노래 역시, 많은 시간이 흘러 이제는 모든 의미들이 풍화된 채 그저 나의 습관으로 남아버렸다.


하지만 지금도 그 음악을 들을 때면 가끔은 외로운 느낌이 든다. 현재 내가 그렇다고 느끼는 건지, 아니면 당시의 내 모습이 떠올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묘하게 차분해진다.


프랑스 생활. 외로웠지. 누군가 곁에 있을 때도 있고, 떠나간 적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늘 외로웠어. 내가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이 공간에서 계속 있는다는 건 참 그랬었지.


언젠가 근본적인 외로움이 끝난다면 나는 더 이상 이 노래로 밤을 시작하지 않게 될까? 


내 밤의 시작은 아직까지도 '그날의 너, 눈부시던 햇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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