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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아 Apr 11. 2024

인스턴트 여자친구 (3)

이십 대의 마지막 연애일 수도 있는

내 연애는 이전 연애를 통해 배운다.


나는 그녀에게 살가운 행동과 말과 행동을 하려고 늘 신경 쓰며 가감 없는 애정을 드러냈다.


사실 이번 관계를 마주함에 있어서 꽤나 힘이 들어가 있었다. 이전 연애가 결혼을 꿈꾸었다가 헤어졌던 만큼, 더 이상은 그런 이별을 경험하는 건 사양이었기에 참 많이 노력했다.


지금 돌아보니 그게 마냥 좋게 작용하진 않았을지도 모르는 노릇이지만.




그녀는 나한테 참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자주 얘기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계속하여 이 생각이 맴돌았다.


'그렇지 않아. 나도 너와 같아.'


나에 비해 성격이 불같고 목소리도 큰 그녀였지만, 불과 몇 달 전까지의 나도 그녀와 다를 바가 없었다. 길게 다녀온 여행에서 나름의 생각을 정리했기 때문인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통해 조금씩 내 감정을 다스리는 것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 역시 천성이 예민하고 불같은 사람이었다.


다만 아직 우리의 관계가 크게 쌓인 것이 없기에 그녀 앞에서 나의 그런 모습이 나타날 일이 없었을 뿐, 우리의 연애가 지속되었다면 또 어떻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찌 됐든 간에 나를 좋은 사람으로 봐주는 건 그 자체로 따듯해지는 일이었다. 내가 이 연애를 이어나가기 위해 잘해가고 있구나. 상대방을 배려해 가면서 잘해나갈 수 있겠구나 하고.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오늘 이별할 수도 있겠다는 각오를 갖고 그녀에게 말을 꺼냈다.


그녀와 나는 대화할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매일 연락을 하지만 보통 업무시간에 짬이 날 때 대화하는 수준인 데다, 당장 그녀의 개인적인 상황들이 겹쳐져 질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도저히 나지 않았다. 게다가 자주 볼 수 없는 먼 거리도 한몫했고.


내가 그녀와 다양한 공통점을 느꼈더라도, 어찌 됐든 간에 그녀와 나는 완전히 같을 수는 없는 타인이다. 그 차이는 분명 대화와 만남을 통해 익숙해질 정도라고 느끼긴 했으나, 지금 당장 그 쉬운 일조차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다. 제대로 대화할 시간도, 만날 수 있는 시간도 여의치가 않은 상황에서 알게 모르게 오는 마찰에 꽤나 빠르게 지쳐갔다.


가장 중요한 건, 난 그녀와의 관계에서 사랑받는 느낌을 별로 받지 못했다. 마음은 울적했지만 이렇게 생각이 들었다.


'막상 만나보니 내가 별로였을 수도 있겠지 뭐. 착한 것과는 별개로 말이야.'


짧게나마 내가 알았던 그녀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굳센 아이였다. 이별의 말을 꺼내도 쿨하게 돌아서고, 나 같은 사람은 금세 잊어버릴, 그런 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봐온 그녀의 모습은 그랬다.


그렇기에 나 역시 붙잡거나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나의 말을 전부 들은 그녀는 계속 침묵을 지키더라. 꽤나 오랫동안.


그 후 그녀에게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오랫동안 아무 말도 꺼내고 있지 못했던 건 이별을 맞이할까 봐 겁이 났단다. 그렇기에 그녀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겁이 난다고?'


나는 그 표현에서 의아함을 느꼈다. 당연하게도 그녀 역시 빠르게 마무리하자고 할 줄 알았는데, 저 표현은 뭐지? 내가 잘못생각했던 걸까?


여기서 아차 싶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여자친구를, 내가 뭘 안다고 혼자서 판단하고 그녀의 성격이나 성향을 멋대로 생각해 버린 거지?


그녀는 분명 내게 직접적인 애정표현을 드러내거나 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나와 대부분의 일상을 매일같이 공유해 주었다. 


시간 될 때마다 전화를 붙잡고 있고, 같이 게임을 하고, 소소한 대화라거나 여행 얘기를 하며 다음번 만날 땐 어디를 가자느니 하는 약속들. 


이제 시작하는 단계의 연인에게, 내가 더 이상의 실패를 하고 싶지 않다는 욕심에 너무 힘을 줬구나. 저 하나하나의 일상을 공유하는 모습들이 그녀 나름의 애정표현이었을 텐데, 나 혼자 또 서둘렀구나.




롱디, 내 20대 연애에서 롱디는 참 지긋지긋했다.


프랑스에 살아가며, 꽤나 다양한 롱디를 겪었다. 그리고 물리적인 거리에서 나오는 마음의 멀어짐은 참 여러 번이나 겪었다.


특히 프랑스-한국이라는 거리에서 겪은 롱디는, 당연한 얘기지만 끝이 모두 좋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번 인스턴트 그녀와의 롱디에서 자신감을 느꼈다. 내 업무는 그다지 위치에 대한 제약을 받지 않는 데다, 더 어려운 관계도 지속해 본 만큼 대중교통으로 2~3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의 롱디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나는 연애의 초점을 '롱디'에 맞췄으면 안 됐다. 서로가 가진 거리감, 본래 갖고 있던 각자의 스케줄.


우리는 천천히 알아가야 하는 단계였는데 내가 '만날 수 있을만한 롱디'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 너무 급급하게 거리감을 좁히려 했다. 


내 조급함이 그녀를 부담스럽게 했겠구나.




결국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지금에라도 다시 한번 붙잡아볼까 하는 마음을 한번 드러냈지만, 이미 그녀는 생각을 굳힌 듯했고, 우린 그렇게 담담히 헤어졌다.


마지막까지도, 그녀는 내게 말하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그녀에겐 우리가 만남을 이어갔던 짧은 순간조차 개인적으로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당사자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꽤나 버거워 보였다.


가뜩이나 힘들었을 그녀에게 내 연애에 초점을 맞추기 바빠서 이렇게 서둘렀다니.. 에휴, 조금만 더 찬찬히 지켜볼걸. 


그래도 짧은 연애기간에 비해 최선을 다했다. 내 모습을 갖고 있던 그녀에게서 정말 많은 것을 다시금 배웠으니.


짧은 인연이었지만 만나서 반가웠으며, 너의 정신없는 시기가 별일 없이 얼른 지나가기를 바라.


나와 비슷한 성격과 성향, 어떠한 것을 바라보던 태도, 심지어 완전히 같아서 놀라웠던 특정 습관이나 말투, 너를 통해 나의 모습을 잔뜩 보았어. 


실패라고 생각 말자. 다음번의 나는 지금보다도 더 나은 모습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다가갈 수 있겠지 뭐.


어쩌면 이십 대의 마지막 연애가 될 수도 있는 인스턴트 그녀와의 만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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