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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고 Apr 13. 2023

아내 하객룩에 대한 고찰

소비


아내 친구의 결혼식을 앞둔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아내_"옷 사러 가자."


나_"무슨 옷? 지난번 다른 친구 결혼식 때 입었던 옷 있잖아. 왜?"


아내_"없어, 그 옷."


나_"응? 그 옷이 어디 갔어?"


아내_"그냥 없는 거야. 그러니까 사러 가자"




그렇게 옷을 사기 위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옷을 좋아하는 난 아내의 옷 쇼핑에 더 관심을 기울이며 도와주고 싶지만, 그런 내 마음과는 달리 아내의 옷 쇼핑은 어렵게만 느껴진다.


아내와 쇼핑할 때, 아내에게 잘 맞는 옷을 찾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아내가 더 예쁘게 보이길 바라는 마음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쇼핑을 하지만, 구매에 이르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런 어려움을 헤쳐나가도 구매로 이어지진 않는다.




하객룩은 무엇일까?

결혼식에 입고 가는 옷이라고 정의를 내리면 될 것 같은데, 좀 더 파고들어 나의 생각을 더하면 '옷 입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 신부 다음으로 가장 아름답게 보여야 하고, 그날의 주인공인 신부가 입는 드레스의 하얀색을 제외한 옷'이라 정의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게 보여야 하는 점이 하객 룩을 고르는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럼 하객룩은 어떻게 고를까?

간단하게 생각의 흐름을 정리하면,


지난번 결혼식 때 입은 옷은 유행이 지났네?

평소에 입는 옷은  TPO에 맞지 않네?

그나마 격식 있는 옷은 마음에 안 드네?(매우 주관적으로)  

그럼 새 옷을 구매하자!


이런저런 생각 끝에는 항상 새 옷을 구매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진다.




자, 그럼 새 옷을 구매하러 가보자.

사실 새 옷을 구매하는 것도 쉽지 않다.


쇼핑을 하기 전에 먼저 색깔, 형태, 스타일을 정한다.

수십, 수백 가지 옷이 있는데, 입어보기 전에는 마음에 들어도 실제로 입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왕왕 있다.


그리고 마음에 들어도 성격상 구매로 바로 이어지진 않는다.

만약 아내의 재킷을 구매한다면, 이 재킷이 지금 입고 있는 옷뿐만 아니라 집에 있는 옷과 어울릴까? 더 나아가 결혼식이 3월 말인데 이 정도 두께는 덥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많은 고민을 했지만 옷을 구매하지 못하고 돌아설 때도 있다. 다시 한번 더 고민하고 입어보고 고민하는 일련의 과정을 몇 번 더 거쳐야 아내의 하객룩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소비에 실패할 여유'라는 짧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읽으면서 큰 공감을 했다.


나만 하더라도 무언가를 구매할 때 많은 생각을 한다.

'이 옷이 정말 최선의 선택일까?, 지금의 구매를 나중에 후회하지는 않을까?


왜 그럴까?


구매하고 안 입는 옷, 한 번만 입고 당근 마켓에 반값도 안되게 판매한 옷, 옷장에서 먼지만 쌓여가는 옷.


나를 거쳐간 옷이 계속해서 나의 발목을 붙잡는다. 그러면서 더욱더 소비에 실패할 여유는 작아진다.

결과적으로 나는 작은 실패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옷 때문에 실패를 두려워한다는 건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실패를 두려워하진 않았다. 단순히 한정된 자원(돈) 내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고민했었다.

최선의 선택을 시도하다 보니, 난 언제나 구매하는 옷이 '다른 옷과 어울릴까? 계속 입게 될까?'를 고민했었고, 결국에는 무난 무난한 옷들만 샀었다.


그렇게 해서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뭐, 돈만 아낀 것 같다.

실패를 두려워하다 보니 취향의 폭이 좁아지는 결과를 낳았다.

항상 리뷰를 찾아보고, 다른 사람들의 실패를 통해서 나의 실패를 불러일으킬만한 요소를 최소화했다.

소비는 결국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선택이므로 스스로 하지 않으면 내가 다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으려고 더 노력했었다.


실패할 여유는 없어지고, 실패하지 않기 위한 조바심만 늘어났다.


이런 나에게 필요한 생각은 바로 실패해도 괜찮다는 여유이다. 그 여유 속에서 나의 취향을 알아가고 취향의 폭을 넓히길 원한다.


나에게도 실패할 여유가 깃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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