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알콜인데 왜 취하는것 같죠?
분위기에 취기가 오른다.
맥주를 사랑한다.
소주나 고량주같은 알콜의 향내가 목구멍을 긁어대며 지나가 속이 뜨거워지는 독주는 잘 못마시는 탓도 있지만, 탁 하고 캔을 따서 벌컥벌컥, 꿀꺽꿀꺽 맥주를 마시는 행위부터 너무도 개운하여 추운 겨울에도 그렇게 상쾌한 기분이 들 수가 없는 것이다.
진정한 맥주 애호가라면, 브랜드 별 맛의 특징이 두드러지고 향과 맛이 강한 에일맥주를 즐길줄 알아야 된다고 하지만 나는 맛이나 향을 음미하기보단 맥주를 마시는 그 행위를 좋아하는 탓에 에일맥주보다 더 맑고 밝으며 탄산의 세기가 센 라거맥주를 브랜드에 관계없이 즐겨마신다.
더울때는 물론이거니와,
몸을 쓰는 강도 높은 노동을 마친 후에,
음식과 곁들여서(그것이 한식이든 양식이든 관계없이),
씻고 나왔을때,
영화를 보면서 간식과 함께.
또는 캠핑 다음날 아침 이것저것 다 때려넣은 찌개와 함께.
그리고 떡볶이와 함께, 혹은 라면과 함께.
홀짝 홀짝.
이렇게 나에게 맥주는 단순히 취하고 싶은 술의 단순한 기능을 넘어 평범한 일상을 기분좋게 지낼수 있게 도와준다.
최애인지라, 정말 많이도 마셨다.
하룻밤 자는 캠핑에서 캔맥주 20개는 기본이며, 즐거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엔 언제나 맥주캔으로 볼링핀을 세웠다.
쓰지 않게 넘어가는데 기분좋게 취해지니 이것보다 신나는 일이 어딨겠는가. 맥주는 배가 불러서 많이 못마신다지만 화장실만 몇번 왔다갔다하면 콩쥐가 채우던 그 밑빠진 독에 물 붓듯이 맥주가 들어갔다. 소양인은 보리와 궁합이 잘 맞는다더니 그래서 맥주가 이렇게 잘 들어가나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맥주의 알콜조차(한캔의 알콜은 미미하지만 다량의 캔의 알콜은 무시 못할 터) 해독하지 못하고 자주 넉다운이 되고 필름이 끊기는 날이 많아졌고, 이것이 알콜성 치매인가 싶어 덜컥 무서워졌다.
나의 걱정이 눈에 보인다는 듯 큰딸로부터 일일 맥주 5캔을 넘지 말라는 엄벌이 내려졌다.
그래, 딸 앞에서는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순 없지.
당장에 맥주를 마시지 않겠다고 호기롭게 다짐 했지만 이미 나라는 사람의 이미 큰 부분이 되어버린 그것을 단박에 끊어내긴 쉽지 않았다.
한쪽문이 닫히면 한쪽문이 열리기 마련이니, 맥주의 문이 닫히니 무알콜 맥주의 문이 활짝 열렸다.
무알콜 맥주가 나온것은 이미 오래되었지만, 요근래 무알콜 맥주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
일반 맥주 브랜드마다 무알콜(혹은 비알콜)맥주가 신상으로 쏟아지고, 맥주향을 입은 탄산수도 출시되고 있다.
이들이 어필하는 부분은 한곳으로 통해있다. 맥주가 주는 청량한 가벼움의 기능.
가벼운 기분으로 무알콜 맥주의 도움을 빌어 좀 더 컬러풀하고 신나게 상쾌한 일상을 지내 보자는 것.
내 간지러운 부분을 이렇게 시원하게 긁어주다니!!
당장에 내 입에 맞는 브랜드를 찾아냈고(대부분 보리향과 이산화탄소의 조악한 조합이지만 개중 정말 맥주와 비슷한 브랜드가 있다.), 가을 수확한 농부의 마음으로 냉장고를 가득 채웠다.
취하지도 않는 술. 억지로 맛을 흉내낸 술과 음료수 그 중간의 이도저도 아닌 음료를 뭐하러 마시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지금의 무알콜맥주 시장의 타겟에 나는 꼭 들어맞는 케이스이기에 기꺼이 즐기고 있다.
밑빠진 독에 맥주 부어대던 예전처럼 마시진 않아도 작은 무알콜 맥주 하나면
몸을 쓰는 강도 높은 노동을 마친 후에,
음식과 곁들여서(그것이 한식이든 양식이든 관계없이),
씻고 나왔을때,
영화를 보면서 간식과 함께.
또는 캠핑 다음날 아침 이것저것 다 때려넣은 찌개와 함께.
그리고 떡볶이와 함께, 혹은 라면과 함께.
홀짝, 홀짝
이전보다 더 가벼운 마음으로 무리한 음주를 한다는 죄의식에서 벗어난 기분으로.
한껏 분위기에 취해 보는 것이다.
가끔 그 분위기에 너무 취해 정말로 알딸딸한 기분이 들고 광대뼈 뜨끈한 기운이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 드는것은,
정말로 기분 탓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