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에 끝은 없고-
차를 타고 지나던 길에 우연히 눈에 띈 <문해력지도사자격증과정> 수업에 관심이 생겨 평생학습원 강좌를 신청했다.
이 강좌를 통해 취업의 일로를 걸어보겠단 야심 찬 포부가 있었다기 보단, 문해력은 근래 가장 관심이 많이 가는 키워드였던 데다 글 읽기 자체에 거부감이 있는 작은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그리고 단순하게 "한번 배워보고" 싶었던 이유가 더 컸다.
배우면 재밌겠다 하고 가벼웠던 내 마음은 첫날 자기소개 시간에 바로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베트남에서 한국인 수업을 하시던 분,
건설회사에서 근무하다 암투병으로 퇴직하신 후 완쾌가 코앞이라 뭔가 배우고 싶어 오신 분,
논술교습소를 운영 중인 분,
그림책 수업을 하시는 분,
독서토론교실을 하시는 분,
한국어강사 자격증을 따고 외국인 강의에 도움이 될까 신청하신 분..
수업을 신청하신 분들의 스펙이 그야말로 장난이 아닌 가운데 나의 소개를 할 차례가 되고 말았다. 나이가 40을 넘겨도 처음 보는 사람들이 한가득인 곳에서 "안녕하세요. 저는 ○○○입니다." 이런 자기소개는 정말이지 너무나 곤욕스럽다. 소심한 성격인 데다 앞선 분들의 어마어마한 소개를 들으니 그저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학부모일 뿐인 나의 어깨가 더 쪼그라드는 기분이다. 그리하여 결국엔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염소 한 마리가 울대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녀 요들송에 가까운 운율을 만들어내며 요란하고 초라하게 자기소개를 마치고 만 것이다.
교실 내에서 서로 간의 호칭을 선생님으로 불러주셨는데, 그동안 여기저기서 들었던 선생님의 호칭은 그저 존칭의 개념이었다면, 이곳에서의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그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업으로 가지는 사람들을 칭하는 것 같았고, 망쳐버린 자기소개와 더불어 선생님이 가지는 그 뜻과는 거리가 먼 나는 선생님으로 불리는 것조차 낯부끄럽고, 앉은키가 계속해서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들은 정작 아무 생각이 없었겠지만, 이미 그들의 멋지고 대단한 기세에 눌려버린 나는 그 교실에서 철저히 보잘것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노바디의 기분으로 첫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내리는 차가운 봄비만큼이나 쌀쌀했다.
Nobody.
노바디인 나는 생각했다.
나는 그곳에서 Somebody였길 바랬던 걸까?
배움엔 끝이 없고, 그들도 그저 새로운 지식을 배우러 왔을 뿐이다. 그 속에서 내가 꼭 존재감을 드러낼 필요가 있을까?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의 입장에서 나의 육아관은 썸바디가 아닌 노바디로 키우자는 것이다. 마치 얀테의 보통사람의 법칙처럼. (오죽하면 큰아이 태명도 보통만 되라고 보통이로 지었었을까.)
특별할 필요 없다고,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고 자만하지 말라고 아이들에게는 이르면서 정작 나는 특별히 내세울 게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였나 싶은 생각에 마음이 따끔했다.
아무도 아니면 어떠한가.
그렇기에 더 배우고자 하는 것인데.
당당한 노바디가 되어보자!! 하고 마음을 먹으며 의식적으로 곱아든 어깨를 펴보았다.
물론 지금도 수업 중간중간, 교양이 가득한 어조의 "선생님"들의 특별한 의견이 오고 가는 순간에는 그 사이에서 흠칫하는 순간도 많지만 노바디이기에 더 새롭고 신나는 마음으로 수업을 듣고 있다.
앞으로도 마음이 쪼그라 붙을 것 같을 땐 효리언니의 그 말을 속으로 꼭꼭 되새겨야겠다.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
노바디, 애니바디 만만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