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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배 Apr 10. 2024

베고니아 꽃길

그 구태의연함에 대해.

학교의 정문을 지나 왼쪽으로 꺾고

파고라 밑 야트막한 오르막길을 지나면 학교 건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어있다.


파고라 밑에 듬성히 놓인 벤치는 하굣길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들의 쉴 곳이 되어주기도 하고,

하교할 때는 내리막길이 되는 그 길은 신나게 뛰어내려오다 가속도가 붙어 더 신나게 뛰어내려올 수 있게도 해 주며,

가끔, 아주 아주 가끔은

그 신남을 이기지 못하고 몸으로 김밥말기 하듯 옆으로 데굴데굴 굴러 내려오는(보호자로서는 심장이 내려앉지만 정작 아이들은 깔깔 신이 나는) 슬라이드가 되어주기도 한다.


집을 나와 교실로 들어가기 전 걷게 되는 그 작은 오르막길에 매년 꽃화분을 놓아주는 것이 우리 동아리의 소소한 활동이지만 매년 빼먹지 않는 활동이기도 하다.


이제 3년 차인 우리 동아리는

재작년엔 백일홍, 작년엔 메리골드를 심어 주었다.

그리고 올해는

장미처럼 예쁘지만 가시는 없는

장미 베고니아를 심었다.


꽃화분을 놓아준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학교를 오고 가는 그 짧은 순간에도 꽃과 함께 향긋한 기분이 되길.

너희가 걷는 길이 꽃길만 되길.


학교 안의 학부모 동아리라고 하면

약간의 치맛바람을 휘두르려는 유난스러운 엄마일까?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혹은,

본인 시간과 품을 들여서까지 학교에서 무얼 한다는 것이 에너지 낭비라고 생각할지도.


처음엔 나도 그랬다.

코로나가 전국을 집어삼켰을 적 유례없던 5월 입학식으로 큰아이의 학교 생활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학교의 주인은 선생님과 학생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다 점점 아이의 학교생활도 점차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고 점점 학교 내의 학부모가 갖는 역할이 그리 작지만은 않다는 것을 학부모 동아리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치맛바람이 아니다.

내 아이가 담임선생님께 잘 보이게 하기 위함은 더더욱이 아니다.

그저 내 아이가 다니는, 하루의 절반 가까이 머무르는 학교라는 곳이 공부만 하고 오는 재미없는 곳이 아닌 좀 더 다채로운 곳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학교의 작은 텃밭에 작물을 심고, 물을 주고, 여러 모습으로 자라는 것을 바라보게 하며 흥미를 가지게 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꽃길을 만들어준다.

그런 구태의연한 엄마의 마음으로.


어떤 날은 잔뜩 신나는 마음으로,

어떤 날은 잠이 덜 깨 피곤한 눈을 비비면서,

또 어떤 날은 엄마한테 혼이나 시무룩한 기분으로

걸어 올라가는 그 길에

우리가 심은 꽃이 아이들의 마음을 비춰 준다면

그래서 잠깐이라도 산뜻한 기분이 되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더 바랄 것이 없다.


웬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살아 돌아온 것 같은 빤한 소리냐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뻔하디 뻔한 구태의연함이 때로는 화려하게 구색을 맞춘 미사여구보다 더 진심인 때도 있다.


아이들은 언제나 귀엽고,

꽃은 언제나 예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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