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보내고 일 년
엄마는 전화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어디 가서 늦게 오더라도 언제 오냐고 먼저 전화하지 않으셨고, 엄마가 어디 가더라도 이렇다 저렇다 자주 전화하지 않는 분이셨다. 그냥 잘 있나 보다, 금방 들어오겠지 서로 믿으면서 그렇게 커왔다.
그런 성장 배경 때문인지 나 또한 커서도 전화를 자주 못 드렸다. 결혼하고 나서야 의무감에 가끔 안부 전화드리는 정도였다. 정신 놓고 살다가 몇 주 깜빡하면 한두 달 만에 전화하는 일도 있었다. 그렇다고 엄마는 서운해 하거나, '자주 전화해라' 말 한번 한 적이 없었다. 며느리에게도 안부 전화를 바라지 않았다. 속으로는 어떤지 몰라도 겉으로는 그랬다.
그런 엄마가 언제부턴가 아들의 전화를 기다렸다. '왜 이리 오랜만에 했냐?' '아들 목소리 까먹겠다' 등등 가끔 애교 섞인 투정을 부렸다. 아~ 엄마도 이제 나이가 들었구나... 단순히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때부터 라도 자주 연락하고 얘기 많이 들어주었어야 했는데... 이제 엄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된 지금에서야... 너무 미안한 마음이 가득 차 오른다.
그리고 일이 년이나 지났을까 엄마에게 암이라는 놈이 찾아왔다. 마치 그 녀석이 찾아오려고 예상이나 했던 것처럼, 엄마는 아들의 목소리가 그리웠었나 보다.
엄마의 암 투병 이후, 전화의 빈도가 늘었다. 막상 아들의 전화가 잦으니, 엄마는 '왜 자꾸 전화해!' '난 괜찮아' 하며, 전화 자주 하지 말라고 하셨다. 본인이 힘든 걸 숨기고 싶으셨을까.... 아들이 신경 많이 쓰는 게 미안해서였을까....
엄마의 투병이 힘들어지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엄마와 누나의 전화가 두려웠다. 발신자 번호가 뜨는 순간 왠지 모를 가슴 답답함이 느껴졌다. 혹시나... 안 좋은 소식은 아닐까... 혹시나... 위독하다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전화를 받고 안부를 묻고 안도한다.
5월 26일.. 아침 누나에게서 전화가 온다. '어~ 엄마 괜찮지?' 나의 물음에.. 누나의 목소리 떨림이 심상치 않음을 금방 직감할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두려워했던 전화였다. '의사가 오늘 넘기기 힘들 거래' 울음으로 가득 찬다. '빨리 갈게' 하던 일을 누군가에게 맡기고 집으로 달려가 차를 몰고 갔다.
허공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 한마디 한마디 힘들어지는 엄마의 호흡... 몇 달 전까지 전화기로 들렸던 호탕한 엄마의 목소리가 너무나 그리웠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하는 목소리를 2분 정도 녹음해 두었다. 그때만 해도 엄마 특유의 씩씩함이 목소리에 녹여져 있다. 엄마가 전화 통화를 하고 싶을 때 가끔 그 목소리를 듣는다.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엄마의 모습과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엄마의 목소리...
너무나 듣고 싶다. 엄마라고 한번 불러보고 싶다.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대상이 없다는 허전함이 너무 크다.
이제와서야.... 늦은 후회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