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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브 고 Jan 12. 2021

1. 우리는 ABC부터 시작한다.

도대체 영어 스피킹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변화를 위해서는 현재 모습을 알아야 한다. 뼈 때리는 말이 될 수 있다. 많이 아플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먼저 하자.

우리가 영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시점을 생각해보자. 연령에 따라 시점이 다를 수 있지만, 한국에서 배운 영어라면 시작의 모습은 비슷할 것이다. 분명 A, B, C, D. 알파벳을 먼저 배웠을 것이다. 검은 줄 3개와 빨간 줄 1개가 그려진 영어 노트에 대문자와 소문자 알파벳을 익혔다. ‘대문자와 소문자는 왜 모양이 다르게 생긴 거지’ 생각하면서 삐뚤빼뚤 글씨를 그렸을 것이다. 그리고 알파벳의 순서를 외우고 쓰기를 반복하면서 알파벳을 읽거나 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알파벳을 모르는 분도 있다. 알파벳은 영어로 말하는데 큰 지장이 없다. 위로하려는 말이 아니라 진짜 괜찮다. 끝까지 지켜보자.) 그리고 알파벳을 읽고 쓸 수 있게 된 사실에 칭찬을 받았다. 스스로 뿌듯해하며 자신의 이름을 영어로 써보기도 하고 알파벳을 좀 더 잘 쓰고 싶어서 나름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알파벳 하나만큼은 정말 잘 쓴다. 일례로 해외에서 영어 어학원을 다녔을 때 일이다. 매일 과제를 제출했는데 하루는 내 이름을 적지 않고 과제를 제출했다. 다음날 영어 선생님께서 어떻게 아셨는지 내가 낸 과제물을 나에게 돌려주시면서 이야기했다. “내가 많은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한국 사람만큼 알파벳을 정말 하나하나 알기 쉽게 쓰는 사람은 없더라. 스티브 그래도 다음엔 이름 써서 내.” 영어의 기초는 알파벳이 맞다. 알파벳을 모르면 영어를 읽거나 쓸 수 없다. 스스로 영어를 공부할 수 있는 기본은 알파벳이 맞다. 알파벳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게 아니다. 나는 알파벳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알파벳 학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속에 영어의 4가지 요소가 전부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알파벳을 듣고(Listening 리스닝), 알파벳을 읽고(Reading 리딩), 알파벳을 말하고(Speaking 스피킹), 알파벳을 쓴다(Writing 라이팅). 우리가 영어 알파벳을 배우는 과정을 살펴보면 우리가 왜 영어로 말을 잘 못하는지 유추해 볼 수 있다.

언어 학습 순서 차이 (한국식 영어 vs 원어민 영어)

첫째로 원어민이 알파벳을 학습하는 순서는 우리와 달랐다. 우리는 알파벳을 배울 때, 입력 학습(읽기, 듣기)을 먼저 한 후  출력 학습(말하기, 쓰기)을 한다. 반면, 원어민은 알파벳을 배울 때, 음성 학습(듣기, 말하기)을 먼저 한 후 문자학습(읽기, 쓰기) 순서로 배운다. 원어민은 알파벳을 문자로 인지하기 전에 알파벳을 듣고 따라 하면서 문자 없이 학습을 먼저 한다. 이 학습 순서는 알파벳에만 한정되지 않고 우리가 배우는 영어공부 전반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영어 수업시간을 한번 돌이켜보자. 단어를 암기하고, 문장 구조를 배우고, 독해하고, 듣기 평가를 하는 주로 입력(리딩, 리스닝) 학습 위주의 영어를 했을 것이다. 그 후 짧게나마 영어로 이야기를 하는 회화시간과 아주 가끔 영어로 작문하는 출력 학습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영어를 입력하는 시간이 영어를 출력하는 시간보다 월등히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읽기와 듣기는 자신 있는데,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말하거나 쓰는 것은 자신이 없게 된 것이다. 국제공인 영어능력 평가인 아이엘츠의 통계자료를 함께 보자.

*IELTS(International English Language Testing System) General Training 2019 통계

한국은 입력 부분(읽기, 듣기) 보다 출력 부분(쓰기, 말하기)이 낮게 분포되어 있다. 반면 영어권 나라는 음성 영역(듣기, 말하기)이 문자 영역(읽기, 쓰기)이 높게 나타난다. 이는 학습 방법의 차이(입력과 출력, 음성과 문자)에 따른 당연한 결과다. 자연스러운 언어의 발달과정에서 문자적인 표현은 가장 마지막 단계(반응-소리-단어-문장-정교화-문자) 임에도 우리는 여전히 영어를 배울 때 알파벳을 제일 먼저 배운다.


두 번째로 원어민이 배우는 알파벳 수업에는 우리가 배우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스피킹(Speaking 말하기)을 하기 위한 알파벳을 배운다는 것이다. 내가 유치원에서 프리스쿨 학급(Preschool 취학 준비반)에서 교사로 있을 때 일이다. 부장 선생님이 아이들을 한 자리에 앉혔다. 알파벳 수업을 진행했다. 알파벳 모양을 하나하나 보여주었다. 알파벳의 첫 번째인 A 모양의 학습도구를 들어 올리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이건 어떻게 발음할까?” 나는 혼자 속으로 “에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부장 선생님은 “이건 아~라고 발음해. 다 같이 따라 해 볼까? (아~ 아~) 아~ 로 시작하는 단어는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이어서 B는 “브~” C는 “스~”라고 가르쳤다. 약간 놀랐다. 아니, 왜? ABCD를 “아~ 브~ 스~ 드~”로 가르치지? 그러다 잠시 생각해보고 이유를 알았다. 이는 스피킹(Speaking 말하기)과 직접적으로 연결이 된 알파벳 교육인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Apple이라는 단어를 “애플(아플)”이라고 말하지, “에이. 피. 피. 엘. 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상당히 큰 충격이었다.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배운 영어 방법의 순서가 잘못된 것 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리나라도 소리와 발음에 초점을 맞춘 파닉스(Phonics)라는 교수법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아주 긍정적인 변화다. 그런데 이 좋은 교수법 조차도 결국 단어를 읽고 정확하게 듣기 위한 입력 학습에 초점을 맞춰서 사용한다. 아직도 '입력과 출력'이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음성 학습을 위한 파닉스 수업방식도 결국 입력 학습(읽기, 듣기)에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용될 뿐이다.


알파벳과 관련된 프리스쿨에서의 경험을 한 가지 더 나누고 싶다. 프리스쿨반 아이들의 영어실력은 이미 만렙(최고 수준)이다. 그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다 영어로 표현할 수 있다. 개인 성향에 따라 수줍어하는 아이도 있지만 의사표현에 전혀 문제가 없는 레벨의 실력자다. 발음은 당연히 100% 네이티브 발음이고 문법적으로도 거의 완벽하다. 현재분사(have + p.p) 표현이나 부가 의문문까지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프리스쿨반은 영어의 끝판왕 레벨이다. 외국인인 나에게 프리스쿨 아이들의 영어실력은 그저 부러움의 대상일 뿐이었다. 모든 게 완벽한 줄 만 알았던 영어 끝판왕 프리스쿨 아이들에게도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알파벳이었다. 하루는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활동 중에 하나인 그림 그리기를 하고 있었다. 흰 종이에 엄마도 그리고, 아빠도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공룡도 그리고, 아이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리기에 집중했다. 그리기 활동 시간이 끝날 즈음에 한 아이가 내 이름을 부르고 이런 부탁을 했다. “Steve, can you write down my name on my picture, please?(선생님, 제 그림에 제 이름 좀 써주세요.)" 이 질문을 듣고 교육자 마인드가 발동한 나는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했으면 하는 마음에 “네가 써봐, 내가 도와줄게”라고 제안을 했다. 그 친구가 대답했다. “I don't know how to write my name.(제 이름 쓸 줄 몰라요.)" '엥? 진짜? 영어 끝판왕이 자기 이름을 쓸 줄 모른다고?' 다시 한번 물었다. “너 알파벳 몰라?” “I don't know how to write my name.(저 제 이름 쓸 줄 몰라요.)” 충격과 기쁨이 동시에 찾아왔다. 내게 넘사벽이었던 영어 끝판왕이 자신의 이름을 쓸 줄 모른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지만, 또한 굉장히 큰 기쁨이었다. '내가 이 녀석들보다 잘하는 게 있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유치원에서 나의 존재감이 가장 뿜 뿜 했던 시간은 그리기 수업 후 아이들 이름 써주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저는 영어 ABC만 알아요." "저는 ABC도 몰라요." 괜찮다. ABC 몰라도 영어로 말하는데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아니 영어의 ABC도 모르는데 어떻게 영어로 말을 해요?"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ABC 몰라도 영어로 말할 수 있다."  전 세계의 언어를 배우는 모든 원어민 아이들이 살아 있는 증인이다. 문자학습과 음성 학습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문자를 몰라도 언어는 배울 수 있다. “글을 모르는 문맹은 있어도, 말 못 하는 정상인은 없다.” 현재 나의 영어는 굉장히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임을 먼저 인정해야 변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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