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티브 고 Jan 13. 2021

2. 우리는 영어 단어와 숙어를 암기한다.

가장 좋은 영어 단어장은 과연 무엇일까?

쓴소리 두 번째 시간이다. 이번에는 우리가 경험한(또는 경험하게 될) 영어 공부 역사를 한번 살펴보자.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겠지만 알파벳을 배웠다. 이후 ‘단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단어장’이라는 늪에 빠진다. '좋은 단어장이 무엇일까?'라는 정답 없는 정답을 찾기 시작한다. 어원 설명이 있는 단어장, 우선순위가 있는 단어장, 초등학생/중학생/고등학생이 알아야 할 필수 단어장, 시험 기출 단어장, 공인 인증 시험을 위한 노랑이/초록이/주황이 단어장, 공무원 시험을 위한 몇 만 단어의 단어장, 그리고 내가 직접 정리한 단어장까지 아직도 그 정답은 찾지 못하고 있다. (영어 공부에서 단어는 정말 중요하다. 영어 단어를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는 PART 3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평생 끝나지 않는 단어 암기 이후에는 단어와 단어가 연결된 ‘숙어’ 암기가 기다리고 있다. 몇 개의 단어가 조합된 좀 더 덩치가 큰 단어 덩어리(청크 Chunk)를 암기하기 시작한다. 동사에 알맞은 전치사부터 2개 이상의 단어가 연결되어 마치 하나의 단어처럼 사용되는 숙어, 문장의 구문(분사구문, 부정 구문, 강조 구문,...), 두 단어가 어울려 전혀 다른 뜻을 나타내는 관용어를 외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제는 ‘문장’을 외우는 단계까지 가야 한다. 원어민이 자주 사용하는 문장의 ‘패턴(Pattern 일정한 형태)’ 을 분석해 외운다. 문장은 문장을 부르고 주옥과 같다는 명 문장으로 채워진 연설문을 외우고, 심지어 영화 한 편의 대사를 달달 외우는 방법까지 시도하게 된다. 현재 시중에 판매되는 영어 관련 서적 중 대부분은 '누가 더 필요한 단어와 숙어 정리했는지, 누가 더 많이 사용하는 문장 찾아냈는지, 누가 더 좋은 표현을 잘 분석했는지'를 경쟁한다. 그리고 영어가 ‘기적과 같이(대부분 이런 부류의 책에서 이야기하는)’ 완성되지 않는 책임은 언제나 이 암기를 완성 못한 우리의 탓 다. 우리는 암기라는 개미지옥에서 더 이상 빠져나올 수가 없게 된다.

ⓒ 예스24(Yes24)

간단하게 살펴본 영어 공부의 역사는 바로 나의 이야기다. 나름 영화 대사까지 암기했던 내가 '3살짜리 원어민 '과 대화에서 겪은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하루는 3살짜리 중국인 아이가 다급하게 다가와 울먹이며 물었다. “아이 워너 위(I want a 위)." 무슨 뜻이지? ‘아이(I)’는 '나'를 뜻하고, '워너(want a)’는 ‘무얼 원한다’는 뜻인데, 도대체 ‘위’는 무슨 뜻일까? 한참을 생각했다. 내가 아는 위(We)는 ‘우리’인데, 이 친구가 문법을 잘 몰라서 우리의 목적격인 어스(Us)를 잘못 말한 건가 싶어서 물어봤다. “혼자 말고 우리 같이 놀고 싶어서 그래?” 그랬더니 인상을 찡그리며 다시 말했다. “No, I want a .” 위! 도대체 뭐지? 상상력을 총동원했다. '위' 앞에 '어(a)'가 있다면 무슨 물건을 원한다는 건데, 발음이 약간 중국어 같기도 하고, 중국어 중에 ‘위’라는 이름의 장난감이나 인형이 같을 것 이야기 하는건가? 다시 물었다. “‘위’ 갖고 싶어? ‘위’가 어디 있어?”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고, 교실 문을 가르쳤다. '오케이. 장난감이 맞았군.' 유치원에는 개인 장난감을 사용할 수 없다고  차분하게 설명을 해줬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서 인상을 더 심하게 찡그리고 발을 동동 구르기까지 하면서 칭얼댔다. “I want a 위~~.” 유치원의 규칙상 안되는 일이니 아이는 따라야 할 줄도 알아야 한다. 교육자인 나는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안돼! 위는 집에서만 가지고 있는 거야." 그 순간, 그 아이는 구르던 발을 멈췄고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멈춰진 다리에는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렇다, 위(Wee)는 영어로 ‘오줌’을 뜻한다. 이 사건 이후로 정말 한참 동안 업무에 집중을 하지 못 했다.

내가 아는 오줌을 뜻하는 영어 단어는 위(Wee)가 아니고 ‘Pee' 나 'Piss’였다. 내가 외운 단어 중 오줌을 뜻하는 좀 더 격식 있는 단어로는 'Urinate' 도 있다. 오줌을 뜻하는 슬랭(Slang 은어)도 외웠다. "Number one." 이 은어를 포함한 영화 대사 "I'm gonna number one." 도 외웠다. 'Number one(소변)'의 응용 표현으로 'Number Two(대변)' 도 외웠다. 그런데 나는 '세 살짜리 아이'도 아는 영어 단어를 모르고 있었다. 영어를 20년 넘게 배운 다 큰 어른이 '세 살짜리 어린아이'도 아는 단어를 모른다니. 정말 똥오줌 못 가리는 상황이었다. 내가 외운 단어장에는 'Wee'는 없었다. 우선순위에도 없었고, 필수 단어에도 없었고, 공인 인증 시험 단어장에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 콜린스 영어사전(Collins Dictionary)

영어 단어뿐만 아니다. 영어를 암기 과목으로 인식하게 된 우리는 영어로 문장을 말하는데 큰 걸림돌이 있다. 하고 싶은 말을 먼저 한국말로 생각한다. 그리고 이 한국말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를 찾아 이 문장을 번역해서 영어로 말하게 된다. 유치원 동료 선생님들과 대화 중이었던 일이다. 유치원에 일하는 남자 선생님의 비율(10% 정도)은 매우 적다. 귀하기 귀한 유치원 남자 선생님이 그것도 보기 드문 동양인 남자 선생님이 유치원에 들어왔으니 선생님들은 쉬는 시간마다 내게 궁금한 질문을 많이 했다. 특히 한국 문화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나는 쉬는 시간마다 한국 문화를 외국인 친구들에게 알려주었다. 하루는 가족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한국의 '가부장제'에 대해 설명을 하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다. “우리는 가부장제에서 자랐어.” 이 익숙한 한국말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나는 이에 적절한 영어 단어를 머릿속으로 찾기 시작했다. 우리는 ‘We’, 자란다는 ‘grow’, 과거니까 ‘grew’,   "We grew." 그런데 문제는 ‘가부장제’였다. ‘가부장제, 가부장제...’ 가부장제는 영어로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결국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는) 하게 되었다. 집에 와서 사전에서 '가부장제'를 검색해봤다. 가부장제는 영어로 ‘Patriarchal’이었다. 그렇게 영어 단어를 외우지 못한 나 스스로를 자책하던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내 머릿속에 생각난 한국어를 번역하려고만 했을까? 그냥 쉬운 단어를 사용해서 "In my country, dads had absolute power. (우리나라는 아버지의 권력이 지나치게 강해.)"라고 해도 의미는 전달됐을 텐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의 요점은 이것이다. 단어(문장) 암기와 말하기 간의 균형이 필요하다. 한국식 영어의 특징은 어휘력이 뛰어나다. 하지만 말하기 능력은 상당히 많이 뒤처져 있다. 단어를 많이 알면 분명 유리한 점은 있다. 사실 매우 많다. 영어로 된 글을 읽을 때 막힘없이 이해할 수 있다. 단어의 소리까지 익혔다면 듣기에도 굉장히 유리하다. 그리고 어휘력이 풍부하다는 말은 표현력(말하기, 쓰기)이 풍부하다는 말과도 같은 뜻이다. 그러나, 단어를 많이 알고 있다고 말을 자동으로 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떤 사물을 봤는데 그에 해당하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단어의 알파벳 형태를 보면 비로소 생각난다? 이런 형태로 저장된 단어는 영어로 말하기에는 그다지 쓸모 있는 상태가 아니다. 영어로된 글을 읽는 데에만 사용하고 싶다면 지금의 영어 실력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영어로 말을 하고 싶다면 영어로 말을 하기 위한 단어 습득 방법이 필요하다.


내 경험 상 생후 36개월 정도 나이가 되면 영어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는 데 큰 지장이 없다. 36개월 된 아이가 사용하는 어휘량은 약 1,000 단어 정도다. 말하기 시작 단계는 1,000개의 단어로 충분하다. 이 단어들의 조합만으로도 영어로 말하기가 가능하다. 우리나라 교육부에서 지정한 중학교 필수 영어 단어 수는 1,200 단어다(Wee는 없다ㅋ). 우리나라의 의무 교육인 중등교육까지 마쳤다면 이론 상으로 영어로 말하기 충분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우리는 충분히 영어로 말할 수 있다.


'언어주의(言語主義)'라는 말이 있다. “교육 내용의 이해와 상관없이 문장 그대로 외우는 것을 중시하는 교육 태도”라는 뜻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익힌 영어가 딱 ‘언어주의 영어’라고 정의 내리고 싶다. 단어 하나하나가 주는 미묘한 차이에 상관없이, 어느 타이밍에 이 문장을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그대로 외우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 말이다. 쓴소리 들어줘서 고맙다. 곧 방법이 나온다.

이전 01화 1. 우리는 ABC부터 시작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