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영어를 잘한다’는 말부터 살펴보자. 우리는 어떤 경우에 ‘영어를 잘한다’ 고 이야기할까? 영어는 크게 4가지 영역(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으로 나눈다. 이 중 말하기(스피킹 Speaking) 영역에 수준이 높은 경우를 두고 ‘영어를 잘한다’ 고 평가한다. 영어 전공자나 영어 공인인증 성적이 높은 사람도 영어 말하기가 능숙하지 않으면 함부로 ‘영어를 잘한다’ 고 하지 못한다. 우리는 영어학습 단계 중 마지막에 위치한 영어 말하기까지 잘해야 감히 ‘영어를 잘한다’ 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영어 말하기를 잘한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이는 한국인과 외국인의 기준이 분명하게 나뉜다. EBS 다큐프라임의 실험이 설명에 도움이 될 것 같다. 한 60대 남성이 영어로 연설하는 것을 한국인과 외국인에게 들려주었다. 실험 참가자들은 연설자에 대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았고, 이 남성의 영어 연설에 대한 평가하는 실험이었다.
평가는 확연히 달랐다. 한국인의 반응은 ‘촌스럽기도 하고, 발음이 너무 딱딱 끊어져서’ 50점대의 점수를 주었다. 반면, 외국인의 반응은 ‘아주 높은 수준의 단어를 사용했고, 문장 구조도 좋았고, 의사도 잘 전달했으며. 내용이 분명하다’는 이유로 90점 대 후반의 높은 점수를 주었다. 이 내용은 21세기 명연설 중에 하나로 뽑히는 반기문 전 사무총장의 2006년 유엔 사무총장 수락 연설이었다. 누구의 기준이 맞는 걸까? 바블링 영어는 후자 편에 속한다. 정리하면 영어를 잘한다는 말은 “의사전달을 위한 말하기” 를 잘하는 것이다.
이번 챕터(아이는 영어를 잘한다)에서는 왜? 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다. 그리고 다음 챕터부터(아이는 잘 듣는다)는 어떻게? 에 대해 설명하겠다.
“왜? 36개월 일까?”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하자. 언어 발달 과정에서 생후 36개월 정도의 아이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시간관념(과거)도 구분할 수 있고, 공간(장소) 개념도 생기며, 1,000 단어 이상의 단어를 이해하면서 ‘주어+서술어+목적어’ 형태의 문장 표현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대화에 참여하려 한다’는 특징이 있다. 우선 다른 사람과 대화가 가능해진 후부터는 능동적으로 학습이 가능해진다. 또한 이 시기는 아직 문자학습이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문자는 읽는 것이라는 개념은 있지만 아직 문자를 통한 언어 학습에 제한이 있는 나이다. 즉, 문자학습으로부터 독립된 음성언어로만 학습이 이뤄지는 시기라는 말이다.
“왜? 음성 학습에만 집중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내가 영어를 배우는 원어민과 외국인을 지켜보며 내린 결론이다. 원어민이 언어를 배우는 형태를 ‘습득’이라 표현한다.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방법이다. 원어민의 언어 습득 과정은 보면 다음과 같다.
듣기와 말하기는 음성을 인식하면서 언어를 배우는 단계이고, 여기에 문자를 인식하게 되면서 읽기와 쓰기가 더해져 언어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능숙하게 영어를 사용하게 된다. 간혹 문자 습득 단계를 경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선천적으로 글자를 인식하지 못한다거나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경우인데, 이런 경우에도 표현력이 다소 부족할 수는 있지만 영어를 능숙하게 말할 수 있다. 문제는 외국인이 영어를 배울 때이다. 외국인이 언어를 배울 때는 습득이 아닌 ‘학습’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일정한 형태의 교육환경 언어를 배우는 방법이 학습이다. 즉, 외국인인 우리는 영어를 학습으로 배운다. 외국인의 언어 학습 과정은 다음과 같다.
문자를 인식하는 읽기와 쓰기를 바탕으로 듣기와 말하기인 음성 학습을 진행한다. 결과적으로 영어로 능숙하게 사용하는 단계에 이르는 경우는 소수에 속한다. 다음으로 음성 학습 단계를 온전히 학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아마 듣기는 듣는데 말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이 경우는 100% 영어를 능숙하게 말할 수 없다. 정리하면, 원어민과 외국인 모두 영어를 능숙한 단계까지 이르는 경우는 모두 말하기 단계를 거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른 말로 음성 학습 단계를 거치지 않고는 그 중에서도 말하기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영어를 능숙한 단계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말하기를 하지 않으면 해당 언어를 말할 수 없다는 주장은 전 세계 모든 언어학자들이 동의하는 바이다.
내가 경험한 유치원 아이들은 문자를 모르는데 말을 잘했다. 속도가 느리고, 문법이 맞지 않은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의사소통에는 크게 지장이 없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음성 학습에만 집중해도 의사전달이 가능한 수준의 말하기는 가능하겠구나!’ 그렇다고 문자학습의 영향을 부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독서의 영향력은 언어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다만 영어 말하기에 최대한 집중해보겠다는 의도다. 이 습득식 음성 학습을 마친 후에는 문자학습을 통해 더욱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왜? 문자학습을 제한할까?” 2 가지로 대답할 수 있다. 첫째는 문자학습으로 익숙해진 습관이 영어로 말하기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지금 읽고 있는 ‘책’이라는 사물이 있다. 이 책이라는 사물을 눈으로 인지하면, 뇌에서 책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사물에 해당하는 영어단어인 ‘books’를 생각한다. 그리고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나 이거 알아’ ‘쉽네’ ‘유치하네’ 그리고 이 단어를 영어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서 치명적인 함정은 바로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지적으로는 책이라는 단어를 아는 게 맞다. 하지만 음성학적으로는 이 단어를 “북~스~”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이것은 알고 있다는 착각일 뿐이다. 입술과 안면 근육과 성대의 떨림으로 ‘책’이라는 단어는 모르는 것이다. 둘째로 영어 단어를 눈으로 보는 순간 뇌에 저장된 수많은 기억들이 말하기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는 해당 단어에 대한 기억의 양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욱 불리하다. 예를 들어보면, ‘멈추다’를 뜻하는 영어 단어 ‘stop’을 봤다. 이 단어 자체에 대한 온갖 기억들이 떠오르게 된다. ‘stop 다음에는 to 부정사나 동명사(ing)가 붙고 각각 뜻이 다르게 해석되지.’ 더 많은 기억이 있는 사람은 ‘이와 유사한 형태로 forget이나 remember가 있어.’ stop은 그냥 ‘멈춰’라는 뜻이 전부다. 그냥 그 음성을 들었을 때 몸이 반응하면 된다. 우리는 영어 단어를 보는 순간 이와 관련된 지식이 너무 많아 말하기를 방해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글자를 몰라도 말은 할 수 있지만 글자만 안다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는 왜 영어를 잘할까?” 그리고 “우리는 왜 영어를 못할까?” 이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아이는 말을 계속하니까 잘하고, 우리는 말을 계속 안 하니까 못 한다.’ 그들은 원어민이니 잘하고, 우리는 외국인이니 못한다는 말은 과학적으로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원어민의 뇌에서 언어를 처리하는 영역인 브로만 영역은 학습자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활성화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고, 실제로 그런 사례를 주변에서 종종 본다. 어렸을 때 해외에서 생활을 하고 온 교포급의 영어 실력자나 해외를 한 번도 나가지 않은 국내파 실력자들도 이제는 정말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 같이 엄청난 양의 영어를 말로 했다는 사실이다.
간혹 해외에서 생활하고 온 영어 실력자에게 영어 공부 비결을 물으면 정확하게 대답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너무 어렸을 때라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한다. 그들은 기억 못 할 수도 있는데, 나는 외국에 있는 유치원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정확히 목격했다. 어린 나이에 타지로 건너 온 아이의 어려움을. 같이 놀고 싶은데 말이 안 나와서 친구들 곁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모습을. 내 잘못이 아닌데도 말로 표현을 못해서 억울하게 흘렸던 눈물을. 그리고 어떻게든 극복하고 싶어서 혼자 구석에서 영어로 중얼중얼거리던 그 끊임없는 노력을... 어렸을 때 외국물 좀 마신 사람들은 영어 그냥 배워서 좋겠다는 말은 함부로 할 수 없다. 그들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처절한 말하기 연습의 결과로 이루어낸 실력이다. 영어는 말하지 않으면 절대로 늘지 않는다. 이제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