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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브 고 Jan 14. 2021

3. 우리는 프렌즈로 쉐도잉 한다.

영어 미드 쉐도잉은 최고의 공부법일까?

우리가 배운 영어교육의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 입력 학습(리스닝, 리딩)에 중점을 두고, 단어나 문장을 외우기에 급급했다. 그 결과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스피킹의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이 시도되었고, 2021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영어 스피킹에 가장 효율적인 공부법을 뽑으라면 단연 “쉐도잉(Shadowing)” 일 것이다. "쉐도잉" 은 미국의 언어학자인 Alexander Arguelles 가 개발한 공부법이다. 원어민의 발음을 그림자(Shadow 쉐도우)처럼 따라가면서 흉내 낸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마치 노래방 마이크로 이야기를 하면 울리는 메아리 소리처럼 따라 말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원어민이 하는 말의 속도, 억양, 발음, 높낮이를 그대로 따라 하면서 스피킹 실력을 향상키는 학습 기법이다. “쉐도잉”은 통번역대학원에서도 사용하는 방법으로 알려지며 그 열풍은 아직도 대단하다.


“쉐도잉” 방법으로 말을 따라 하기 위해서는 원어민의 말이 담긴 교육 자료가 필요하다. 과연 어떤 자료가 쉐도잉에 적합한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대세는 단연 1994년부터 2004년까지 방영된 미국 드라마 “프렌즈(Friends)" 다. 미국의 엘렌쇼에 출연한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이 이야기했듯이, 한국의 모든 부모님들 사이에서 ‘프렌즈’를 자녀들에게 보여주면서 영어 공부를 시키는 게 신드롬처럼 유행이었다. 이 인터뷰 내용을 들은 뒤 많은 이들이 ‘역시 영어공부는 <프렌즈> 가 정답인가?’ 싶었을 것이다. 사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 미국 드라마 ‘프렌즈’는 아직도 영어공부 교재 최고 순위에 뽑힌다.  


'앨렌쇼(ellent show)'에 출연한 BTS ⓒellentube


‘쉐도잉’의 핵심인 “따라 하기” 는 굉장히 좋은 영어 학습 방법이다. 아이들이 언어를 배울 때도 이 “따라 하기”는 실질적으로 굉장한 역할을 한다. 어른들의 대화에 노출된 아이들은 실제 사용하는 언어의 속도와 억양, 인토네이션(Intonation 말의 높낮이)에 익숙해지며, 매끄러운 표현법까지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된다.


영어공부 방법인 ‘쉐도잉’과 관련해서 먼저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활용능력’이다. 유치원에서 2~3세 반을 맡았을 때 일이다. 이 나이 또래는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동화책을 많이 읽어준다. 선생님이 실제로 노래와 책을 읽어주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태블릿 PC로 보는 동화를 더 좋아한다. 어제도 3번이나 봤고 다음 날도 똑같은 동화를 틀어주는데도, 아이들은 처음 보는 듯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화 중 하나는 “아기 돼지 삼 형제”다. 아이들은 이미 동화에 나오는 대사뿐만 아니라 중간중간에 나오는 효과음까지도 다 따라 할 수 있는 “쉐도잉 마스터” 단계에 이르러 있다. “아기 돼지 삼 형제”에 등장하는 늑대가 있는데, 이 늑대를 묘사하는 표현은 “Big Bad Wolf(크고 사악한 늑대)" 다. 아이들에게 늑대를 묘사하는 표현은 ”Big Bad Wolf" 밖에 없다. 하루는 장난으로 “저기 Big Black Wolf(크고 검은 늑대)가 나타났네.” 그랬더니, 아이들이 아니란다. 이건 “Big Bad Wolf”라고 소리를 질렀다. 장난기는 멈추지 않았고, “아니야, 저기 'a little big bad wolf'가 나타난 거야.”라고 했더니, 그것도 아니란다. 아이들에게 늑대는 반드시 크고(Big) 사악한(Bad) 늑대(Wolf) 여야만 한다. 예외란 허용되지 않았다. 다양한 상황에서 자유롭게 변형할 수 있는 활용능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쉐도잉은 결코 효과적이지 못할 수 있다.


쉐도잉은 우리나라만 사용하는 학습 방법이 아니다.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울 때도 사용된다. 하루는 농구장에서 동네 친구들과 운동을 하고 있었다. 한국 문화에 정말 관심이 많은 친구가 내게 달려왔다. 그리고 갑자기 “짱”, “대박”, “미쳤어”라는 한국말을 나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자기가 한국 드라마를 너무 좋아해서 매일 반복해서 보는데, 극 중 주인공이 했던 대사가 “짱, 대박, 미쳤어” 였다고 했다. 우리가 미국 드라마를 보며 쉐도잉 하듯이, 이 외국인 친구는 한국 드라마를 보며 쉐도잉 공부를 한 셈이다. 그런데 그 친구가 할 수 있는 말은 “짱”, “대박”, “미쳤네” 이 세 단어가 전부였다. 본인이 입에 익힌 표현만 이야기할 수 있었고 나머지 대화는 자신의 모국어로 이야기했다. 사실 외국인 친구가 익힌 단어(짱, 대박, 미쳤네)로, 우리 한국사람들은 수많은 표현이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면, “ 맛있다.  멋있다.”, “대박 즐거웠다. 어제 본 영화는 진짜 대박이었다.” “방금 네가 보여준 춤은 진짜 미쳤다는 말 밖에 못하겠더라” 등 외국인 입장에서는 한국 네이티브 원어민의 응용력에 감탄할 만한 문장들이 줄줄 나올 것이다. 우리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 이 단어를 어느 위치와 상황에 써야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즉,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춰져야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한국어 실력을 높여줄 한국드라마 추천 4위 "미생" ⓒFluentU


영어 공부법 ‘쉐도잉’과 관련해서 다음으로 나누고 싶은 내용은 ‘표현의 불균형’이다. 외국인 친구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 친구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상상해보자. (이야기를 상상할 때, 외국인 친구 위치에 나 자신을 이입시켜보자.) 이 외국인 친구는 한국어가 너무 배우고 싶다. 그리고 한국을 너무 좋아해서, 한국계 기업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고 하자. (실제로 그 친구는 한국계 기업에 취직하고 싶어 했다.) 이제 한국 사람들과 회사생활을 해야 하니, 한국어 잘하기 위한 간절함이 더 커졌다. 한국어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하고, 그리고 한국 드라마로 쉐도잉 공부도 할 것이다. 직장인의 생활을 잘 묘사하고 있는 <미생>이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 직장인들에게 인기가 좋으니 미생을 택했다. <미생> 쉐도잉을 100번을 넘게 해서 대사를 전부 외웠다고 하자. 일상 대화는 할 수 있는 정도의 한국어 실력이지만, <미생>에 나오는 대사만큼은 자신 있다. 억양부터 강세, 속도, 감정이입, 그리고 어느 상황에서 말해야 하는지 그 타이밍까지 완벽하게 마스터했다. 어느 날 함께 일하는 한국인 동료가 풀이 죽어 앉아있다. 그래서 위로해주기 위해 <미생> 9화 에서 익힌 명대사를 동료에게 해줬다고 생각해보자. “나도 취직하기 되게 힘들었거든. 근데 합격하고 입사하고 나서 보니까 말이야. 성공이 아니라 그냥 문을 하나 연 것 같은 느낌이더라고. 어쩌면 우린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다가오는 문만 열면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어.” 외국인 친구는 스스로 엄청 뿌듯해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인 직장동료는? 그 직장동료는 외국인 친구를 과연 어떻게 바라봤을까? 외국인 친구의 한국말 실력은 분명 이 정도가 아닌데, 갑자기 영화에 나오는 명대사를 읊어주었을 때, 과연 어땠을까?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위로하는 마음이 들어서 고맙기도 하겠지만, 외워서 하는 대답 같아서 뭔가 부자연스러울 것이다.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에게 완벽한 문장을 기대하는 한국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똑같은 이치다. 영어가 서툰 한국인에게 완벽한 문장을 기대하는 외국인은 없다. 쉐도잉은 자신이 사용하는 영어의 수준이 어느 정도 갖춰진 후에 해도 전혀 늦지 않는다. 자신이 사용하는 표현에 균형감이 깨지면 그 말은 자연스럽지 못하고 굉장히 어색하게 들릴 수 있다.


Alexander Arguelles 교수 인터뷰 (2012. 3.16) ⓒ The Guardian


“쉐도잉 만능주의”에 빠진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인터뷰 내용이 있다. ‘쉐도잉’ 공부법을 만든 Alexander Arguelles 교수가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에서 한 인터뷰 내용이다. “I'm often asked what the secret is. The truth is it's mostly down to endless hours of reading, studying and practising grammar.” (나는 50개 언어를 하는 비밀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 해답은 끊임없이 읽고, 공부하고, 그리고 문법을 연습하는 것이다.) 영어는 ‘쉐도잉’만 한다고 되는 그런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BTS의 RM을 홍보대사로 임명한 “프렌즈 공부파”에게도 전한다. RM은 한국 메트로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영어 실력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실 ‘프렌즈’만 본다고 영어가 느는 건 아니다. 저도 영어학원을 20곳 넘게 다녔다.”


자꾸 실망만 시키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계속 싫은 소리만 하는 것 같아 마음도 불편하다. 하지만 괜찮다. 이제 쓴소리도 끝이다. 다음 챕터에서 드디어 공부법이 소개된다. ‘프렌즈’와 ‘쉐도잉’까지 건드린 마당에 이제 더 이상 무서울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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