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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이 Mar 04. 2023

퇴사 후 이직, 제가 해보았습니다.

'퇴사할 결심' 제가 그렇게 무모했습니까?

두 번은 못할 것 같아요

#1. 광고대행사 퍼포먼스마케터 신입으로 입사한 후 1년 차에 번아웃이 왔다. 재택근무를 할 때 이유 없이 눈물이 왈칵 쏟아질 때도 있었고,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업무에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이 일의 미래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나를 덮쳐왔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좋아서 버텼지, 입 꾹닫고 하루종일 앉아서 컴퓨터만 쳐다보는 업무는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고 싶었고, 가슴이 뛰는 크리에이티브 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말하면 더 많은 연봉을 받는, 네임밸류 있는 대기업에 다니고 싶었다.(메이저를 제외한 광고대행사의 초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낮다.)


#2. 퇴사할 결심을 한 1년 차에게는 두 가지 옵션이 있다. ‘이직 후 퇴사’ 혹은 ‘퇴사 후 이직’. 경우의 수를 따져봤을 때, 전자는 상황이 어려웠다. 타 회사 합격 후 현 회사에 퇴사 통보를 적어도 한 달 전에 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


경력으로 이직할 상황이라면 모를까. 1년 차 경력을 뽑는 회사는 거의 없고, 보통은 중고 신입으로 다시 지원을 하는데 신입은 입사 일정이 픽스되어 있다. 그게 합격 통보 후 며칠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실제로 현 회사는 합격 후 일주일 뒤 입사였다.) 경력처럼 '네~ 한 달 정도 기다려드릴 테니, 이전 회사 정리하고 오세요.' 하지 않는다.

퇴사 후 광고주가 보내준 카톡,,, 나 열심히 살았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3. 나는 벼랑 끝에 몰려야 이 악물고 하는 사람임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정말 간절하게 이직을 하고 싶었고, 그럴려면 돌아갈 집인 현 직장을 무너뜨려야 했다. 보험은 없다. 앞만 보고 뛰어야 하는 극한의 상황으로 나를 내던졌다.


그리고 회사를 다니며 이직 준비를 할 자신이 도무지 없었다. 퇴근하고 나면 온몸에 힘이 다 빠져서 매일 침대에 널브러져 있다가 기절하는 게 일상인데, 자소서도 쓰고, 영어 공부도 하고, 인적성도 보고, 연차 내고 면접도 보러 다닌다..? 내 기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사를 다니면서 이직을 준비하는 직장인을 존경한다. 만약에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 중요한 면접을 보러 가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생각하기 싫은 일이었다.


자소서를 쓰다 보면 정신줄을 자주 놓게 된다

#4. 퇴사 통보 후 한달 간 오픽 점수를 IH까지는 맞춰놨고, GA 자격증을 갱신했고, 개인 포트폴리오를 정리했다. 그리고 시간 날 때마다 마케팅/홍보/영업 직군으로 자소서도 계속 쓰기 시작했다. 문과생, 특히 인문대 출신이 지원할 수 있는 분야는 그리 많지 않다. TO도 없어서 취업 지옥 그 자체다.


퇴사하고 나서 한 달간의 일상은 많이 가관이었다. 초반에 서류 몇개 붙은걸로 '나 좀 먹히네?'하면서 안일하게 살았다. JTBC 마케팅 직무에 합격을 했는데, 인적성 공부를 해놓지 않아서 시험 일주일 전에 부랴부랴 책을 사서 공부했고, 당연히 떨어졌다. 만약 중견/대기업 이직을 생각한다면 인적성 공부는 미리미리 해놓기를.. 그래도 공부 머리는 아직 남아있는지 방법을 어째 저째 터득하다 보니 이후에 치는 인적성은 거의 다 붙었었다.


면접도 아무 생각 없이 봤던 것 같다. '왜 퇴사하셨어요?'라는 면접관의 물음에 '광고주한테 아이디어 제안할 때마다 거절당하는 게 스트레스받았습니다.'라고 답했다. 면접관은 이렇게 되물었다. '여기서는 거절 안 당할 것 같아요?'. 그 면접을 계기로 정신 차렸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정신줄 놓은 답변이었지. 아무튼 감사합니다. 다우기술 면접관님..


취준은 나만 불안한 게 아니다. 다 그렇다.


#5. 퇴사 후 두 달쯤 됐을 때 자존감도 바닥을 치고, 바이오리듬도 완전히 망가졌다. 아 모아둔 돈도 점점 줄어드는 게 꽤나 아찔했다. 거의 칩거 생활을 했는데, 자소서 쓰고 인적성 공부한다고 새벽 4-5시에 자고, 낮 세시쯤 일어나 밥도 안 먹고 티비 보다가 잠들고, 다시 새벽에 일어나서 자소서 쓰고..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살면서 쓴 서류가 40개 정도 되었다. 대기업 위주로 냈고 서류 합격률은 30% 정도. 전 직장보다 여건이 별로인 회사도 일단 쓰되, 붙으면 다음 전형을 갈지 말지 고민했었다. 일단 어디라도 쓰는게 중요하다. 지원하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


면접에서 자꾸 떨어지니까 자존감에 커다란 생채기가 났다. 그리고 나를 끊임없이 증명하고 포장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면접 떨어질 때마다 우울에 잠겼고, 정말 막막했다. 앞으로 이 짓을 얼마나 해야 회사에 들어갈 수 있을까 싶었다. 솔직히 '괜히 퇴사했다. 이직하고 퇴사할 걸' 한 100번은 후회했다. 그리고 '첫 취준은 대체 어떻게 했지?, 나 왜 뽑혔지?' 생각도 진짜 많이 했던 것 같다.


막막함이 주는 불안은 사람을 한 숨에 집어삼킨다는 것을 이때 알았다. 마음이 불안하니까 걷고 또 걸었는데, 아직도 HS애드 면접 떨어진 날 집 앞을 걸으면서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사실 붙어도 광고 대행사고 집이랑 너무 멀어서 안 가려고 했는데, 떨어지니까 괜히 마음 아픈 거 있지..


지금 생각하면 그냥 그 회사와 나의 핏이 맞지 않았기 때문에 면접에서 떨어진건데, 자존감이 낮은 상태에서는 ‘내 얼굴이 별론가?’ , ‘내 말투가 별론가?’ 등등 자꾸 내 문제로 탓을 돌리려고 하니 힘들었던 것 같다. 면접에 떨어졌다면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미련갖지 말고, 내가 했던 답변들을 곱씹어보며 회사에 더 매력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게 좋다.


매일 챌린저스 기상인증을 했다.

아무튼 이렇게 살다간 이직하기 전에 우울증으로 죽겠다 싶어서 바이오리듬을 완전히 바꿨다. '챌린저스' 어플을 설치해서 돈을 왕창 걸어놓고 9시 기상 인증을 했다. 그리고 다시 집에 들어가면 잘게 뻔하니까, 맥도날드에 가서 맥모닝을 먹는 걸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맥도날드에서 자소서 하나는 꼭 쓰고 집에 돌아왔다. 아.. 취준 할 때 맥모닝을 하도 먹어서 생각만 해도 물린다. 베이컨 맥머핀 질린다 질려… 라고 했지만 맛있는건 여전해.


애증의 맥머핀


#6. 퇴사하고 세 달, 드디어 합격이란 걸 했다. 우울해서 본가에 내려가있었는데, 모 회사 채용전제형 인턴 합격 통보를 받고 엄마를 껴안고 울었다. 근데 기쁨도 잠시, 전환율 50%라는 소문이 흉흉하게 돌아서 또 다시 마음의 갈등과 불안 시작. 이제 남은 총알은 하나였고, 그게 현 직장이다. 현 직장 최종 합격 발표가 늦어져서 그곳 인턴을 일단 다니고 있었는데, 진짜 너무 안 맞았다. 그 와중에 현 직장에 합격했고, 미련 없이 인턴 입사 4일 만에 퇴사 통보를 했다. 그렇게 세 달간의 취준이 끝이 났다.


취준은 1승만 하면 된다는 명언이 있다.

#7. 돌이켜보면 퇴사 후 세 달 만에 재 취업한 건 정말 빨랐다고 생각한다. 근데 나는 결코 내 성공에 대해 '운이 좋았지'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대학생 때부터 마케터가 하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살았고, 1년간의 직장 경험을 나만의 무기로 만들었다. 취준 기간에는 앞만 보고 독하게 살았다. 탈락은 고통스러운 순간이었지만 외면하지 않았다. 실패를 계기로 자소서도 면접도 계속 디벨롭했다.


나처럼 진짜 짧고 굵게, 고통스럽고 독하게 취업 준비를 할 게 아니면 퇴사 후 이직은 솔직히 많이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 불안한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아직 젊다', '경력이 있는데, 나 하나 갈 데 없겠어?'라는 마인드로 버텨왔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취업시장이 많이 힘들다. 현실적인 여건도 고려해서 퇴사 시기를 정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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