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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anca Apr 02. 2021

4월의 만남

이탈리아는 3월 마지막 주 일요일이 되면서 섬머 타임이 시작되므로 4월부터는 길어진 낮 시간만큼이나 기분도 더 유쾌해진다.  4월이 시작되면 자주 내리던 비도 주춤해지고 특히 로마는 청명한 햇빛이 마치 하늘의 축복처럼 내려쬔다  4월은 Aprile  라틴어의  aperire (aprire) - 열다 의 의미가 있다.  봄의 따뜻한 날씨와 함께 새싹이 나고 꽃들이 해를 향하고 있는 모습이 열다, 열리다 라는 의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살다 보니 나에게 4월은 1년 12개월 중 특별한 달로 자리매김하였다.  나에게 새로운 세계들을 열게해 준 일들이 4월에 일어났다는 것을 떠올려 본다.


첫째는 내가 로마와 만나게 된 시작이 4월이었다.  

1998년 4월 11일 토요일,  부활절 전야.  부푼 꿈을 안고 유학생의 신분으로 로마에 발을 내디딘 때였다.   부활절 전야의 대미사가 드려지던 밤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당시 그때가 부활절인 줄도 몰랐다.  그리고 나중에야 알았다.  월요일이 부활절로 이어진 공휴일이어서 달력에 빨간 글씨로 되어 있었던 것을....   나는 하루라도 빨리 언어 학교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연휴로 이어지는 월요일이 야속하게만 생각되었었다.    로마가 나의 제2의 고향이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던 때이다.  

아피아 안티카 (Appia Antica) 길과 스페인 광장


낯선 곳에서 새로운 배움이 시작되었고 이탈리아 문화와의 새로운 만남이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 갔다.  이탈리아어를 배우며 언어학교를 다닐 체류 초창기에는 옛것들로 가득한 로마 시내가 마치 박물관을 펼쳐 놓은 듯해서 그저 신기하고 놀랍기만 했다.  이천 년의 기독교의 역사가 시작한 장소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 등 로마에는 900여 개가 넘는 성당이 있다고 한다.  첫여름을 보내면서 2달 만에 샌들이 걸레가 되도록 로마를 걸어 다닌 기억이 스쳐 지난다.


둘째는 4월엔 대개 부활절이 있기 때문이다.  남편과 함께 가족을 이룬 뒤 나도 가톨릭 신자가 되었고 이 곳 로마에서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영접하게 된 것이 부활절 전야 미사를 통해서였다.  이탈리아인에게 나탈레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제일 큰 명절이 부활절일 게다.  종교적 의미로 보면 부활절은 더 중요한 의미가 있는 크리스천의 축일이다.  


아들의 영아 세례 후 교구 신부님과의 인연으로 나도 2년여의 교리 과정을 개인적으로 이수하고 세례식, 첫 영성체식, 견진 성사를 모두 한꺼번에 하는 의식을 부활절 전야 미사에 치르고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기독교에 입문을 한 것이다.  기독교에 문외한이었던 내가 성경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고 이탈리아의 문화의 바탕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탈리아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이천 년의 시간에 걸쳐 지금까지 이어지는 기독교 문화가 모든 면에서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나라이다.  종교적인 축일의 행사는 이탈리아 문화의 거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하지만 성당에서 주일에 미사를 보고 신실한 믿음을 가진 실천적인 이탈리아인들은 (이탈리아어로는 Praticante ) 그리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성당의 미사에는 실제 참석하지 않을 뿐이라고들 말한다.  가톨릭의 형식적인 미사와 역사를 통해서 나타난 많은 가톨릭 교구의 모순이 많은 이들을 성전에서 멀어지게 하였다.


 나는 형식으로 접한 하나님을 가슴으로 실제로 만난 것은 2년전 4월 부터이다.  머리로 배운 교리가 가슴으로 내려오는데는 제법  긴 고통과 연단의 시간이 걸렸다.  1189장의 하나님의 말씀을 한 마디로 줄인 ‘사랑’을 내 삶에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늘도 하루가 기적이라 생각하며 감사함으로 호흡할 뿐이다.

아들의 첫 영성체와 내가 세례받는 모습


이탈리아 말에 “Natale con i tuoi, Pasqua con chi vuoi (크리스마스에는 부모님과 함께, 부활절에는 네가 원하는 이와 함께) “ 라는 속담이 있다.  크리스마스에는 무엇보다도 가족이 함께 모이고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풍습이 있는 반면 부활절은 원하는 친구나 지인들과 함께 지낸다고들 한다.   


부활절은 시기적으로도 봄이 시작하는 때에 해당하고 부활절 주일의 다음 월요일은 연휴로  ‘작은 부활절 Pasquetta’ 또는 ‘천사의 월요일  Lunedì dell’Angelo’로 불리는데  야외로 나가 그릴에 고기와 야채를 구워 먹으며 피크닉을 즐기는 풍습이 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나온 무리들이 커다란 공원들을 꽉 메우며 잔디 위에 앉아 도란도란 햇빛도 쪼이고 공놀이도 하며 하루를 야외에서 보낸다.  하지만 올해에는 코로나의 문제로 전 이탈리아가 봉쇄로 이동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세 번째로 4월의 특별함은 무엇보다 아들이 태어난 생일이 있다.  며칠 후면 나에겐 아직도 아이 같은 아들이 어느새 만 20살이 된다.  만 18세의 생일을 제대로 (여기서는 성인식처럼 아주 성대하게 생일 파티를 하는 풍습이 있다.) 챙겨 주지 못해서 만 20살이 될 때에 하리라 생각했는데 코로나 사태로 올해도 어려워졌다.  며칠 후면 다가올 아들의 생일을 맞아 엄마로서의 나의 20년을 돌아보게 된다.


내 몸의 한 부분처럼 생각되었던 조그만 생명체가 지금은 떡 벌어진 어깨만큼이나 쳐다 보기만 해도 듬직한 성인이 되었다.  엄마의 눈에 안 예쁜 아들이 있겠는가!  엄마라는 책임감과 의무감에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해서 키운다고는 했지만 자식은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시간을 통해서 많이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엄마라는 역할은 나를 더 성숙하게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인생을  배워간다.


아들이 어렸을 때에는 아들에 대한 사랑이 집착으로 이어지고 어리다는 이유로 마치 나의 만족을 위한 소유물처럼 생각하며 내 식대로 교육을 시키지 않았나 싶다.  물론 어느 누구도 부모의 역할을 미리 완벽히 배우고 난 뒤 아이를 낳아 키우지는 않는다.  비교적 남들보다 늦게 갖은 아이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나는 참 어설픈 엄마는 아니었나 하고 지난날들을 돌아본다.  

역시 어렸을 때가 이뻤다


성경의 창세기 22장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부름을 받는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귀하고 귀한 아들 이삭.  무엇보다 소중했을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에 아브라함은 순종한다.  가장 아끼고 귀중한 것을 하나님 앞에 망설임 없이 내어놓는 아버지 - 아브라함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다.


물론 아브라함의 순종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사랑과 경외심’이라고 생각한다.  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보시며  ‘우상’일 수도 있는 자식을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깨어 허물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나도 이제는 완전히 내어 놓아야 할 때가 왔다.  내가 사사건건 간섭하는 엄마가 아니라 독립된 인격체로 아들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 인 것 같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자식은 우리의 것이 아니지요.  모두 하나님의 자녀일 뿐이지요  라고 말하는 이탈리아인들을 많이 보았다.  이 말을 이해하고 진정으로 받아들이는데 나에게는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내가 건강하고 바른 뿌리가 된다면 건강하고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질 거라 생각하며 나머지 자연의 조건은 모두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고백한다




오늘 아침에 따뜻한 햇빛이 유혹적이라 부활절 방학을 시작한 아들을 꼬드겨 (점심에 피자를 사주겠다고 약속하고)  공원에 산책하러 같이 갔다.  사실상 아들은 걸음이 빨라 나보다 앞서 가며 흘끔흘끔 뒤를 돌아보며 내가 쫓아오고 있나 확인하곤 했다.  혼자서 걷다 웃음이 흘러나왔다.  장성한 아들만 보느라 내가 나이 들어가는 것은 깜박하나 보다.


오늘은 고난 주일의 성목요일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중 집 뒤의 산 조반니 보스코 (Basilica di San Giovanni Bosco) 성당의 종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구급차의 다급한 사이렌 소리가 오버랩되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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