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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Nov 30. 2021

아파트 사전점검 후기(본가 편)

우리 식구들의 우당탕탕 사전점검 리얼 후기

내년 봄에 이사 갈 예정인 아파트 사전점검을 부모님과 같이 다녀왔다. 사전점검을 꼼꼼히 해야 한다고 해서 유튜브로 사전점검 콘텐츠도 찾아보고 검색도 많이 하면서 필요한 정보를 모았는데, 사전점검 준비를 할 게 뭐가 있느냐며 아빠가 협조해 주지 않았다(자기 집인데 왜 이렇게 비협조적인지 모르겠다). 사전점검을 하기 위한 여러 가지 준비물이 있는데 배수 확인용으로 물을 뿌릴 때에 필요한 바가지를 들고 가자 했더니 아빠는 봉지에 물을 받아보면 된다고 해서 비닐봉지를 가져갔다(이건 부피도 줄이고 잘 한 것 같음). 그 밖에는 내가 스툴(작은 의자)을 가져가자고 했으나 아빠가 그걸 뭐 하러 가져가냐고 짜증을 내서 안 가져갔다가 후회했다. 처음엔 자가용을 가지고 간다고 했다가 차가 막힌다며 대중교통을 이용하자고 하길래 알겠다고는 했는데, 차를 가져온 사람도 많았고 우리도 차를 가지고 왔어도 괜찮았을 것이었다. 차를 가져간다면 스툴이나 가벼운 플라스틱 의자를 휴대하면 좋을 것 같다. 우리 집은 천장에 하자가 상당히 많았는데 의자나 사다리를 가져가지 않아서 하자가 보이는 부분에 스티커를 붙일 수 없었다.


1. 출입

아파트 정문

한 세대 당 3인만 들어갈 수 있다. 인원 체크하고 체온 측정하고 방문 팔찌를 착용했다.

방문 팔찌

입구를 지나자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나온 아주머니가 다가와서 말을 거는데 아빠가 여길 어떻게 들어왔냐며 노발대발하더니 그녀를 쫓아냈다. 근데 아빠는 조합원도 맞고 조합 관계자도 맞아서 그럴 수는 있긴 한데 굳이? 저래야 하나 싶기도 했다. 사전점검은 대행업체도 많이 쓰나 본데 여긴 가족만 들여보냈다. 업체 관계자를 일괄적으로 못 들어오게 하기 위함인 것 같다.


2. 집에는 어떻게 들어가나

조합원 또는 계약자 확인 절차를 거친 다음에 집에 들여보내주는데, 키를 주는 건지 도어락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빠 따라다니다가 계약자 확인처 찾아서 15분을 헤매는 와중에 '키 어디서 받아요?'하고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물어보기도 했는데 제대로 답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알고 보니 계약자 확인처는 지하주차장에 동/구역별로 나누어져 있었고, 계약자가 부스에서 확인 절차를 끝내면 담당자가 집까지 동행해서 문을 열어주는 식이었다.

방문객용으로 준비된 다과(쿠키세트와 생수)를 받아서 담당자와 함께 동으로 이동하고, 엘리베이터도 같이 타고, 담당자가 비밀번호를 눌러 현관문을 열어주면 같이 들어가서 사전점검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듣는다. 하자 보수 신청하는 어플 사용법을 설명해 준 뒤 담당자는 떠나고 우리 식구만 남아서 사전점검을 시작했다.


3. 점검

들어올 때 일회용 덧신을 신고, 거실에 돗자리 깔고, 외투 벗어놓고, 점검 시작. 우리 식구들은 의견이나 생각이 모두 제각각이라 각자가 셀프체크를 진행했다. 아직도 나는 아빠의 활약이 뭐였는지 모르겠음..

천장에 저게 뭐지...
전체적으로 이상했던 거실 천장

나는 출출하길래 돗자리에 앉아서 간식으로 사 온 빵을 먹으면서 무심코 거실 천장을 올려다봤는데 거실 천장이 이 지경이었다. 자세히 보면 군데군데 울어있는 부분도 보였고, 아무튼 이상했다. 이상한 부분 모두 체크하고 싶었는데 의자를 안 가져오는 바람에 손이 닿지 않아 스티커를 붙일 수가 없었다. 의자를 가져가자고 했던 의견에 대해서 아빠가 목마를 태워주든 어깨를 밟고 올라가든 허무맹랑한 대안을 제시했었는데, 아빠한테 목마 태워달라고 했더니 허리 아프다고 못 일어나셨다. 내가 10키로 나가는 아기도 아니고, 성인이 된 나를 업지도 못하는 연약한 아빠가 나를 목마 태워주는 게 말이 되나. 처음부터 의자 가져가자고 할 때 고분고분 알겠다고 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의자나 사다리를 꼭 들고 가도록. 꼭. (점검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 중에는 플라스틱 간이 의자를 두어 개 가져온 분도 있었다. 굳아이디어)


건너편에 보이는 아파트동 숫자는 가렸다

확장한 베란다에 중문을 설치하는 유머.

중문을 설치하면 덜 춥다고 해서 돈 들여 설치한 건데 엄마는 저기에 설치되는 줄 몰랐다고 하신다. 처음 봤을 땐 웃겨서 기가 막히긴 했는데, 베란다 샷시 확인한다고 창문을 열어서 저 창틀을 밟고 올라가는 엄마를 보고 기겁하는 바람에 진짜... 오히려 엄마는 나한테 적반하장으로 사전점검 유튜브 끝까지 안 봤냐며 저것도 확인해야 한다며 성을 냈다. 제발 목숨 귀한 줄 알자.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 어쨌든 다행인 건 거실이 넓어서 중문이 있어도 공간이 충분했다(그래도 내 집이라면 중문을 설치하고 싶지 않다). 중문 설치할 거면 베란다 확장은 왜 했나 싶고 그럼. 그리고 나중에 집에 와서 엄마한테 안전과 조심성에 대해 다시 한번 설교함.


사전점검 준비물로 엄마가 포스트잇 플래그를 챙겼는데, 아빠는 그중에 빨간색 플래그가 제일 눈에 띈다고 생각했는지 빨간색 플래그만 더 사 오라는 이상한 요구를 하셨다(이것도 기가 막혀서 엄마한테 무시하라고 했음). 하지만 정작 챙겨야 할 것은 적당한 크기의 포스트잇과 굵은 싸인펜이었다. 나는 집에서 나가기 전에 급하게 포스트잇과 컴퓨터용싸인펜을 챙겼는데, 결과적으로는 가장 잘 사용한 준비물이었다.

하자를 표시한 포스트잇과 처리요청 스티커

물론 하자 보수가 필요한 부분을 표시하는 스티커는 건설사 측에서 넉넉히 챙겨주지만 없거나 모자랄 경우에 대비해서 포스트잇 플래그도 챙기면 좋겠다. 그런데 하자 스티커와 플래그는 그 크기가 워낙 작아서 실제로 봤을 때 놓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옆에 대빵 큰 포스트잇과 검은색의 굵은 글씨가 있다면 안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하자 스티커와 같이 사용하면 효과가 좋다. 볼펜보다는 싸인펜, 네임펜, 매직이나 마카 등 선이 굵은 펜을 이용하면 좋고, 포스트잇이 넓으면 집의 위치(침실1, 거실, 화장실 등)와 하자, 처리 요구사항을 상세하게 기재할 수 있다.


그 밖에 하자는 아니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세탁실에 가서 창문을 열었다가 담배꽁초를 발견한 것과.. 안방에 들어가니 오줌 지린내가 진동을 해서 부부욕실을 가보니 변기에 바짝 마른 소변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층수가 높다 보니 화장실을 가기 멀어서 여기에 일을 볼 수 있다고는 생각하는데 하필이면 그게 흔적이 남을 정도라니. 볼일을 보고 물이라도 흘려줬으면 냄새가 덜 났을 텐데 같은 아쉬움이 조금 남았다. 아빠 말에 따르면 비데를 설치하면 작동 실험을 여러 번 할 것이기 때문에 오물도 흔적 없이 흘러갈 것이라는데 잘 모르겠다. 진동하는 냄새 때문에 아무튼 많이 찝찝했다.


아파트 사전점검 소감

사전점검은 생각보다 뜻대로 잘 안되고(난방이나 에어컨을 미리 틀어볼 수 없었음), 우리 집에는 하자가 없었으면~하고 바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자를 미리 발견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하자가 아주 없지도 않았다. 다만, 엄마가 어떤 하자를 발견했을 때 아빠를 불러서 하자가 맞느냐고 의견을 구하면 아빠는 닦아보지도 않고 '물티슈로 닦으면 지워질 거야'라고 말하거나 엄마를 '별것도 아닌 걸 하자라고 트집 잡는 사람'처럼 여기는 것이 몹시 불쾌했다. 실제로 물티슈로 박박 닦아도 안 지워지는 부분이 있었고, 명백히 하자인 부분도 존재했는데 말이다. 하자 스티커를 붙이거나 포스트잇에 하자를 기재하는 것도, 심지어 모든 하자는 가까이 찍은 사진 한 장, 멀리서 찍은 사진 한 장씩을 어플에 업로드해서 보수 신청을 해야 하는데 스마트폰으로 사진 촬영하는 것까지도 아빠는 내가 보채기 전까지 거의 한 게 없었다. 뭐 하느라 바빴는지 정말 모르겠고, 자기 집인데 왜 이렇게 삐딱하게 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제목을 '아파트 사전점검 후기(본가 편)'으로 적은 건, 반년 뒤에 내가 청약 당첨된 아파트의 사전점검을 또 한차례 나갈 예정이기 때문이다. 내 아파트 사전점검 때에는 절대 아빠는 안 데려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꼼꼼히 봐야 할 것이 많았고, 시간을 무한정으로 있을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두 시간도 빠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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