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1-2. 찍히지 않기 위해 셔터를 누릅니다

백 장을 넘게 찍어도 겨우 남는 한 장을 어떻게든 담으려는 이유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사진을 찍고 있어요.


사진 혹은 영상을 찍는 분들께 어떻게 사진, 영상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여쭤보면 꽤나 흔히 듣게 되는 답변이다. 나도 비슷했다. 카메라에 대한 흥미는 분명 있었지만 그 흥미 있던 카메라에 찍힌 내 모습을 보곤 하면 죄 없던 그날의 밥맛까지 떨어지고야 말았다. 눈은 왜 그렇게 게슴츠레 뜨고 있는지 묻고 싶고, 볼에 살은 해가 갈수록 덕지덕지 붙어만 가고, 진실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이 오로지 사진 찍기만을 위한 경직된 미소가 입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사진을 찍는다는 건 사진을 찍히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핑계였다.


그에 반해 우리 아빠는 내 사진을 어떻게든 남겨두려 했다. 내가 기록과 저장에 집착할 때도, 카메라를 늘 아끼고 있을 때도, 그때 아빠의 모습이 겹쳐 보이곤 해 가끔씩 흠칫한다. 어렸을 땐 작지 않은 키를 제외하곤 아빠와 닮은 구석이 거의 없어서 ‘아빠랑 어디가 닮았나’ 고민하곤 했는데, 기록과 저장, 카메라, 정리와 정돈, 디자인, 구조, 이런 말들은 다 아빠에게 물려받은 것 같다. 공단에서 일했고 예술을 배운 적 없는 아빠가 별 것 아닌 소품들로 인테리어를 하고, 내 모든 어린 사진들을 담은 사진과 영상들을 찬찬히 살필 때면, 이렇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시각화를 해내는 아빠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에블린과 같이 상처받지 않고 자란 다른 세계의 아빠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해지곤 한다. 나는 아빠의 눈을 물려받았나 보다.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 보려는 꼬맹이를 잡아 세운 아빠의 뷰파인더에서 벗어난 이후, 아빠의 집착을 닮은 나의 집착은 내 소중한 이들의 시간을 향했다. 내 못난 모습만 보이는 사진에 나 대신 내 소중한 사람들이 자리했고, 그들의 지금을 사진에 붙잡아두며 대리만족하곤 했다. 그래서 보통의 단체사진에 나는 없고, 나는 늘 셔터를 눌러 그 순간을 잡아채고만 있었다. 내가 그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사진 한 장마다 입이 아니라 눈을 통해 설명할 수 있어서 사진이 좋았다. 눈에 담고 있는 걸 입으로 설명하자니 영 쑥스럽고 전달도 되지 않는데, 동그란 눈에 보이던 아름다운 것들이 평평한 사각형 위에 엇비슷하게나마 다른 이들에게도 보이니 한결 그 고백이 수월했다.


내가 하고 있는 다양한 일들 중 하나가 사진이다. 물론 나는 사진을 배운 적도 없고 직업이 포토그래퍼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 일터에 있는 친구들의 삶을 기록해 보고 있다. 그래서 해가 갈수록 내가 찍는 사진은 늘어나는데, 나의 사진은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 모습이 담긴 내 사진을 보는 건 싫었기에 사진을 잘 찍는다 소문난 사진관에 가서 몇 달 혹은 몇 해에 한 번씩 내 모습을 남겨오곤 한다. 그 사진에서마저 내 단점만 보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싫어하는 지금의 나를 여기 버려두고 가면, 나는 그 아이를 영영 찾을 수 없다.


상처받은 나를 위로하지 못하고 그대로 자라면 그때 그 상처의 자리는 영원히 굳어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다는 걸, 스물 하고도 중반 무렵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그 어린 자신을 바라볼 때 그때가 제일 행복했다는 친구도, 상처받았지만 그때의 내가 기특하다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그때의 내가 외로워 보인다. 내가 나를 안아주지 못한 그때부터 나는 그 아이를 돌아보지 않은 채 앞만 보고 달려왔다. 돌아보니 내 짧고 복잡한 시간에 파묻혀 그 아이는 아직 찾지 못했고, 나는 그렇게 지금도 자라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지금도 꿈을 꿀 때면 그때의 내가 떠오르고 그때로부터 도망쳐 달리기 시작할 무렵의 내가 보이곤 한다.


이제야 내가 나를 향해 셔터를 눌러보고 있다. 누가 볼까봐, 내가 볼까봐 호다닥 눌러보고 호다닥 지우곤 하지만, 돌아봐야 하는 과거가 그저 보고 웃기만 하면 되는 과거였으면 하는 마음에, 더 이상 찾고 안아야만 마주할 수 있는 과거는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에, 나 스스로 지금의 나를 프레임 안에 어떻게든 담아 본다. 정말 100장을 찍어도 1장 남길까 말까 한다. 사진에 익숙하지 않아서 더욱 내 사진은 못 찍을뿐더러, 사진을 찍히는 순간의 나는 렌즈를 보고만 있어서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기에 더욱 촬영이 어렵다. 그래도 얼마 전에 꽤 맘에 드는 사진을 건졌다. 사진이 필요할 때 이 사진으로 꽤 많이, 여러 곳에 우려먹겠지. 언젠간 사진을 정식으로 배워보고 싶다.


아빠가 나를 바라보던 눈으로, 나도 그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를 부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1-1-8. 샌드박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