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운, 월간 권태, 2020
0.
염수진의 실종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을지로였다.
그 날 나는 데면데면한 경제 3반 동기들과 함께 졸업 기념 모임이었나, 취직 기념 모임이었나, 때문에 을지로의 한 치킨집에 있었다. 연구실에서 석사논문과 씨름하던 내가 그 자리에 끼게 된 것은 같은 연구실에서 일하는 반장 때문이었다. 꼭 오라는 반장의 손에 이끌려 왔지만, 동기들과 별다른 추억도 없고, 졸업하자마자 학교에서 도망치듯 타대 대학원에 진학한 나로서는 미적지근한 모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동기들의 졸업 얘기, 취업 준비 얘기, 또 직장생활 얘기는 김빠진 맥주처럼 미지근하고 끝 맛이 썼다.
하지만, 봄아, 너는 석사 하고는 뭘 하고 싶어? 라고 질문이 돌아왔을 때에 난 해사한 얼굴로 박사 학위까지 따고 싶다고 대답했다. 석사 학위는 국내에서 따지만 박사 학위는 해외에서 따고 싶고, 귀국해서는 연구원이나 교수가 되고 싶다고 얘기한다. 학부생 시절부터 말하던 장래희망이다. 동기들은 오오, 이봄 교수님 되는 거냐고 바람을 넣는다. 나는 웃으며 정말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말하고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12월의 냉랭한 거리를 사람들이 옷깃을 여미며 지나가고 있었다. 치킨집 안은 따뜻했지만 창에 스며드는 외풍으로 상 위의 치킨은 식어가고 있었다. 나는 식어버린 치킨 한 조각을 입으로 가져가며 염수진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생각했지만 성립할 수 없는 가정에 기반을 둔 가설은 무너져 내렸다. 그날 염수진은 초대받지 못했고, 초대받았더라도 나타날 리는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왔던 나는 흥미 없는 모임 속에서 표류하고 있었다. 그 때, 동기들의 근황에 대해 연예계 가십을 얘기하듯 열을 올리던 누군가가 염수진의 근황에 대해 입을 열었다.
걔, 실종됐대.
동기들은 모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스물다섯이나 된 성인이 실종되었다는 것은 단순한 가십거리로 소비하기에는 조금 무거운 주제였다. 한 동기가 조심스럽게 그건 어떻게 알았는지 물었다.
올해 하반기 H은행에 나랑 걔랑 같이 지원했었잖아. 같은 스터디 하기도 했고. 난 떨어졌는데 걘 면접전형까지 올라갔어. 그런데 면접일 이후로 실종됐다는 거야.
말하자면 그런 거였다. H은행의 면접전형에 응시한 후 염수진은 ‘사라졌다.’ 염수진의 빈자리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우습게도 가족도 친구도 아닌 은행 취업 스터디 멤버들이었다. 그 중 가장 오지랖이 넓었던 멤버가 염수진이 자취를 하던 고시원을 찾아갔고, 염수진이 면접일 이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은 기겁해 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면접일 이후 닷새 동안 염수진의 행방이 묘연하지만,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가 번화가였고 평소와 다른 행동은 없었음에 근거해 단순 실종 사건으로 이를 판정 내렸다.
걔가 은행에 지원한 것 자체가 좀 의외 아니야? 걔 학생 때 하던 일 보면 정치인 하거나, 아니, NGO 같은 데 취직할 것 같지 않았어?
동기들은 맞아, 걔가 좀 그런 데 관심이 많았지 하면서 거들었다. 난 그들의 얼굴을 한번 훑었다. 염수진이 왜 이 자리에 나오지 못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없어보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대학생활에 충실했던 모범적인 대학생들이었지만, 그것은 그저 자신의 생활에 충실했다는 것일 뿐 그 이상의 것은 조금도 아니었다. 본인의 선택지 이외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염수진의 일은 남의 껄끄러운 일이었을 것이고 그저 내버려 두는 방관은 쉬운 선택지였겠지.
걔 가족은?
내가 입을 열었다. 동기는 글쎄,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염수진의 가족은 충남 서산에서 사는 홀어머니와 오빠뿐이었다. 나는 몇 년 전에 만났던, 나이보다 나이 들어 보이던 염수진의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과 배달 일을 한다는 오빠의 무뚝뚝한 얼굴을 떠올렸다. 서산의 구시가지에 있던, 작은 밥집이 딸려있는 염수진의 고향집과 유난히 누렇게 반짝이던 서해 바다도. 난 눈을 깜빡여 그 모든 상을 지워버렸다. 옆 자리에 앉았던 반장이 맞다, 네가 수진이랑 친했었지, 하며 동정의 눈빛을 보냈다. 봄아, 많이 걱정되겠다, 하며 말을 건네는 동기도 있었다. 나는 맞아, 걱정되지, 하고 말하면서 그들의 주의가 다른 쪽으로 돌려지기만을 기다렸다. 그 알량한 말들은 방관자들끼리 나누는 자기 정당화에 불과했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할 만큼 비위가 좋지 않았다.
우리는 염수진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건배했다. 동기들은 걱정하는 듯 했지만 대화주제는 빠르게 전환되었고, 그들의 표면적인 걱정 역시 한 동기의 결혼 소식에 빠르게 씻겨 내려갔다. 동기들의 결혼에 대해서는 그들의 취업 상황 만큼만의 관심도 없던 나는 반 정도 남은 생맥주 잔을 홀짝이며 염수진의 괴상한 근황에 대해 더 생각하는 것을 택했다.
염수진은 일반적인 대학생은 아니었다. 그것은 확실했다. 경제학과 과대와 상경대학 대표를 지냈지만 그 시절 염수진은 단순히 인기인이어서 그 자리에 올라간 건 아니었다. 염수진이 그 자리에 올라간 것은 철지난 사회운동의 기질과 다른 사람들보다 무겁게 지고 살던 개인적인 책임감 때문이었다. 운동권이 더 이상 사회정의를 의미하지 않았을 시기에 학교를 다닌 우리에게 염수진의 사상은 개똥철학이며 괴이한 취미로 치부되었지만, 그의 투철한 책임감이 상경대학 전체에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온 것은 틀림없기에 누구도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물론 우리의 타고난 비겁함은 염수진이 추락하자 그를 손가락질함으로서 그 존재를 알렸지만 말이다. 난 우리의 비겁함을 경멸했지만 동시에 그것을 방관했다. 아마 이 자리에 초대되어 미적지근한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이 그 방관의 대가일 것이다.
그날 모임은 거창하게 시작되었지만 이른 시간에 마무리되었다. 아, 슬슬 들어가 봐야겠어, 출근 준비 해야지, 라고 한 동기가 말하자 모두가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며 각자 이유를 하나씩 댔다. 다들 일찍 들어가야 하는 핑계 하나씩은 품고 나온 것을 보니 2차를 갈 생각으로 온 사람은 아무도 없어보였다. 하긴, 이제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하나의 공동체로 움직이기에는 너무 철이 들었고, 약아빠졌다. 우리는 웃으면서 포옹하고 잘 지내고 연락하라는 말을 나눈 채 서둘러 각자의 집 방향으로 흩어졌다.
나는 일부러 지하철 역 반대방향으로 걸었다. 한 정거장 정도 걸어갈 생각이었다. 모두가 집으로 바삐 걸어가는 중이었지만 나는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았다. 모임 장소는 하필 H은행의 본점이 있던 을지로였다. 내 발걸음은 자연히 염수진이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H은행의 본사 쪽으로 향했다. 술은 거의 마시지 않았지만 추위 때문인지 생각 때문인지 머리가 지끈했다. 마침내 온통 유리로 마감해 거대한 푸른 성채처럼 보이는 H은행의 본사 앞에 섰을 때, 나는 자연히 성의 끝으로, 끝으로 고개를 올렸고, 마침내 성의 끝이 찌르고 있는 하늘에 눈길이 닿았다. 사람들이 쌓아 올린 거대한 가정의 끝이다. 다른 사람을 짓밟으면서 저 위로 올라가는 것이 행복이며 성취며 승리라는 것이 너무나 자명해 아무도 반박하지 않는 가정의 덩어리다.
을지로 가운데에 치솟은 푸른 성채 앞의 나는 에메랄드 씨티에 처음 도착한 도로시처럼 작고 무력하다. 면접을 보러 도착한 염수진도 그랬을까. 자신을 배신한 사람들로 꽉 찬 학교에 꾸역꾸역 다니다가, 결국 먹고 살아야 해서 이 은행 앞에 섰을 텐데,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어쩌면 결국 가정과 타협한 것에 나 이상으로 모멸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눈을 꾹 감고 모든 추측을 지워버린다. 그저 그때 상황을 생각하면서 내가 느끼는 모멸감이 생각에 옮아버렸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의미 없는 생각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염수진이 그 날 집 앞 바닷가에서 웃으며 건넸던 말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잘못 알던 가정에서 벗어난다면 얼마나 홀가분하겠니. 봄이야.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올라 버린 난 별로 즐겁지 못했고, 그 때도 그랬듯이 옹졸하게 입을 닫고 근처의 지하철 역 안으로 내려가 버렸다.
1.
불면증은 끈질긴 질병이다. 맥주도 조금 마셨고, 시간도 늦었고, 오랜만에 학교보다 먼 곳을 다녀와 피곤했지만 불면의 손길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난 괜히 좋아하지도 않는 차를 끓여 마시고, 보고 싶지도 않은 연구실에서 가져온 자료도 좀 뒤적거린다. 이 모든 몸부림은 결국 약을 꺼내드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불면이 작정하고 덤빌 때 내가 꺼낼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셈이다.
수면제가 선사하는 잠은 불친절하다. 가만히 누워서 감은 눈 속 검은 허공을 응시하다 보면 어느 순간 검은 수면에 물방울이 떨어지듯 잠 속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늘 같은 꿈이 나를 반긴다. 나는 다시 기관차의 조종석에 앉는다.
기관차가 나오는 꿈을 꾸게 된 것은 꽤 오래되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때에도 이 꿈에 대한 기억이 있으니 이런 꿈을 꾼 지는 꽤 오래되었다고 하겠다. 나이를 들수록 꿈은 조금씩 자세해졌다. 과거에는 내가 어느 방향으로 달리는 물체에 앉아있다는 관념만 있었지만, 지금은 등 뒤에 느껴지는 인조가죽 조종석 덮개의 감촉까지 느낄 수 있으니 꽤나 정교한 꿈이 된 셈이다.
조종석에 앉아 있지만 내가 조종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애초에 이 기관차가 달리는 길은 모노레일이다. 조종석에는 핸들도 브레이크도 없다. 열차는 그저 주어진 철길을 일정한 속도와 방향으로 달린다. 어린 시절에 가지고 놀았던 꼬마 기관차와 비슷하지만, 그 기관차와 다른 점은 이 열차의 앞에는 아무런 장애물도 없어서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에 저 먼 곳의 풍경은 늘 푸른색이었다. 빛에 반짝이는 그 물체인지 풍경인지 알 수 없는 그것은 마치 <오즈의 마법사> 속 에메랄드 씨티처럼 묘하게 환상을 자극하는 면이 있었다. 저 곳으로 가면 원하는 것은 뭐든지 가질 수 있을 것처럼. 조종석 옆에는 밖으로 나가는 작은 문이 있지만 그 문을 열어본 적은 없다. 가고 싶은 곳도 없는데 함부로 밖에 나가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나는 그 기차에 대해 내가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나는 기차 안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거나 바깥 풍경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냈고, 수명을 다한 수면제가 나를 깨우기를 기다렸다.
바깥의 풍경은 대체로 단조로운 황무지였지만 가끔 그 곳에서 나는 현실의 잔상들을 목격하곤 했다. 바깥에서 마주치는 것들은 자동차, 자전거, 수레, 그리고 달리고 앉아있고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대체로 현실에서 내가 마주했던 사람들이다. 현실의 내가 그들의 인생에 조금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그들이 내 꿈에 나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무슨 기업 임원의 아들이라고 들었던 중학교 동창은 멋들어진 스포츠카를 타고 이곳저곳 방향 없이 빙빙 돌아다녔다. 매일 성실하게 학교를 다니며 장학금을 타 가던 과 동기는 한 방향으로 열심히 자전거의 페달을 밟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타나고 멀어져갔지만, 모두가 궁극적으로 에메랄드 씨티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는 점에서 내게 흥미를 주지 못했다. 염수진을 제외하고는.
염수진이 처음 꿈에 나타난 것은 대학교 3학년의, 그 봄부터였을 것이다. 염수진을 모두가 배반하기 직전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염수진은 곧 끌려 내려가야 했던 가장 높은 지점에 서 있었다. 꿈에서 염수진은 열기구를 탄 채 먼 곳을 바라보며 날아가고 있었다. 그 방향은 에메랄드 씨티의 방향이 아니었다.
난 염수진의 열기구를 보고 헉, 하고 숨을 참았다. 그 열기구를 다시 본 것이 꽤나 오랜만이었기 때문이었다. 본인의 추락 이후 한 번도 나타나지 않던 염수진의 열기구는 그 모임 날 간신히 잠에 들은 내 꿈에 얼굴을 비췄다. 다만 달랐던 점은 그 열기구가 저 멀리, 열심히 떠가던 방향에서 멈춰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 멈춘 열기구는 염수진의 실종만큼이나 내 속을 불편하게 했고, 난 간신히 들은 잠이었지만 이 잠이 제발 길지 않기를 빌었다.
대학 시기, 특히 1학년 때 부모님은 아주 신경질적이었다. 모자란 딸을 보는 눈빛은 마치 벌레를 보듯 경멸어려 있었다. 그들은 특출하게 똑똑한 사람들이었고 머리로 하는 경쟁에서 진 적이 없었기 때문에 경쟁에서 진다는 것, 밀려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가정의 모든 구성원, 부모님과 이안, 그리고 나는 탄생부터 하나의 경쟁선상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가족으로 묶여 있으면서도 누가 더 성공하는지를 지독하게 따졌고, 부모는 자식을 보면서, 자식은 부모를 보면서 자신을 채찍질했다. 사실 우리는 몇 가지 당연한 사실을 무시하고 있었는데, 그것들은 누군가가 이기려면 누군가는 져야 한다는 것과 4명이서 경쟁을 하면 필연적으로 4등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우리 가정은 배려나 이해나 가족애 따위를 조금도 모르는 한 무리의 바보들에 불과했지만, 사회는 우리들을 의사 선생님, 변호사님, 명문 의대생, 그리고 최상위권 학생으로 너무나 멋있게 포장해 주었다. 멍청한 우리가 가장 사랑했던 것은 그 멋진 포장지였다.
부모님과 이안의 포장지는 여전히 근사했지만, 나의 포장지는 수능이 끝난 직후 벗겨져 짓밟혔다. 그날 부모님은 그동안 애써 무시해 왔던 실패작을 마주해야 했다. 그들은 분노했다.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부쉈다. 나는 고성이 울려 퍼지는 거실에서 망가진 물건들을 보면서 이 집에서는 그 물건들보다 내가 더 쓸모없는 존재라는 것을 실감했다. 난 그렇게 집안의 꼴지, 집안에서 가장 덜떨어진 사람으로 성년을 맞았다.
재수하렴, ‘봄아’. 한 해 더 공부하고 대학 가.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아버지가 말했다. 그는 처음으로 나를 ‘봄’이라고 불렀고, 그의 입에서 나온 내 이름이면서 이름이 아닌, ‘봄’은, 이 집안 내의 서열에서 나는 영구적으로 밀려났으며 다시는 올라가지 못할 것을 시사했다. 나에게 일말의 기대감이 남아 있었다면 그는 나를 다른 이름으로 불렀을 것이다. 모 대학 병원의 외과 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아버지의 안색은 영 좋지 못했다. 화를 내느라 그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보면서 나는 저 자가 나와 관련된 일에 저렇게 열을 내는 것이 처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전의 나는 아버지의 파리한 안색을 보면서 여러 가지 감정-존경과 선망과 일말의 경쟁의식-들을 느꼈었지만 그 순간 내가 느낀 것은 역겨움이었다.
싫어요.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그날 먹은 것을 다 게워내고 시큼해진 입으로 말했다. 그 순간 긴장감이 감도는 재판장에 몇 백 번을 감정의 동요 없이 드나들던 어머니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아버지는 나에게 뭐라 삿대질하며 고성을 질렀고, 쓰러진 어머니를 위한 앰뷸런스를 불렀다. 실려 나가는 어머니를 보면서 나는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꼴지 주제에 이긴 사람을 동정하겠는가?
뭘 어쩌겠니. 네가 알아서 해, ‘이봄’.
그날 어머니의 병실 밖에서 이안은 나한테 저 말만 남기고 그 자리를 떴다. 시험이 급하다는 핑계였다. 하긴, 이안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하나뿐인 오빠인 이안은 공부에는 탁월했지만 공부 이외의 영역에는 무디기 짝이 없었다. 그런 이안을 나는 덜떨어진 기계 취급했고 이안은 나를 한심한 둔재로 봤으니 서로 비긴 셈이다.
그 이후의 일은 꽤나 평온해 보였다. 우아한 백조가 물 밑에서 세차게 물을 밀 듯 우리 사이는 표면적으로는 평온했지만 그 기저에는 일상적이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기 싸움이 오갔다. 나는 거실 테이블 위에 보란 듯이 늘 놓여 있던 다양한 재수 학원 광고지를 매일 같이 내버렸고, 부모님은 서울대에 진학한 ‘아는 사람의 똑똑한 자제’에 대해 대놓고 대화하고, 역시 ‘봄이’를 문과로 진학시킨 것은 실수였다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방에 생수만 챙겨 둔 채 방문을 잠그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들을 열 받게 했다.
아무래도 ‘봄이’는 박사까지 만드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몇 주 간의 유치한 신경전의 끝에서 최 변호사, 즉 어머니가 한 말은 그동안의 논거와는 조금도 맞지 않는 말이었다. 아마 저런 식의 말을 법정에서 했다면 어머니는 로펌에서 잘렸겠지. 나는 속으로 그 말을 비웃었다. 서울대도 의대도 보내지 못했으니 학위를 따게 해서 체면이라도 세우려는 속셈인 듯 했다.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발상인가, 자식의 인생을 장식장의 트로피처럼 만들다니. 난 아버지와 이안의 얼굴을 보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의 표정은 그럴싸한 의견을 들은 것처럼 차분했다. 아버지는 그래, 그게 좋겠다, 하며 날 못 미더운 눈으로 바라보았고,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나는 머리를 뒤에서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몇 주 동안 부모님과 신경전을 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지금까지 내가 원했던 게 그 트로피가 되는 것 아니었는가? 난 그저 내가 실패한 대입으로 인해 트로피가 되지 못한 것을 가지고 몇 주 동안이나 의미 없는 싸움을 한 것이었다. 트로피가 되기 위해 평생을 살아온 기억 밖에 없는 나에겐 저들의 말을 반박할 의지조차 없었다. 오히려 어머니의 그 말이 내게 우리 가족의 리그에 재진입할 기회를 주는 아량으로 들려 감사하기까지 했다. 그 뒤로 난 부모님의 말을 다시는 거역하지 않았고, 내 꿈은 기차에 갇혔다.
난 별 생각 없이 경제학과에 지원해서 합격했다. 평생 공부해야 할 학문을 결정하는 선택이었지만, 난 그저 학창시절 수학 공부를 좋아했다는 싱거운 이유로 경제학을 선택했다. 내가 입학한 대학의 상경대학은 경영학과와 경제학과로 이루어져 있었고, 과당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떼로 입학했기 때문에 학교는 이들을 반으로 나눠 관리했다. 그 어수선하던 신입생 시절, 나는 염수진을 경제 3반에서 처음 만났다.
경제 3반은 아주 무던한 반이었다. 첫 만남 때 나와 염수진을 제외한 8명의 반 동기들은 다른 반들과 다름없이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술을 마시고 같이 놀러 다녔다. 염수진은 학생회에 들어갔기 때문에 반 동기들보다는 학생회 사람들과 더 어울렸고, 나는 친구 사귀기나 신입생들이 관심이 있는 주제들 – 미팅, 소개팅, 놀이공원, 뒤풀이 – 들에는 조금도 흥미가 없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불참하는 편이었다. 물론 염수진은 사교적이었기 때문에 나보다는 동기들과 친했다. 그랬기 때문에 유달리 좋게 말하면 마음이 넓은, 나쁘게 말하면 오지랖이 넓은 염수진이 나를 챙기기 시작한지도 모르겠다.
다른 동기들은 나를 이봄, 봄아, 하고 불렀던 것과 달리 염수진은 나를 살갑게 봄이야, 하고 부르곤 했다. 봄이야, 같이 점심 먹으러 가자, 봄이야, 우리 과제 같이 하자, 는 말은 늘 내 주변을 맴돌았다. 난 굳이 다가오는 사람을 막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염수진은 다른 동기들처럼 쓸데없는 제안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염수진을 따라 학생회들과 밥도 먹으러 가고, 과제를 하러 도서관에도 갔다. 염수진이 다른 동기들과 조금 달랐던 것은 활발한 성격에 비해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친한 학생회 동기들도 염수진에 대해 아는 것은 충남 서산이 집이라는 것, 서산여고에서 전교회장을 했다는 것, 그리고 왠지는 모르겠지만 학생회에서조차 뒷전이었던 사회운동에 열심이라는 것 정도였다.
1학년 때부터 학생회에서 활동했던 염수진이 일약에 전설이 된 것은 2학년 때 경제학과 과대로서 염수진이 세운 기록들이다. 1학년 때부터 학생회에서 회계를 담당했던 염수진은 자연히 2학년 때 학교 축제 부스 사업 운영을 맡았고, 경제학과 학생회 사상 최고의 수익을 올렸으며, 이 수익은 고스란히 학생회 활동비로 넘어갔다. 염수진은 그 활동비를 활용해 어느 과보다도 많은 사업을 진행했다. 과방에 전공 책들을 비치해 자유롭게 대출해 볼 수 있게 했고, 과방에는 스캔 기계와 공용 프린터가 생겼다. 비싼 전공책은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들에게는 부담스러웠고, 프린트 비용 역시 적지 않았기 떄문에 득을 볼 사람들은 차고 넘쳤다. 염수진 역시 기뻐 보였다. 봄이야, 이번 사업이 잘 풀려서 너무 좋아, 하며 염수진은 헤실헤실 웃곤 했다. 나는 아무렴 좋은 게 좋은 거지, 싶었다. 염수진에게는 그런 것들이 중요한 것이니까 그러겠지, 하고 그 이상의 가치판단은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 시기에 난 학업을 제외하면 관심 있는 주제가 많지 않았기도 했다. 전공 공부 이외의 대학 생활은 아무런 의미도 느껴지지 않았다.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신경을 쓰는 것이야말로 경제적이지 않은 행동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수진과 함께했던 시간이 결코 싫지는 않았다. 염수진은 바지런한 사람이었다. 그 바지런함 속의 온기는 아무에게나 있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염수진이 왜 나를 그리 챙겨주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전보다 잃어버리거나 망가뜨리는 물건들이 줄어들었다. 가진 것들에 대해 크게 미련이 없었던 나는 물건을 곱게 다루지 않았고 내 주변에는 오래된 물건이 거의 없었다. 염수진은 반대였다. 깔끔하게 정돈하고 청소해서 오랫동안 손때 묻은 물건들이 많았다. 염수진은 나와 같이 다니면서 자신만큼이나 돌보지 않던 내 소지품을 챙기고 닦아주고 다시 제 자리로 돌려보내주곤 했다. 그 바지런한 손길이 염수진이 세상을 보는 방법이었다. 염수진의 그런 면은 이질적이지만 불편하지 않았다. 난 어느 순간부터 내가 잃어버리거나 망가뜨리는 것들이 퍽 줄어들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나 자신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난 학교생활을 하면서 온전히 내가 신경 쓰고 싶은 것들에만 집중할 수 있었는데,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신경 썼어야 하는 부분의 상당 부분을 염수진이 바지런한 친구로서 정돈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난 염수진을 잃기 직전까지도 이를 모르고 있었는데, 그것이 비극의 시발점이었다는 것은 꽤나 자명했다.
염수진이 한창 학생회에서 열을 올리고 있던 2학년 때 난 전혀 다른 분야에서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난 학점 관리에만 모든 시간을 쏟아 부었고, 어렵지 않게 모든 학기에 학년수석을 쟁취해냈다. 부모님이 학교에 낸 등록금은 한 푼도 없었다. 주변인들은 그런 나를 보고 부러워하기도, 비법을 묻기도 했지만 난 별 감흥이 없었다. 성적을 잘 받는 것은 내 인생에서 변수가 아니라 기본 가정에 불과했던 까닭이다. 2학년이 끝나가던 그 때, 염수진은 두 가지 반응 중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내 어깨를 몇 번 두드리며 이번 학기도 고생했다며, 열심히 하더니 결과도 잘 나왔구나. 하고 염수진은 그 이상의 찬사도 질투도 보이지 않았다. 방학 하면 서산 한번 놀러와, 하는 말을 남기고 염수진은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 말이 염수진에게 있어서 꽤나 이례적인 제안이었다는 것을 내가 알아차리기에는 두 학기의 시간과 그의 추락이 필요했다.
2.
이안을 찾아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까닭에는 여러 가지 우연들이 겹친 상황이 있었다. 그 날은 금요일이었고 교수님은 웬 일로 기분이 좋았다. 나는 이틀 째 수면제를 달고 살아 정신이 약간 나간 상태였고, 사라져버린 염수진은 꿈에서 바닥에 붙어 버린 나를 조롱하듯 열기구를 타고 움직였다. 내가 탓할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야 했고, 그 조건에 가장 잘 부합하는 사람은 우습게도 이안이었다. 그래서 나는 연구실을 바람처럼 빠져나와 혜화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 창가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서울의 풍경은 단조롭기 짝이 없었지만 묘하게 그 겨울의 버스를 떠올리게 했고, 피곤해진 난 눈을 감아버렸다.
그 해 겨울 내가 염수진의 집으로 찾아간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난 방학 기간 대부분의 기간을 집 앞 카페에서 전공 공부를 하는 데 매진했다. 그러다 매일 보던 그래프와 수식들이 슬슬 뻔해질 쯤 이었다. 우연히 염수진과 연락이 닿았다.
봄이야, 요즘 뭐 하고 살아?
자신이 먼저 건 전화에서 염수진은 여전했다. 난 최근에 공부했던 부분에 대해 변명하듯 조금은 어정쩡하게 말했다. 역시 대단하다, 방학까지 경제 공부를 하다니, 하면서 염수진은 날 칭찬했다. 난 오랜만이었던 주변인과의 대화에 조금은 당황했고, 타인을 묘하게 챙기는 염수진의 어투는 늘 그랬듯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난 결국 서산행 고속버스 표까지 끊어버렸다. 봄이야, 서산 한번 내려올래? 하는 염수진의 제안을 처음에는 거절했었다. 하지만 결국은 그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조금은 오만한 이유였는데, 네가 그렇게까지 날 부르고 싶다면 가 주마, 하는 생각이었다. 염수진이 그때까지의 내 학교생활에 장점으로 작용했으면 작용했지 단점으로 작용한 적은 없기 때문에, 그 애의 고향에 방문하는 것이 크게 나쁠 것은 없다, 싶기도 했다. 원래 대학생의 방학이 이런 것 아닌가, 하는 냉소적인 생각도 날 등 떠밀었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고속버스터미널에 더플 백 하나만 달랑 들고 버스를 기다리러 섰을 때, 난 찬바람보다 어색함에 몸을 떨었다. 친구의 집에 놀러 가는 것은 초등학교 이후 처음이었다. 소란한 서울을 벗어나 버스가 생경한 땅을 달릴 때, 난 눈을 찌르는 햇빛을 커튼으로 꽁꽁 싸매고 이어폰으로 귀를 막은 후 잠을 청했다. 늘 듣던 잔잔한 노래가 귀를 채우자 난 간신히 이 새로운 환경을 잊고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새로운 건 늘 피곤했다. 피곤하다 못해 불편했다.
버스가 다시 멈추었을 때 나는 이어폰을 빼고 아스라이 스쳐 지나가는 인파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어렴풋이 비린내가 났다. 떠나온 서울의 고속버스터미널에 비하면 옹색하게까지 보였던 그 터미널 중심에 염수진이 있었다. 인조 양털이 붙은 검은색 잠바에 청바지, 짧은 단발머리를 하나로 묶은 맨 얼굴의 염수진은 나를 보자 손을 흔들었고, 우리는 잘 지냈니, 짧은 인사를 했다. 염수진은 자연스럽게 봄이야 멀리까지 와 줘서 고맙다, 하면서 팔짱을 꼈다. 난 종이인형처럼 옷자락을 팔락이며 염수진의 옆에서 걸었다. 그날의 거리는 겨울답지 않은 햇빛과 느린 말씨와 바다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염수진의 집은 서산동부시장에 있었고, 우리는 대게니 새우니 넙치니 하는 것들이 빨간 함지에, 수족관에 담겨 비린내를 풍기며 뻐끔거리는 사이를 걸었다. 그런 것들은 꽤나 이질적으로 다가왔는데, 난 그 풍경에서 유일한 이방인으로 서 만화경을 보는 아이처럼 그 풍경 속에서 빙빙 돌았다.
염수진의 집에는 작은 밥집이 딸려 있었다. 백반이니 생선찌개니 바지락 칼국수니 하는 메뉴가 한 편에 붙어 있었고, 여섯 개 정도의 좌식 테이블이 딸려 있던 작은 밥집. 식사시간을 지나서 도착했기 때문에 가게는 한산했다. 막 손님이 일어난 상을 치우고 있던 염수진의 어머니가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엄마, 얘가 봄이여, 하는 염수진의 말에 나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염수진의 어머니는 부산히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어서 와라, 밥은 먹었고? 하며 나를 맞았다. 염수진 어머니의 얼굴의 주름은 생긋 웃는 모습 그대로 나 있었다. 자주 웃는 사람의 얼굴이다. 난 50대의 나이에도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한 피부의 어머니를 떠올렸다가 지워 버렸다.
우리는 염수진과 어머니가 같이 쓰는 침실이자 책방으로 들어간다. 구석에는 염수진의 것으로 보이는 책걸상이 있다. 책걸상 옆에는 오래된 책장이 눈길을 끈다. 노동법과 전태일 평전, 맨큐의 경제학이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게 공존한다. 책상 옆에는 옷장이, 옆에는 가지런히 개어져 있는 이불이 있다. 서울의 내 방보다 작은 방이지만 깔끔하다. 난 더플 백을 책걸상 앞에 두었다.
엄마, 봄이랑 바다 구경하러 갔다 올게, 이따 밥 때까지 올게.
그려, 늦지 않게 오고, 하는 말을 듣고 우리는 집을 빠져나온다. 염수진과 나는 천천히 해가 지고 있는 시장을 벗어나 버스를 타고 서해 바다로 향한다. 염수진은 나에게 서해를 본 적 있냐고 물었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해외의 바다에는 가 보았지만 오히려 서해에는 간 적이 없었다. 난 창가에 머리를 대고 바깥 풍경을 본다. 덜컹거리는 길과 빛바랜 건물들이 스쳐지나간다. 버스의 승객들이 들고 탄 흙 묻은 채소와 비닐에 싸인 생선, 함지에 담긴 자질구레한 것들에서는 오래된 냄새와 새 것의 냄새가 공존한다. 엄습하는 낮선 풍경에 난 신경안정제를 좀 먹을 걸, 후회한다.
넌 뭐 하고 지냈어?
난 옆 자리의 염수진에게 묻는다. 염수진의 앞머리가 살짝 열어 둔 창문에서 들어온 바람에 흔들렸다. 염수진은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엄마가 하는 식당일도 좀 하고, 집안일도 하고 그랬지. 하고 말한다.
나도 공부 많이 했어.
염수진이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무슨 공부를 했냐는 말에 염수진은 잠시 뜸들이다가 나도 전공이랑, 법이랑, 그런 것, 하고 대답했다. 난 염수진이 법을 공부한다는 말에, 염수진이 로스쿨을 준비했었던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러고 버스는 멈췄고, 염수진은 이제 내리자, 하고 말하며 일어났다.
외딴 정류장이었다. 바다 냄새가 물씬 났지만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자박자박 모래를 밟았다. 염수진은 잠깐 외딴 슈퍼에 들르자고 했고, 난 먼지 풀풀 날리는 그 슈퍼에서 염수진이 콜라 두 캔을 사는 것을 바라보았다. 콜라 마실래? 하는 염수진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이면서 구석의 빨대 통에서 위생 따위 느낄 수 없는 빨대를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살짝 뽑아냈다. 사실 어느 정도 자포자기했는지도 모른다. 생경한 풍경은 신기하기보다는 불편했고 이 상황에 제 발로 들어온 나에게도 피곤함이 밀려왔다.
우리는 드넓게 펼쳐진 갯벌을 보면서 계단에 앉아 콜라를 마셨다. 난 콜라에 빨대를 꽂고 마셨다. 미지근한 온도에 비해 탄산은 그대로여서 혀끝이 아렸다. 바닷바람이 너무 찼는지, 아니면 멀리 지고 있는 노을이 너무 붉었는지 염수진의 볼이 빨개져 있었다. 서해 바다는 전혀 푸르지 않았고, 오히려 우중충하기 짝이 없는 누런빛이었다. 그림 같은 푸른 바다를 기대하고 온 건 아니었지만 누런 바다는 서산행을 더욱이나 후회하게 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조용히 콜라를 마시며 시답잖은 대화를 이어갔다.
염수진이 나에게 너는 정말 경제 공부 열심히 하네, 나중에 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하고 물었을 때 난 우습게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바라본 염수진의 말간 눈에 비친 바다를 보면서 내가 보는 바다와 그가 보는 바다는 퍽 다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난 그저 공부하는 것이지, 뭔가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라고 한다. 그런 나에게 염수진은 목적 없이도 무언가를 열심히 할 수 있다는 건 멋지다고 이야기했다. 난 픽 웃어버렸다. 네가 내 인생에 대해 뭘 알겠니.
나 사실, 비밀이 하나 있어, 하고 염수진이 운을 띄웠을 때 우리는 빈 캔을 찌그러뜨린 채 계단에 나란히 기대 앉아 있었다. 난 그게 뭐냐고 물었다. 궁금해서 물은 것이 아니라 그 순간 염수진이 그 말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물었다. 그래서 나는 그 후 염수진이 난 아빠가 안 계셔, 내가 중학생일 때 공단에서 일하다가 돌아가셨어, 하고 말했을 때에도 무덤덤할 수 있었다.
그렇구나, 하고 대답한 것은 뒤에 한 마디 정도 말을 더 해야 할 것 같았지만 붙일 만한 문장을 찾지 못한 까닭이었다. 난 염수진의 마음을 이해할 만큼 공감능력이 좋은 사람도 아니었고 공감도 되지 않는 상황에 공감하는 척 하는 데에는 더욱 소질이 없었다. 염수진은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는 알 수 없었다.
시신 상태가 안 좋아서, 시신 확인은 엄마만 했어. 근데 산재 처리가 안 된다고 해서 미치는 줄 알았지. 아는 것도 없고. 그때 우리 집 최고 학력이 중졸이었으니까, 다들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았는데 갑자기 날벼락이 떨어진 거지.
염수진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그동안 친한 학생회들한테조차 염수진은 자신에 관해 말을 아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당연히 거의 하지 않았다. 그때서야 난 염수진이 날 서산으로 초대한 것이 별 생각 없이 던진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가족의 상실이 그 애의 짐이자 역린인 것이다. 근데 왜 이걸 나한테 알려 주는 거지. 왜 자신의 가장 큰 약점을 이렇게 쉽게 넘겨주는 거지.
그때 도와준 사람들이 노조 사람들이었는데, 아빠는 노조에 가입만 되어 있었지 별로 그쪽과 친하지는 않았대. 그래도 그 사람들은 도와줬어. 변호사를 선임하고 산재 판정을 받아서 보상금을 타 냈어. 그렇게 엄마가 식당을 냈고 나도 서울로 대학을 갔지. 기적이었어.
염수진은 기적이었다고 이야기했지만 내가 염수진의 얼굴에서 읽은 것은 기적이 아니었다. 기적은 거저 주어지는 것들한테나 붙이는 말이다. 염수진은 그저 그 싸움이 기적과 같은 승리로 끝났기 때문에 그것을 기적이라고 겸손하게 칭한 것이다. 왜 아버지를 억울하게 잃은 중학생이 노동법 책을 읽었겠는가? 아마 그 노조 사람들은 염수진의 가족이 보상금을 타 낸 선례가 이후 노조의 세력 확장에 필요할 것이라는 판단에 그들을 ‘도왔을’ 것이고, 그랬기 때문에 염수진은 그들에게 사건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을 것이다.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아니면 그저 운이 좋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염수진은 성공했고 그랬기 때문에 염수진과 노조 사람들은 웃으며 헤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남의 일은 참 쉽게 생각하니까, 누구에게 주도권이 있었는지가 중요했겠지, 속으로 되뇌며 난 학생회 사람들이 사회연대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럼에도 염수진은 참 열심히 집회를 다녔다. 남의 일을 쉽게 생각할 줄 몰라서 그랬을까.
그래서 학생회를 한 거야?
난 몸을 염수진의 쪽으로 돌려 앉으며 말했다. 염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닥에서 까끌까끌하고 건조한 모래가 느껴졌다. 난 무릎을 안고 앉았다. 바닷바람이 쌀쌀해지고 있었다. 애들은 학생회한테 바라는 것만 많잖아, 뭐 하나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하고 내가 말하자 염수진은 잠시 말을 멈추고 잠바를 여몄다. 묶은 머리에서 풀려나온 옆머리가 바닷바람을 맞아 흔들렸다.
결국 염수진은 그래도 난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말했다. 어떤 순간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돕는 사람들이 필요해. 경제학에서는 자기 효용만 중요시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을 가정하지만 난 꼭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아, 하고 염수진은 두 손으로 뺨을 감쌌다. 조금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염수진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난 원래 그랬던 것처럼 오만하게 한 마디를 더 던졌다. 내가 그 순간을 후회할 것을 알았다면 아마 입을 닫았을 것이다.
가정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한다면, 그 가정을 가지고 푼 문제들을 모두 새로 풀어야 할 텐데.
그때는 아무런 생각 없이 건넨 말이었지만 말에는 뼈가 있었다. 사실 그 말을 건넨 건 내 생각이 너무 비틀려서, 그런 이상적이고 듣기 좋은 이야기를 누가 못 하겠니, 하면서 순진해빠진 염수진의 생각을 반박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미리 규정해 둔 단단한 가정 속에 무기력하게 정체되어 있는 주제에. 그랬기 때문에 그 날 내가 한 뼈 있는 말은 몇 년 뒤 다시 날 겨누었다.
염수진은 일어나서 엉덩이를 털어냈다. 염수진의 옷에서 떨어진 모래는 바람을 타고 바다로 다시 흘러들어갔다. 아니, 끝없이 바람을 타고 올라갔는지도 모른다. 염수진은 웃으며 그 마지막 말을 건넸다. 그 웃음은 그 이후 자신의 추락을 아는 것도, 모르는 것도 같았다.
모두가 잘못 알던 가정에서 벗어난다면 얼마나 홀가분하겠니. 봄이야.
그 웃음은 몇 달 후 내 꿈속에 열기구를 탄 채로 등장한 염수진이 나를 향해 짓는 표정으로 박제되었다. 비웃음 같기도 미소 같기도 했지만 난 그 표정이 불편했다. 이유 모를 불편함에 떨었다. 물론 그 때의 난 추락, 죄책감, 그리고 실종 중 아무것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무슨 말을 저렇게 해,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입을 옹졸하게 닫았을 뿐이다.
3.
왜 왔어.
대학병원의 입구에서 만난 이안은 시작부터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이안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레지던트가 된 이후 이안은 분가해 병원 근처에 살았고, 난 대학원생 기숙사에 자진해 들어갔다. 그 후 우리가 집 안을 돌아다니며 형식적으로나마 함께했던 순간도 끝났고, 우리는 그 끝에 퍽 만족하는 편이었다. 우리 집의 서열에서 내가 영구적으로 밀려난 이후로 이안은 나에게 관심을 끊었고, 그게 그의 방식으로 한 배려였다.
혹시 염수진이라고 기억해?
내가 던진 말에 이안은 아니, 기억 안 나는데, 하고 답했다. 이안이 잊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한 대화는 염수진에 대한 것이었고 이안은 기억력이 탁월하다. 기억은 나지만 언급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그런 이안에게 나는 정말로 기억나지 않는지 되묻는다.
염수진이란 애는 잘 모르겠고 네가 전에 한심한 얘기를 했던 건 기억나. 그때 내가 분명하게 얘기하지 않았니? 네가 선택한 것 가지고 나한테 와서 질질 울면 나보고 뭘 어쩌라고? 네가 선택한 행동인데 왜 나한테 와서 그게 옳았다는 근거를 내놓으라고 하냐 말이야.
난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이안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이안은 늘 옳은 말 중 가장 듣기 싫은 말을 했다. 그게 이안이 자존심을 챙기는 방법이었고 나는 늘 질색하곤 했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 순간 처음으로 이안을 찾아가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안은 최소한 감정에 휩쓸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그 순간에는 평정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이안이 필요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안을 찾아갔을 때는 염수진이 추락했던 날이고, 난 처음으로 제대로 취한 채 이안을 찾아갔었다. 그 날은 비가 내렸고 나는 쫄딱 젖은 채로 전화를 받고 나온 이안 앞에 섰다. 이안은 내게 가까이 오지도 않았다. 나는 울면서 염수진 얘기를 했다. 다들 걔를 이용해먹었는데, 모두가 걔가 어려울 때는 외면했어, 하면서. 걔가 분명히 사람을 너무 믿어서 이렇게 된 거야, 걔가 틀렸어. 그래서 나도 그냥 나가버린 건데, 내가 틀린 게 아닌데. 왜 벌 받는 것 같지? 내가 옳았다고 말해 줘.
이안은 내 말을 듣고 조용히 전화를 걸어서 택시를 불렀다. 그러고 저 말만 건네고 뒤돌아 돌아가 버렸다.
철 좀 들어라, 이봄. 네가 무슨 짓을 해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틀리게 행동했으면 용서를 구하고 바로잡으면 돼. 근데 네가 틀린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 옳은 행동을 한 사람처럼 행동해야지. 택시 타고 집에 가.
까진 무릎 때문에 절름거리며 이안을 왜 찾아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염수진이라면 아마 이런 해석을 했을 것이다. 네가 가족 중에서 가장 의지하는 사람이 오빠니까 오빠가 생각났겠지, 하고. 아마 그 말에 나는 아마 그렇게 대꾸했을 것이다. 그건 너희 집에나 해당되는 얘기지, 우리 집은 아니야.
우리는 그날 바닷가 쓰레기통에 콜라 캔을 던져 넣고 염수진의 집으로 귀가했다. 이십 분이나 기다려서 탄 버스는 덜컹거렸고 어지러웠다. 난 창문에 기댄 나의 어깨에 기댄 염수진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시골길을 달려 염수진의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염수진은 언제 울적했냐는 듯이 밝아졌다. 염수진은 어머니를 도와 상을 차렸고, 염수진의 오빠가 귀가했다. 염수진의 오빠는 나를 소개받고 수진이 친구지, 어서 와라, 하고 무뚝뚝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현관에는 어머니의 보라색 슬리퍼와 염수진의 흰 운동화, 염수진 오빠의 때 묻은 회색 운동화, 그리고 나의 검은 가죽 단화가 나란히 놓였다. 우리는 부엌에 둘러앉아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갈치조림과 젓갈, 구운 김이 같이 올랐다.
그들은 끊임없이 대화를 했고, 나에게 그런 것들을 물었다. 형제자매가 있는지, 염수진이랑 어디서 만났는지, 어떤 공부를 좋아하는지. 나는 오빠가 한 명 있다고 했고, 염수진은 경제 3반 동기로 만났다고, 그리고 전공 공부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 가족은 말수가 많진 않았지만 느릿한 어투로 시작한 대화는 모두를 느슨한 경계 안에 묶어두었다. 염수진의 오빠는 시장에서 배달 일을 한다고 들었다. 염수진의 어머니는 오늘 누구네 엄마가 와서 밥 먹고 갔다고 얘기했고, 염수진은 아 걔, 중학교 때 친구야, 하고 말했다.
집에서 가족들은 대화하는 법이 많지 않았다. 오직 아버지와 어머니만 대화했다. 이안과 나는 서로 대화 없이 조용히 식사를 했다. 부모님은 고객과 환자에 대해 주로 대화를 했고, 그것은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나와 이안에게 관심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나와 이안은 통보하듯이 그들에게 우리의 실적을 이야기했다. 그게 우리 대화의 전부였기 때문에 나는 덜떨어진 아이처럼 염수진의 가족이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봄이, 많이 먹어라, 생선도 발라 먹고.
염수진의 어머니는 내 접시에 통통한 갈치를 올려주었다. 난 가만히 갈치의 가시를 발라 입에 넣었다. 이유 없이 목이 메었다. 그저 그 느슨한 경계에서 벗어나 다시 집으로 들어가 버리고 싶었다. 그 모든 풍경이 궁상맞기 그지없는데 자꾸 샘이 나서. 오래된 집은 깨끗이 치워져 있었지만 모든 것은 낡아 있었다. 집에는 식탁조차 없었고, 앉은뱅이 상을 펴고 식사해야 했다. 방은 두 개밖에 없었고, 그나마 가장 큰 방이라고 하는 방도 본가의 내 방보다도 작았다. 염수진의 가계는 조그만 식당과 오빠의 배달 일에만 의존하고 있고, 그 경제적 가치는 부모님 중 한 사람이 벌어들이는 수입만도 못할 것이다. 그런데 왜.
수진이가 공부를 잘 해서 대학도 잘 가고, 좋은 친구도 만나서 잘 되었다. 봄이도 방학 때 자주 놀러 오고, 같이 공부도 열심히 해라.
키가 껑충하게 크고 말수가 적은 염수진의 오빠는 저 한 마디만 건넸다. 오빠와 염수진은 네 살 터울이 났다. 염수진이 어머니를 많이 닮은 것에 비해 오빠는 아버지를 많이 닮은 것 같았지만 둘의 분위기는 비슷했다. 눈꼬리가 짧은 둥근 눈에 콧대가 긴, 과묵하고 생각이 많은 인상이었다. 염수진을 많이 아끼는 듯 했다. 말은 많지 않아도 눈빛에는 염수진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었다. 어머니 역시 두 자식을, 그리고 자식의 친구까지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이안이, 어머니가, 아버지가 나를 바라보던 표정을 차례로 넘겨보다가 그저 잊어버리기를 택했다.
너, 어디 아파?
저녁을 먹고 우리는 시장을 한 바퀴 구경했고, 밤이 깊어오자 이불을 펴고 잘 준비를 했다. 나는 고등학교 입학 이후 한 번도 끊은 적 없던 항불안제를 삼키고 있었고, 염수진은 베개를 꺼내다말고 내게 물었다. 여기서 나는 불안장애가 있어서, 정신과에 다닌 지 오래되었어, 하면서 동정을 구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염수진에게 두통약이라고 거짓말을 했고, 염수진은 아아, 그렇구나, 하고 더 묻지 않았다.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 것도 염수진의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그날 저녁은 조용했다. 염수진의 어머니가 거실에서 보던 드라마 소리가 방 안으로 조금씩 들리던 그 작은 방 안에 나는 염수진과 나란히 이불을 덮고 누웠다. 난 눈을 감은 채로 염수진에게 왜 나에게 아버지 얘기를 해 주었냐고 물었다. 염수진은 잠시 가만히 숨을 쉬었다. 조용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봄이 너는 남의 약점을 기회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하고 염수진은 말했다.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는 이름인데, 염수진이 나를 봄이라 부르는 것이 이상하게 듣기 좋았다. 봄이야 너는 나에게, 소중한 친구야, 하는 염수진의 말에 나는 눈을 떴다. 염수진의 검은 형체와 네모난 방의 집기를, 아득히 보이는 창문 밖 가로등 불빛과 천장을 본다. 나직한 염수진의 음성은 편안했다. 난 이마를 짚으며, 그 날 그 방의 풍경이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을 직감했다.
난 방 천장의 사각형 무늬를 보면서 속에 가지런히 정리된 것들이 뒤엉키는 감정을 느낀다. 그날 밤 나는 아무 꿈도 꾸지 않았다. 그저 감은 눈 속처럼 새까만 무언가만 존재했다. 아무런 동요도 없이, 난 오랜만에 긴 잠을 잤다.
염수진이 실종되었어.
나는 이안에게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한 마디만 뱉었다. 이안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안은 원래도 표정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정말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이안은 다시 물었고 난 이안의 얼굴에서 어린 이안의 모습을 본다. 너랑은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야, 하면서 쏘아붙이던 열 살쯤 되는 이안의 모습을. 그때는 아직 우리가 이안과 이본느였던 시기의 한가운데였다. 그때 여전히 이본느였던 나는 비명을 지르고 기절했지만 이봄으로 십 년이 넘는 시간을 산 나는 비명을 지르지도, 기절하지도 않고 이안을 똑바로 보았다. 걔는 내 친구고 길을 잃을 리가 없기 때문에 상관이 있어, 하고 말한다.
우리 남매의 이름은 이안과 이봄이다. 보통은 외자 이름을 가진 남매구나, 생각하겠지만 우리의 이름은 결코 안과 봄이 아니었다. 허영심 넘치는 부모님은 우리의 이름도 귀족처럼 우아하기를 바랐고, 그래서 우리 이름은 이안(Ian)과 이본느(Yvonne)를 우리말로 쓴 이안과 이봄이 되었다. 부모님도 우리를 이안과 이본느라고 불렀고, 부모님의 지인도 우리를 이안과 이본느라고 불렀기 때문에 나는 외부인들이 나를 봄아, 하고 부르면 알아듣지 못하기 일쑤였다. 부모님이 초청받은 큰 컨퍼런스에, 앙증맞은 원피스에 구두를 신고 빨간 리본으로 머리를 묶은 내가 꽃다발을 든 채로 서성이고 있으면, 어머니는 해사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곤 했다. 이본느, 아가, 이리 오렴. 난 그 이름도 목소리도 퍽 좋아했었다.
입시 실패로 인해 가차 없이 이본느에서 봄으로 격하된 나와 달리 이안은 자신이 한 번도 이안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단 한 번, 그가 안이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초등학교 시절 이안은 꽤 가까이 지내던 몇 명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중 주호, 정주호라는 아이가 있었다. 둘은 다른 남자아이들과는 달리 이안의 방에서 이런저런 책을 읽으며 노는 걸 좋아했다. 나는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매일 오빠들과 놀고 싶어 안달했었다. 그날 오후에 나는 자택 근무를 하던 어머니를 졸라 오빠들에게 나도 끼워 주라고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고,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이상하게 조용하던 이안의 방으로 가 놀다 잠든 주호의 입술에 입을 맞추던 열 살 배기 이안을 발견했다.
이안은 퇴근한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맞았다. 나는 방에 쪼그려 앉아서 이안이 흐느껴 우는 소리를 들었다. 이해할 수 없는 고성이 오갔다. 나는 그저 이안이 주호를 많이 좋아했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 그 행동이 어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아버지가 한숨을 크게 쉬며 이안에게 방으로 돌아가라고 했을 때, 나는 조용히 나가 이안의 방으로 갔었다. 퉁퉁 부은 눈으로 앉은 이안에게 나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 때문에 어머니가 와서 이안이 혼났으니까. 그 순간 우울하게 앉아 있던 이안이 벌떡 일어났고, 혼날 때는 내지 못했던 목소리로 너랑은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야, 하고 쏘아붙였다. 네 일도 아닌 일에 참견하지 마, 너 때문에 내가 혼난 것 같아? 아니니까 저리 꺼져, 나가라고, 하며 이안은 목이 잠기도록 소리쳤다. 순간 나는 비명을 지르며 기절했다. 아마 이안은 또 혼났을 것이고, 아주 잠시 안이 되었다가 다시 이안이 되었을 것이다. 그 날 이후 이안은 다시는 주호와 놀지 않았고, 결국은 과학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동네를 아예 떠나버렸다. 고등학교 조기졸업 후 명문 의대에 진학하면서 이안은 한 번도 이안이 아닌 적이 없었다. 그 후로 이안은 여자친구도, 남자친구도 만들지 않았다.
이봄, 내가 분명히 얘기 할 테니까 제발 귀담아 들어. 네가 어떻게 살든지 내 알 바 아니야. 근데 제발 일관성 있게 살아. 네가 선택해 놓고 그 근거를 다른 사람들한테 묻지 말라고. 근거도 없는 선택을 한 건 너야.
그래도 이안은 나를 이봄이라고 부른다. 그게 이봄인지 이본느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이안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이안은 나를 비웃더니 한 마디만 남기고 들어가 버렸다. 난 이안이 지금 행복한지, 불행한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음을 순간 깨달았다. 그저 이안은 안이 아니라 이안이 된 것이다. 그가 제출한 답안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안인 것이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종결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의 삶에 당당했던 만큼, 동시에 그의 불행 앞에서도 당당했을 것이다.
네 인생이 어디가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네 문제는 네가 풀어.
난 이안의 흰 가운이 바람에 펄럭이면서 건물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고, 버스 정류장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사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 순간은 간절히 생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내가 진실이라 믿지도 않았던 가정으로 삶의 모든 문제를 풀었다는 자각은 시험이 끝난 후 내가 쓴 공식이 틀렸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처럼 몸을 벌벌 떨리게 했다. 나는 내가 감히 검증조차 하려 하지 않은 가정을 죽을 때 까지 지키다가 가정과 함께 말라 죽을 사람이었다. 나는 마른세수를 하고, 집에 수면제가 남아 있는지 세어 보았다. 자고 싶었다. 가능하면 영원히 자고 싶었다.
일이 꼬였다. 아주 단단히 꼬여버렸다. 염수진은 내게 벗어날 기회를 여러 번 줬지만 난 하나도 잡지 못했다. 얼굴에 내리쬐는 빛은 햇빛이 아니라 가로등빛이었지만 난 사막에서 길을 잃은 사람처럼 바닥으로, 바닥으로, 가정으로 말라붙어갔다.
<그 가정의 방문>의 전문은 월간 권태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monthly-kwontae.com/14으로 찾아오세요!
전여운 | 공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경제학도입니다.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깨달음들을 기록하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떠오른 이야기들을 씁니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을 생각들과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쓰는데, 그 글이 독자들에게도 재미있게 읽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