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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Jul 27. 2022

죽으면 그만이라는 말은

 "안녕하세요? 진료소장입니다."

P어르신 댁 현관문 앞에 서서 방충 문을 열며 기운차게 인사를 했다. 안에서 '네~'하는 대답과 함께 어머니가 아닌 며느리가 나온다. 3년 가까이 방문을 하는 집인데 며느리가 나를 맞아 나오기는 처음이다. 아들 내외는 1층 창고에 있는 방을 사용하고 있었고 어르신 내외가 지내는 2층에서 그들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르신 안 계세요?"

언제나 소파에 앉아 나를 맞으시던 어르신이 보이지 않기에 물었다. 

"우리 어머니 지난주에 돌아가셨어요...."

"네?"

한 달 전 방문했던 날, 내게 저 다육을 분양해 주실 때 '더 큰 거로 떼어가라'라고 하셨을 때만 해도, 아픈 내색도 특별한 기미도 없었다. 당황한 나는 말을 잃고 서 있었고 며느리는 정리 중이던 물건들을 치우며 들어오라고 청했다. 

"코로나 확진이 되셨었는데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서 급하게 병원에 모시고 갔는데 원래 있던 폐암이 급속히 전신으로 퍼져 암이 많이 진행되었다고 했어요. 내내 병원에 계셨는데 결국 이겨내지 못하시더라고...."

"정말로 당황스럽네요....."

"어제 삼우제 지내고 정리 중이었어요."

"아버님도 안 보이시네요?"

"아버님은 인천 큰 아들네로 가셨어요. 어머니 안 계셔서 그러시는지 여기 있기 싫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시다니 정말로....."

"어머니가 나 고생할까 봐 빨리 가셨나 봐요"

말을 잇지 못하는 내게 그렇게 말하는 며느리의 얼굴이 슬퍼 보이진 않았다. '무슨 고생? 어머니를 위해서 당신이 한 고생이 있다고?'라는 말이 목구멍에 치밀었다. 

"그래도 많이 서운하시죠?"

강제로라도 받아내려는 채무처럼 나는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말투로 그 며느리에게 물었다. 

"에이, 누구나 다 한 번 가는 길이잖아요? 죽으면 그만이지 뭐, 죽은 사람이 뭐 아나요? 어머니가 많이 괴로워하셨는데 이제 편안하시겠죠 뭐....."

며느리는 세상 편한 표정으로 가볍게 말을 했다. 고부간 갈등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방문을 가도 아들 내외가 사는 창고에 딸린 1층 방엔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어르신 부부가 사는 2층은 전형적인 거동불편 어르신의 집과 다르지 않게 묵은 먼지와 늘어놓은 살림들이 어지럽곤 했다. 늘 음식 쓰레기의 비릿한 냄새와 안팎을 수시로 드나드는 고양이뿐이었고 P어르신은 항상 소파에 무표정하게 앉아 나를 맞아들였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는 방문마다 며느리나 아들은 마치 나를 자신들과 무관한 지나가는 외판원 정도로 여기고 어머니가 집에 안 계신 줄도 모르기 일쑤였다.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나 연로하신 아버님에게 아들 내외에게 어떤 존재일까 매번 궁금하곤 했었다. 하지만 '죽으면 그만'이라는 말은 직업이 요양보호사인 며느리가 할 말은 아니란 생각에, 그저 혹시나 자신에게 지워질 노인 돌봄의 짐이 시작 전에 치워져 홀가분하다는 소리처럼 들려 불쾌해졌다.  하지만 앞으로 그 무뚝뚝한 할아버지도, 싹수없는 아들도, 뻔뻔스러운 며느리도 만날 일이 없으니 되었다고, 허망한 마음을 다독거리며 그 집을 나섰다. 



 일주일 후 J어르신 댁을 방문했다. 홀몸 노인이신 J어르신은 거동도 불편하신 데다가 가지고 있는 질환들이 좀처럼 조절이 안 되는 분이다. 하지만 악착같이 고추며 농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어르신은 항상 기운이 없고 몸이 아파서 늘 누워 계시곤 한다. 그날은 분명 전화를 드리고 방문했지만 집에 계시지 않았다. 어르신의 며느리에게 전화로 물었지만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방문 용품을 거실에 던져두고 돌아서서 나오는데 보긴 지소 직원이 전화했다. '점심을 같이 먹자'는 제안에 마침 출장 나온 길이니 점심을 같이 먹고 들어가면 될 시간이었다. 인근 식당에서 직원들을 만나 자리에 앉자마자 뒤따라 들어온 두 여인이 바로 옆자리에 앉는다. 익숙한 얼굴, J어르신이다. 

"안녕하세요? 식사하러 오셨어요? 어쩐지 어머니 집에 가니까 안 계셔서 헛걸음했어요."

"아이고 우리 소장님도 점심 잡수러 오셨어? 딸 집에 갔다가 덥고 밥맛도 없는데 나가서 사 먹자고 해서 따라왔지. 우리 딸이 요새 시어머니가 죽었잖아. 무섭다고 같이 있자고 해서 딸 집으로 건너갔어. 얘가 나한테 그렇게 잘해.... 딸 없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

J어르신은 딸 자랑에 침이 마른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마주 앉은 분을 보니 지난주 돌아가신 P 어르신의 며느리였다. 덩달아 놀라며 어색하게 웃는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친정어머니세요? 몰랐네요! 아드님하고 며느님은 자주 만나서 아는데..."

"아... 모르셨구나....."

밥을 먹으며 자꾸만 곁눈질을 했다. 남의 가정사야 알 수 없지만 돌아가신 P어르신의 며느리를 보며 불편했던 마음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J어르신의 딸은 말할 수 없이 다정하고 효성스러워 보였다. 저 뻔뻔스러운 여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내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돌이켰다. 남 이야기할 것 없다. 부끄러웠다.


 죽으면 그만이라는 말은, 죽은 자들이 하는 말이지만 그 또한 사실이다. 그냥 죽으면 그뿐이다. 죽은 이를 애 닮아하고 기억하고 영혼의 안식을 비는 일은 살아 있는 자들의 몫이지만, 누구나 그것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 '오늘은 너, 내일은 나'라는 그 무거운 말의 가치를 생각하고 세상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 가리라고 마음먹어 본다. 곧 돌아오는 친정아버지 기일엔 코로나가 다시 증가 추세여서 모일 수 없을지 모르겠다. 혼자라도 아버지를 기억하며 기도하는 날로 보내야 할 것이다. 죽으면 그만인 아버지보다 나 자신의 평화와 위로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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