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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Jul 01. 2022

어른 노릇도 고달프긴 하다.

철든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코로나 확진자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덕분에 이제는 코로나 선별 진료소 근무가 월 1회로 줄었다. 뿐만 아니라 하루 검체 채취를 기본 100명부터 시작하니 늘 몸살이 나던 업무량이 줄어 선별 진료소 파견 근무가 주말인 것만 빼면 더 이상 힘들지 않은 날이 드디어 도래했다. 문제는, 대상자 수가 많건 적건 이른바 성격이 몹시 급하고 막말과 격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 일명, '진상'이라 불리는 분들이 늘 한 명씩은 있다는 것. 지난 주말 나의 근무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주말 검체 채취 업무를 위해 선별 진료소에 도착하고 보니 함께 짝을 지어 근무할 직원이 처음 보는 분이다. 보건소는 워낙 직원 수가 많은 방대한 조직이니 만나도 만나도 여전히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며 통성명을 하고 근무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인지센터에서 치매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을 하는 탓인지 어르신들이 오시면 잘 맞이하여  역학 조사를 수월하게 해냈다. 우리 군의 선별 진료소는 음압 장치가 있는 컨테이너 안에서 유리벽 너머 대상자에게 손만 내밀어 검체 채취를 하는 구조여서 마이크를 통해 대상자와 소통을 한다. 그날도 수가 많지 않아 여유롭게 검체 채취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병원 입원을 위한 검사'를 받으러 오신 80대 어르신께서 검채실로 들어오셨다.

"앉으세요"

어르신이 들고 오신 검 채용 튜브와 팁을 받아 들고 코에 넣는 팁을 집어 든 순간 어르신께서 화들짝 놀라시며 벌떡 일어서신다.

"이 무식한 연놈들, 저걸로 무식하게 코를 후벼가지고 뒷골까지 쑤시는 바람에 지난번에도 죽을 뻔했어! 이 무식한 연놈들 같으니라고! 어디 뒷골까지 닿게 그걸 쑤셔!"   

어르신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뒤통수를 불같이 화를 내셨다. 나는 잠시 서서 어르신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서 천천히 그리고 나직하고 다정하게 말했다.

"전에 검사받으실 때 많이 아파서 놀라고 화가 나셨군요."

"아주 무식한 놈이 다짜고짜 냅다 쑤셔서 아파서 죽을 뻔했어!"

말씀은 악당처럼 하시지만 어르신의 눈빛은 두려움이 가득했다.

"아버님. 제가 아주 천천히 하나도 안 아프게 잘 한 번 해볼까요?"

당황하시는 어르신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칸막이 너머의 나를 바라보셨다. 

"다행히도 제가 아주 경력이 많은 간호사여서 일을 잘합니다. 저한테 한 번 맡겨 보시렵니까? 마음의 준비되시면 자리에 앉으십시오."

나의 말에 잠시 주저하시던 어르신이 자리에 앉아 마스크를 벗으셨다. 먼저 목 안을 검체하고 나서 잠시 뜸을 들였다.

"괜찮으시죠?"

"네, 괜찮아요."

"자, 이제는 코를 한 번 볼까요? 아버님이 움직이지 않으시면 눈 깜박할 사이에 제가 들어가는 줄도 모르게 한 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준비되셨나요?"

"네"

하지만 대답과 달리 어르신의 손이 자꾸만 검채팁을 잡으려고 한다. 마음이 딱하다. 얼마나 모질게 검채팁을 후볐으면 이렇게 아이처럼 구시는지...


 "아버님, 유치원 아기처럼 이렇게 겁이 많으세요? 그래도 아버님이 협조해 주셔서 검사가 잘 되었습니다. 병원 가서 진료 잘 받고 오세요."

그렇게 가까스로 검체를 마치고 튜브에 검채팁을 넣으면서 내가 웃으며 가볍게 농담을 했다. 껄껄 웃으시며 '수고하라'라고 인사까지 하고 나가시는 어르신의 어깨가 훨씬 가벼워 보였다. 

"어르신 참 귀여우시다"

나의 말에 함께 근무 중인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소장님, 어쩜 그렇게 어르신을 잘 다루세요? 근무한 지 오래되셨나 봐요?"

"저요? 삼십 년 넘었죠?"

"예에? 그렇게 오래되셨아요? 어릴 때 들어오셨나 보다! 저보다 어려 보이시는데..."

"제가 좀 일찍 들어왔어요. 대학 졸업하고 일 년 병원 근무하다가. 선생님은 몇 년 생?"

하지만 알고 보니 나보다 한 살 어린 직원이시다. 멋쩍게 웃는 그녀는 나름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저는 철이 아직 안 들어서 그런지 생각대로 잘 안 되는 일이 많아요. 마음은 친절하게 해야지, 하다가도 저렇게 진상을 부리면 저도 모르게 '맞대응'을 하게 돼서...."

"저도 그래요. 철들자 망령이라잖아요?"

함께 웃으며 우린 조금 더 가까워진다.  

"철든다는 것은 뭘까요? 저는 아직도 철드는 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저런 어르신들을 보면 나이가 든다고 철이 들어 진짜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녀의 말에 나도 동감이다.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철이 들게 되는 건 아닌 모양이에요. 진료소에서 근무를 하다 보면 어린아이처럼 다짜고짜 생떼를 쓰는 어르신들이 더러 있어요."

우리는 그간 각자 겪은 '생떼 쓰는 어르신'의 사례들을 나누며 말 못 할 노고를 풀어냈다. 주말 선별 진료소는 오후 1시까지이니 서로 웃으며 이야기 꽃이 만발한 가운데 코로나 검사를 위한 선별 진료소의 하루가 금세 흘렀다. 


 오래전, 어떤 신부님을 모시고 생선회로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을 때, 동석한 자매가 '자신은 나이가 40대에 접어들었어도 사람들에게 '철없다'라는 소릴 자주 듣는다고 하면서 '철든다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도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그 순간 신부님께서, '자매님, 지금 자매님이 손에 든 간장을 내 종지에 먼저 붓지 않고 다른 이들의 종지에 먼저 부어 주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울 때 철들었다고 하는 거겠죠?'라고 말씀하셨다. 순간 부끄러워진 것은 그 자매뿐 아니라 나도 그랬다. 나 역시 남을 먼저 생각하고 남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당연하고도 자연스럽지 않았다. 한자의 '덕()'이란 '몸에 베인 좋은 습관'이라고 했다.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바른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성찰을 하고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시간이 쌓이고 모여 철든 어른이 되는 것이리라.  


 나이가 무색하게 나잇값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주변을 살피고 스스로를 매일 돌아보는 이들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본받을 어른이 가까이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어제 34년을 근무하고 퇴임식을 가진 선배의 담담한 소감이 나의 마음에 울림일 주었다. 몇 년 후 있을 나의 퇴임식을 그려 본다. 정년까지 근무하고 퇴임한 수많은 선배들도 스쳐 지나갔다. 어떤 선배는 '너무 열심히 하지 마'라고 유감스러운 마지막 말을 남긴 이도 있고, 또 어떤 선배는 자신의 퇴임식에 참석도 하지 않은 이도 있었다. 나의 곁을 스쳐간 수많은 '철없는 어른들'을 보면서 어른이 어른 값을 한다는 것이 실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모양이라고 새삼 생각하게 된다. 보름 전 자신이 결재했던 행사에 불참하는 우리 조직의 어른을 내내 생각 중이다. 자신이 맡은 직무의 무게와 고민과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 어른의 일인데 그는 어찌 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하는걸까. 나에게 어른 노릇이란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것 외에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안다는 것도 포함이다. 남이야 어쨌든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치자고 결심해 보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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