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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Jun 03. 2022

용서는 결국 사람 사이에 바람을 통하게 하는 일이다.

호를 구더기라고 지을 뻔했어

 구덕초. 민들레를 그리 일컫는다고 한다. 아홉 가지 덕을 가진 풀이라고. 그 아홉 가지 덕 중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특별한 하나의 덕은 그 어디에 씨가 떨어져도 싹을 내고 꽃을 피우며 짓밟혀도 다시 일어나는 그 질기고도 강한 생명력이다. 뿌리를 캐내지 않고 민들레를 없앨 방법은 없다. 뽑혀 시든 민들레는 누운 자리에서 죽어가면서도 홀씨를 날린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놀랄 일이다. 땅에서 뽑힌다는 것은 얼마나 막막하고 두려운 일인가. 그러나 나를 짓밟는다고 두려워하지 않고 최대한 멀리 많이 홀씨를 날리는 민들레의 강인 함이라니. 내가 나이를 잔뜩 먹었다고 느낀 순간 뒤를 보니 내가 민들레랑 많이 닮아 있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이제부터 나를 부를 때 호를 불러 달라고 했다. '호를 구덕이라고 지을까 해'. '뭐라고? 구더기?! 왜 하필 호를 구더기라고 지었어?!' 놀라 묻는 남편 때문에 내 호를 구덕이라 지으려던 생각은 곧 포기했다.


 민들레를 보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덕이라곤 약에 쓰려던 없었던 그는 내가 겪었던 악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지금은 80세를 바라볼 S 씨는 , 내가 첫 발령지인 섬을 떠나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상륙한 육지의 마을 이장이었다. 물론 강화도가 연육교로 육지와 연결된 섬이니 우리는 '본도'라고 불렀었다. 하지만 본도라서 좋은 점은 집에 가고 싶을 때 버스만 타면 아무 때나 갈 수 있다는 것 외에 섬 마을 사람들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특히 S 이장님은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컬러풀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었다. 일단 근무지를 옮겨 일주일 정도 되었던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낮술에 얼굴이 불콰한 S 이장님이 면사무소 직원을 달고 들어와 민원실 소파에 두 팔을 척 걸치고 다리를 꼬는 동시에 나를 면사무소 직원에게 소개했다.

"보건소 김 기사 딸이야"

그 순간 놀라기는 나도 그 면사무소 직원도 똑같았다. S 씨가 '김 기사 그 양반...'이라고 했던 우리 아버지는 당시 보건소 앰뷸런스 운전원으로 근무 중이셨고  S 씨보다 보다 10살 정도 많았으며 그와는 일면식도 없었다. 그는 눈치도 없이 불콰한 얼굴에 교만 가득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김양 커피 좀 타 와봐"

'이장님, 그만 가시죠, 그만 가시죠'하며 쩔쩔매며 내 눈치를 보는 면 직원에게 '못난 놈'이라고 하면서 내가 미혼이니 잘해보라고도 했다. 태어나서 만난 이들 중 가장 천박한 사람이었다. 그 참을 수 없었던 간장의 순간 나는 숨이 막혔었다.


 젊었던 시절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다혈질이고 거침없었다. 어쨌든 놀라 당황한 정신을 수습하면서 내가 했던 말은, '여기는 다방이 아니니 커피를 드시겠으면 다방으로 가시고 진료를 받으실 것이 아니시면 그만 나가 달라'였다. 면 직원에게 이끌려 나가는 이장님은 흥분하시면서 '싹수없는 애가 왔다'라고 내 뒤통수에 대고 으르렁거렸다. 첫 단추는 그렇게 잘못 채워졌고, '싹수없고 젊은 진료소장'은 유별나게 천사표였던 전임자와 매번 비교되면서 마을 주민들에게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시작을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내가 첫 아이를 출산하여 출산 휴가 중이던 참에 이장님의 모친이 돌아가셨는데 조문을 하지 못했다. 자신도 슬하에 자녀를 셋이나 두었지만 '아이 낳으러 가서 오지도 않는다'라는 민원을 받기도 할 정도로 그는 마음이 모진 사람이었다. 반대로 다른 마을에서는 '엄지 척'을 받는 나는 항상 고민스럽고 괴로웠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최선을 다했고 지역사회 주민을 위한 건강을 유지 증진하기 위해 이런저런 수많은 사업을 펼쳤다. 하지만 연임에 연임을 하는 이장의 끊임없는 민원에 시달리며 6년을 보냈다. 그는 기필코 나를 쫓아내겠다는 일념으로 가는 곳마다 나를 헐뜯었고 마을에서도 나와 친한 사람들을 찾아가 싸잡아 욕을 했다. 돌이켜 보면 나도 참 질긴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당시는 야간 응급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기능 때문에 거주의 의무가 있었다. 그러니 S 씨가 이장을 맡은 내내 그 동네를 떠나지 않고 살면서 하루도 편한 마음으로 근무를 하지 못할 정도였는데도 다른 곳으로 전출 요청을 하지 않았다. 출근 전 반바지를 입고 있다고 민원을 넣는 정도였어도 S 씨 빼고는 모두가 좋은 사람들만 있는 마을이어서 그랬는었는지 모르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긴 인내의 시간은 내게 좋은 것을 보답으로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어느 무더웠던 한낮에 수건으로 잔뜩 손을 감싸고 S 씨가 진료소로 달려왔다. 낮술을 드신 채 고추 가르는 기계에 고추를 넣다가 손가락을 다친 것이다. 술을 드셨으니 운전을 할 수도 없어 하는 수 없이 진료소로 달려온 것이다. 그의 표정은 아주 쓰디쓴 어떤 것을 씹은 사람 같았지만 그의 아내가 험악한 표정으로 내내 노려 보고 있었기에 달리 내게 험하게 하지는 못했다. 일단 드레싱을 하기 위해 다친 손가락을 살폈다. 일단 손등 쪽의 손가락 세 개가 찢어졌고 찢어진 안쪽을 들추고 살펴보니 인대도 끊어진 것으로 판단되어 병원으로 후송을 가야 했다. 지금이야 전화 한 통이면 119가 득달같이 달려왔겠지만 그땐 그런 것이 여의치 않던 시절이었다.


 최악이었던 그 어떤 날, 이른 새벽 오토바이를 타고 와 요란하게 부릉부릉 거리며 우리가 자고 있던 창문 턱 앞에서 그가 쏟아내던 그 모든 욕설로 나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던가. 나는 그때, '당신 딸도 대학을 가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처럼 눈물을 흘리는 날, 당신 눈에서는 피눈물이 날 것이다'라고 남편에게 울며 하소연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의 딸이 고등학교도 졸업하기도 전에 그는 다친 손에 붕대를 칭칭 감고 '어서 타시라'라고 재촉하는 나의 차 옆에 손을 감싸 쥔 채 입을 다물고 머뭇거리고 서 있었다. 그 장면은 마치 죄를 지은 이들이 두 손에 찬 수갑을 숨기려고 수건을 감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포토라인 앞에 선 모습처럼 보였다. 그 장면 하나로, 나는 지난 6년 세월의 치욕과 고통에 대한 앙갚음의 때가 왔다고 직감했다. 다친 그를 태우고 읍내 병원 응급실로 갔고 마침 퇴근하던 병원장과 마주쳤다.  평소 인사 나누는 사이였던 그 병원장은 외과 전문의였고 그 즉시 이장님의 손 상태를 살피고 곧바로 수술실로 모시고 올라가 인대 복원까지 금세 마칠 수 있었다.  그날 하루 입원을 하여 항생제 치료까지 마친 S 이장은 당연히 태도가 180도로 바뀌었다. 어린아이 만한 양배추를 따서 가지고 온 그가 내게 '고맙다'라고 인사를 했을 때 그 쾌감이라니...... 그가 서있던 발 뒤로 밭둑길을 따라 줄을 지어 흐드러지게 가득 피어있던 민들레의 눈부신 노란빛을 나는 잊지 못한다.


 내가 호로 삼으려고 했던 민들레의 아홉 가지 덕을 기려 여기에 옮겨 적어 본다. 옛 서당에 즐겨 심고 그 덕을 가르칠 만큼 다시 읽어 보아도 본받을 식물의 특성이다.


一德 : 모진 환경을 이겨내고 피어난다는 것이 민들레의 일 덕이다. 씨가 날아 앉으면 바위 위이건 길 복판이건 마소의 수레바퀴에 짓밟혀 가면서 피어나고 마는 억척이다.
二德 : 그 자체가 가공할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이 이덕이다. 뿌리를 난도질하여 심어도 싹이 돋아난다. 역경의 인생에 더 없는 교훈을 주는 민들레다.
三德 : 장유유서의 차례를 아는 것이 삼덕이다. 한 뿌리에 여러 송이의 꽃이 피는데 동시에 피는 법이 없고 한 송이가 지면 차례로 기다렸다 핀다.
四德 : 어둠에 꽃잎을 닫고 비가 오려하거나 구름이 짙어지면 꽃잎을 닫으니 명암의 천기를 알아 선악을 헤아리는 것이 사덕이다.
五德 : 꿀이 많고 진해 멀리서까지 벌들을 끌어들이니 정이 많다는 것이 오덕이요,
六德 : 새벽 먼동이 트면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니 그 근면이 육덕이다. 그래서인지 유럽에서는 ‘농부의 시계’라는 별명을 얻고 있는 민들레다.
七德 : 씨앗이 제각기 의존 없이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가 자수성가하여 일가를 이루니   그 모험심이 칠 덕이다.
八德 : 그 흰 즙이 흰머리를 검게 하고 종기를 낫게 하며 학질 등 열을 내리게 하니 그 이유가 팔덕이다.
九德 : 여린 잎은 삶아 나물 무쳐 먹고 서양에서도 샐러드로 만들어 먹었으며 그 유즙을 커 피나 와인, 맥주, 차에 타 쓴맛을 더하게 하여 마셨으니 남을 위해 살신성인함이 구덕이다.  

[출처] 아홉 가지 덕을 베푸는 민들레(구덕초 九德草)|작성자 안박사의 산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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