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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Oct 28. 2024

헤어질 결심 전에 내게 전화해

이혼은 쉽다. 그전에 뭐든 다 해보아야 한다.

 '흙이 담긴 채 한구석에 방치해 있던 화분'에 산초나무 묘를 포트를 사서 심었다. 그런데 산초나무는 영 시원찮고 가망이 없어 보이는데 그 옆구리에서 아주 작은 초록잎이 삐죽 싹이 내밀었다. 이 싹이 무엇일까? 풀은 아닌 것 같다. 물도 좀 주면서 기다려 보았다. 산초나무는 결국 힘을 잃고 스러졌는데 드디어 싹은 제 꼴을 갖춘 작은 잎을 펼쳤다. 어라? 이것은 누가 봐도 '알로카시아'다. 놀랐다. 2, 3년 전 알로카시아를 사람 키만큼 키워 보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작은 포트를 구입하여 그저 물이나 잘 주면 되겠지 하였으나 도무지 자라지도 못하고 딱 한 잎씩만 나고 시들어 눕기를 반복하다고 결국 아예 사그라들어 없어졌던, 바로 그 흙만 남은 빈 화분이었다. 도대체 저 흙속에서 3년 이상을 어떤 모양으로 잠자고 있었던 것일까... 모종삽으로 조심스레 떠서 다른 화분으로 옮겨 물을 주고 비료도 좀 주면서 햇빛이 잘 드는 사무실 창 앞에 두고 매일 들여다보는 중이다. 누가 상상을 했겠나. 저렇게 늠름한 잎을 낼 줄. 그 흙이 담긴 빈 화분을 버리지 않고 그저 한쪽에 쌓아 두었던 게으름이 한몫을 했다. 그 어떤 존재들, 또는 그 어떤 사람들, 그들 저마다에게 다른 시간과 기회를 주어야 하는 이유도 있는 것은 아닐까.



 10년 전 75세로 돌아가신 내 친정아버지는 술주정(酒酊)이 심하셨다. 평소엔 '샌님'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점잖고 말이 없는 분이었지만 술이 두 잔 이상 들어가면 금세 취하시고 뭐든 꼬투리를 잡아 폭력적으로 변하여 스스로 지쳐 잠들기 직전까지 가족들을 괴롭혔다. 그 어떤 날도 그랬다. 한겨울이었고 땅이 얼도록 몹시 추웠던 밤이었다. 어린 오 남매는 그저 아버지 눈에 띄지 않게 숨어서 숨죽인 채 훌쩍거렸고 나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고 있던 모양이다. 갑자기 어머니가 방을 뛰쳐나갔고 나는 울면서 어머니를 따라 나갔다. '내가 죽어야 끝난다'라고 하신 말씀에 어린 나는 공포를 느낀 모양이다. 어머니는 부엌 한편에 쌓아 둔 연탄 더미 위에 얹어 놓은 쥐약을 들고 대문 밖으로 달려 나갔고 나는 울며 울며 따라가 어머니 다리를 붙들었다. 대문 밖 돌계단 위에 선 어머니는 그 검고 차가운 공기 위로 하늘에 총총한 별을 올려다보며 눈물을 삼키고 있었고 나는 어머니의 다리를 부여잡고 울고 또 울었다. 어머니는 진심으로 극단적인 생각을 하셨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되었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아버지에 대해 '별로' 생각나지 않으신다고 한다. '1'도 아쉽지 않고 그립지 않다고 하신다. 50년을 넘게 함께 했지만 정이 '1'도 남지 않는다는 것은 가능한 이야기일까? 쥐약을 먹고 죽을 생각을 할 망정 이혼을 입 밖에 낸 적 없는 어머니는 똑똑하고 생활력도 강하신 데다가 직업도 있으셨는데 무엇 때문에 이혼을 고려하지 않으신 걸까?


  얼마 전 후배 S에게서 사진 한 장이 '톡'으로 왔다. 아기를 안고 함께 밝게 웃고 있는 S 부부의 사진이었다. 진심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부부가 예뻤다. 남편이 성당에서 봉사도 맡아서 하게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조만간 한 번 보고 싶다는 내용의 글도 주었다. 

'참 나..... 아주 잘됐구먼.... 허허허.....'

나는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불과 두어 달 전 그 뜨거웠던 폭염 중에 S가 '톡'으로 불쑥 말을 걸어왔던 기억을 떠올린다.  

'언니 시간 되세요? 통화 가능하신 시간에 전화 주시겠어요?'

톡을 읽고도 전화를 망설였다. S는 성당에서 알게 된 후배로 당시엔 갓 세례를 받은 미혼의 대학원생이었다. 대학 졸업 이후로 내내 수학 개인 과외를 하였다는 그녀에게 우주의 중심이 '자기 자신'이었다. 나이에 비해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 그녀가 나는 피곤하였지만 그녀는 사람 좋게 '언니, 언니'하며 나를 따랐다. 그런 그녀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급속도로 진행된 혼인미사에 나는 신부 측 증인을 서게 되었다. 금세 아기가 태어났고 코로나를 겪으며 아기 때문에 바깥출입을 못하게 된 그녀를 못 만나게 되어 소원하다가 내가 다른 성당으로 교적을 옮기면서 만남이 끊겼다. 그렇게 못 만난 지 2년 여가 되어 그녀의 근황을 전혀 모르는 상태인데 불쑥 통화를 하자니 미리부터 나는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꺼낼지 두려웠다. 하지만 어쩌겠나, 나는 그녀의 결혼에 증인으로 사인을 한 사람인데....


"언니, 저는 이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다른 방법이 없어요."

적잖게 당황스러웠다. 아기를 낳고 오손도손 잘 사는 줄 믿고 있었는데 갑자기 부부싸움도 아니고 다짜고짜 이혼이라니.  S의 이야기인즉슨 이렇다. '속았다'는 것이다.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에게 사귀던 여자와 결혼까지 생각하고 결혼 자금 용도로 대출받은 건이 여러 건이었고 심지어 임신 7개월 만에 태어난 아기를 키워냈던 인큐베이터 비용이며 그와 동시에 갑자기 S에게 닥친 위 수술이며 모든 비용을 S가 전액 부담했다고 했다. 빚을 갚느라고 지금까지도 생활비를 20만 원 정도만 내놓고 있고 게다가 믿었던 남편이 착하지도 않다고 했다....

"오늘 저한테 아기 데리고 나가라고 해서 그냥 무작정 나왔어요....."

하소연의 마지막은 그래서 어디 바닷가로 나와서 돌아다니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마치 갑자기 던져진 엉킨 실뭉치를 앞에 사람처럼 당황스럽고 피곤했다. 이혼을 하든 화해를 하든 그걸 나와 의논하는지도 이해할 없었다. 그 이유를 그녀는 내게 말해 주었다. 

'우리 결혼의 언니가 증인이니까'

그녀가 쏟아낸 남편에 대한 온갖 부정과 비리와 무관심과 불성실에 대하여는 듣는 누구나 유죄를 선고할 지경이었다. 결혼 생활에 그렇게도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남자와는 결혼 생활을 이어가기 힘들 것 같이 들렸다. 그러나 나는 물었다. 

"오늘 아기 데리고 나가라고 한 결정적인 발단은 무엇인고?"

대부분의 부부 문제는 일방적인 문제라는 것은 없지 않은가. 나는 알고 있었다. S의 남편은 매일 칼퇴근을 하고 처가에 아기를 데리러 가야 했고 아내가 일이 끝나는 밤 10시까지 집에서 혼자 아기를 돌보아야 한다는 것을. 물론 다시 중고등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한 S의 하루도 말할 수 없이 고단하겠다. 수입의 대부분이 대출금 상환으로 나가는 남편의 급여로는 생활을 할 수 없으니 일을 해야 하는 아기 엄마의 고달픔을 누가 모르랴. S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남편도 지쳤나 보다. 칼퇴근하는 팀원을 직장에서 좋게 볼리 없을 것이고 주말이라도 쉬고 싶을 텐데 아내가 또 아기를 자신에게 맡기고 성당에 가서 두 시간이 넘도록 오지 않으니 화가 날 만도 했겠다. 내가 보기엔 두 사람 모두 참으로 딱하기 그지없다. 내가 물었다. 

"바람을 피우는 건 아니지?"

"그렇진 않죠....."


 직장 후배는 이혼한 지 십 년이 되었다고 했다. 해외에 사무실을 두고 사업을 하는 남편에게 아마도 최소 2개국의 사무실에 '오피스 와이프'가 있었던 모양이다. 결국 남편을 꼭 닮은 아기 사진을 보여주던 그 나라 여직원에게 남편을 내주어야 했다. 자신의 딸이 중학생이었다고 한다. 딸은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라고 대답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빠 없이 자라 어른이 된 딸은 그저 친절히 잘 대해 주는 남자와 무조건 사랑에 빠지곤 한다고 하소연했다....

 

"집을 저당 잡히고 노름을 해서 가산을 탕진한 것도 아니지?"

"탕진할 가산이 없어요"


 운동을 같이 했던 후배는 노름에 빠져 일상이 망가진 남편과 결국 이혼했다. 잘 나가던 일도 문을 닫고 호구지책으로 하던 대리운전도 결국 노름을 하느라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니 쪼들리게 되었고 살던 아파트를 잡혀 대출을 받아 생활하다가 결국은 집이 경매에 넘어갔고 그 와중에 돈을 구해 오라고 아내를 협박하고 폭행까지 하게 되어 이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슬하에 남매를 두었는데 아빠와는 달리 성실하고 착하게 잘 커주어서 감사하다고 한다. 


"화를 내면서 너를 때리기도 하니?"

"그런 사람은 아니에요"


 친구는 결혼 4년 만에 이혼했다. 남편이 술주정이 심했다. 그들이 사는 아파트 라인에서 이 사람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다. 술 취하면 저지르는 모든 일들을 저질렀고 경찰서, 병원 안 가본 곳이 없었다. 회사에서는 모범사원 상을 탈 정도였는데 늘 과음으로 스트레스를 풀곤 했던 모양이었다. 대판 싸우고 나면 친정으로 갔는데 그때마다 친정아버지에게 다시 쫓겨나 되돌아가곤 하기를 반복했다. 어느 날 다시 술을 마시고 난동을 피워 크게 싸우던 끝에 남편에게 뺨을 맞은 친구가 울면서 친정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 나 남편에게 맞았어' 말이 끝나자마자 친정아버지는 차를 가지고 가서 딸을 데려 왔다. '여자에게 손대는 남자와는 절대 살면 안 된다. 오죽 못난 놈이 여자에게 손을 대느냐'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이혼 사유가 무수히 많긴 하지만 부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라고 생각한다.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면 부부생활을 유지하기가 매우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위의 세 가지 질문에 담긴 신뢰는 부부의 결혼이라는 계약 조건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그 세 가지가 아니면 어쨌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이혼만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정어머니는 몇 번이나 이혼 결심도 안 한 것은 아니나 워낙 술만 안 드시면 법 없이도 살 사람이고 절대 아내나 재산엔 손을 대지 않고 다른 여자에겐 눈길도 주지 않는 사람이라서, 자식들을 보고 참았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그때 참기를 잘했다고, 덕분에 자식들이 다 잘 컸다고 내내 말씀하신다. 어머니의 말씀이 두고두고 마음에 담겼다. 이혼처럼 쉬운 일이 어디 있을까? 이혼 신청서를 작성하여 서명을 하고 제출하면 정해진 과정을 거친 후 판사가 '딱' 결정해 준다. 그날 이후로 두 사람은 남남이 되어 다신 안 보고 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둘 사이에 자식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두 사람 만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의 삶도 망칠 수 있다. 남편과 아내 양측의 가정, 그리고 둘 사이에 태어난 죄 없는 아이들. 누군가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니 이혼을 결정하기 전에 신중하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헤어질 결심을 하기 전에 도움이 될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라. 그 누군가가 어리석지 않은 사람이기를 바란다. 


 "S야, 날도 더운데 아기 데리고 쏘다니지 말고 얼른 들어가. 들어갈 때 닭이라도 한 마리 사가지고 들어가서 닭볶음탕이라도 만들어서 둘이서 소주 한 잔 해. 그리고, [오빠, 내가 성당에 가서 12시가 넘도록 안 와서 많이 걱정되고 화도 났지? 다음번엔 한 시간 넘어가게 되면 그냥 중간에라도 얼른 나와서 집에 올게. 미안해. 다신 이런 일로 오빠 힘들게 하지 않도록 노력할게.] 이렇게 한 마디 하거라."

"왜 항상 저만 먼저 말해야 하죠?"

"네가 네 남편보다 훨씬 말도 예쁘게 하고 마음도 따뜻하잖아"

"힝........." 

"남편도 아기도 같이 키워야지. 남자들이 결혼 전에는 바보 온달로 나한테 장가 오는 거야. 결혼하고 아기 낳고 키우면서 아내가 길러줘서 온달이 장군 되는 거란다."

"장군이랑 결혼할 걸 그랬어요. 바보인 줄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네가 공주잖아. 네가 공 주니까 온달 바보가 장군 되는 거지. 남자가 장군이면 넌 평생 그의 졸개로 살아야 한단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S도 그제야 웃었다. 그날 S가 닭볶음탕을 만들어 먹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게 보내온 사진을 보니 어쨌든 이야기는 잘 된 모양이다. 이혼하기 전에 베로니카 언니에게 전화하길 잘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면 나도 행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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