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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Dec 12. 2023

꼰대도 약에 쓰려면 없다

최고 선임이 되고 보니

 드디어 내가 최고 선임이 되었다. 지난여름 마지막 남은 직속 선배가 화려하게 명예퇴직을 하였다. 함께 한 세월이 많다고 담당 팀장이 내게 선배의 연혁 소개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지금껏 무수한 퇴임식을 구경하면서 연혁 소개를 많이 보아 왔지만, '1995년 10월 5일 입사하셨습니다. 1996년 5월 전보되셨습니다.....'와 같은 연도 나열식 연혁 소개가 참 아쉽다고 생각해 왔었다. 나름 작가가 아니던가! 팀장의 허락을 받아 스토리텔링처럼 꾸며 보았던 연혁 소개가 이색적이어서 호응도 좋고 집중도 되고 기억에 오래 남게 되었다. (신앙심이 생길 뻔했다는 후배도 있었다. 웃음!)

'OOO 소장님은, 1995년 10월 5일에 한 회의 석상에서 제가 2개월의 분만 휴가를 마치고 나오니 신규로 입사하셨다면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고 그때도 지금처럼 키가 훤칠하고 말수가 적고 예의 바르며 점잖은 인상을 지닌 분으로 기억합니다......'와 같은 식의 연혁 소개가 참신했다고들 한다. 그렇게 하나 남은 선배를 떠나보내고 나니 더 이상 나보다 오래 이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 특별히 와닿은 느낌보다는, '이젠 내게도 곧 오늘 같은 날이 오겠지, 나는 어떤 모습으로 후배들에게 기억될까'라는 정도의 소감이 남았을 뿐이었다. 


 솔직히 내겐 존경할 만한 선배가 많지는 않았다.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아니고 나와 맞고 안 맞는 것의 문제지만 어쨌든 크고 넓은 그릇이어서 후배들을 품어 줄 여유를 지녔거나, 리더로서 공동선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모습, 또는 긍정적인 자세와 열정 등으로 나를 감동시킨 선배라면 존경의 대상이 되고 지금까지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을 텐데 말이다. 심지어 어떤 선배는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기도 했다. 자신의 정체성조차 희박하여 그저 직업인으로서 매월 나오는 급여와 수당 그리고 퇴직금을 계산하며 마치도 전원생활을 즐기려고 출근하는 사람처럼 농사도 짓고 물고기도 잡는 모습으로 퇴직할 날만 손꼽는, 그러면서 집단의 이익을 위한 이런저런 일에는 참여하지 않고 심지어 협회비나 전국회비도 안 내는 선배. 정년퇴직을 앞두고 꽃다발과  선물을 받고 건배를 하는 자리에서 겨우 한다는 소감이, '너무 열심히 할 필요 없다'라는 말. 그것은 의욕과 열정에 부릉부릉 시동을 걸고 있는 신규 후배들의 기를 꺾고 찬물을 끼얹는 대단히 부끄러운 말이라 느꼈었다. 

 '진짜로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그런 단단한 다짐을 마음에 새기며 지난 몇 개월이 흘렀다. 그런데 마음에  들지 않았던 꼰대가 퇴직을 하면 얼마나 마음이 편하고 태클 걸지 않고 불평불만 쏟아내는 일이 더 이상 없을 테니 모든 일이 '왕선임'인 내 생각대로 순조롭게 풀릴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잠시의 착각은 시나브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의논할 상대가 없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의 고민을 좀 덜어 볼 생각으로 후배 몇에게 점심 식사 제안을 했다. 이러 저러 이유로 거절당했다. '나때'는 말이지만, 선배가 갑자기 점심을 먹자고 하면 분명 긴히 할 말이 있다는 뜻으로 알아채고 선약도 취소하고 열일을 미루고 달려가곤 했었다. 피치 못할 거절 사유를 소소히 나열하며 죄송한 마음을 전하면서 송구스러웠다. 나는 외로웠다. 혼자 결정하자니 독선 같고, 한 사람이라도 반대 의견이 있다면 추진하기 어려운 사안이었다. 그렇다고 단체 대화방에 올리자니 이런저런 말이 날까 걱정이기도 한 예민한 일을 결정하는 일에, 간절하게 생각나는 사람은 은퇴한 선배였다. 

'선배라면 이럴 때 어떻게 결정했을까.....'

은퇴한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볼까,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나는 흔들렸다. 사실 그 선배가  은퇴하기 전 현직에 있을 때에도 뭐든 결정을 하는데 대표를 맡은 나의 생각이 대부분 고려되었었다. 선배는 언제나 자신의 '경험 백과사전'을 내게 펼쳐 보이며 이런저런 조언을 하곤 했었지만 어쨌든 결정은 대표가 하는 것이니 선배의 잔소리 같은 조언을 한 귀로 듣고 흘렸었다. 그는 항상 '옛날에 그런 일 있을 때 우리가 이러저러하게 처리했던 거 생각 안 나?'로 시작되는 약간은 빛바래고 묵은 냄새로 솔솔 나는 그런 조언을 하면서, 결론은 자신이 했던 결정적인 역할을 선전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맺곤 했다. 나는 그것이 답답하고 불편했다. 요즘 말로 '어쩔 티브이'를 외치고 싶던 적도 있었다. 선배는 은퇴 후에도 여려 번 전화를 하고 한 번 정도는 찾아오기도 했었다. 반갑게 맞아 주고 근황을 듣고 시간이 남아돌아 만들어 왔다는 '메리골드 차'에 한껏 감동하며 친절하고 다정한 태도로 예우해 주었다. 마음속으로 '이젠 그만 신경 끄고 떠나시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도 그 자리에 곧 설 예정이니 차마 입 밖으로 내기는 야멸찬 듯하여 참아 냈다. 


 막상 그가 아무 때나 전화하고 아무 때나 만나 밥 먹으면서 고민을 나누고 서로 공통의 목적을 위해 방법을 찾아내던 그 시간들은 그냥 흘러간 강물이 아니었다. 선배는 그 어떤 것도 마다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자 말할 수 없는 외로움과 허전함이 몰려왔다.  나의 '경험 백과사전'의 페이지 수가 선배보다 훨씬 부족하다는 깨달음이 나를 더욱 의기 소침하게 만들었다. 

'꼰대도 약에 쓰려니 없네.....' 

정말로 쓸래야 쓸 약이 없다는 이 아쉬움을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하기 어렵다는 것이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후배들이야 의논을 해도, '저는 무조건 선배님 의견을 따르겠습니다!'라고 하며 자신의 생각을 내놓지 않으니 있어도 소용은 없지만 그나마 자신의 삶에 집중할 나이라 관심이 적다. 


 나 역시 33년을 몸 담았던 이 조직을 떠날 날이 임박했다. 나는 어떤 선배인가? 나도 꼰대인가? 꼰대는 그렇게도  민폐 덩어리이기만 한 것일까? 꼰대가 가진 특유의 고집과 독선은 빼고 그들의 노하우, 연륜, 지혜는 후배들에게 명약이 될 수 있을 텐데. 무조건 꼰대라고 네임택이 붙으며 아예 상대하려 들지 않고 그 어떤 말에도 잔소리로 치부하며 들으려 하지 않으면 긴 세월 쌓은 유산은 그냥 흩어지고 말 수 있다. 사람이 꼰대라고 그가 가진 중요한 비법 백과사전까지 폑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오늘도 나는 의논 상대가 없어서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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