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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Feb 07. 2024

먹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할 때

경로당에서 밥상 받아먹기

 매 월 1회 경로당을 하루씩 돌며 건강부스를 운영하고 있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먼 마을은 버스를 타기도 애매하고 걷기는 더더욱 어려워 읍내 병원을 가려면 최소 반나절 최대는 하루를 소진하게 되니 어르신들은 웬만해선 병원을 안 가고 해결하고  싶어 하시지만 그렇다고 진료소도 이용하기에는 선뜻 엄두가 나질 않을 정도의 거리다. 거동이 불편하여 진료소까지 걸어오려면 '도시락 싸가지고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한다'라고 농담을 하며 웃지만 웃을 일만은 아니다. 세상이 그렇게나 대단하게 편리하게 변화하고 있다지만 이곳은 여전히 십 년, 이십 년 전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나 역시 1인 사업소이다 보니 자주 나가기는 어려워서 월 1회 방문하면서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 어쨌든 이 마을에서 의료기관은 유일하게 나뿐이다.


 이미 약속한 대로 오늘은 경로당 방문날이다. 출근 직후부터 쉬지 않고 감기 환자가 줄줄이 이어 들어오고 정신없이 환자를 진료하는 와중에 전화가 울린다.

'소장님, 오늘 여기 나오시잖아? 몇 시에 나오시나?'

'11시에 도착하게 출발할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점심 잡숫고 가셔. 우덜 지금 밥 하는 거야'

'에.... 아이고 힘드신데 뭘 저까지 챙기셔. 저 괜찮아요'

'아무케 나물 그런 거 하고 한 끼 같이 잡솨'  


'와~ 그릇 좀 봐!'

내 입이 저절로 그렇게 말해 버렸다. 내 앞으로 차려지는 반찬들을 보며 놀라서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다. 요즘 레트로 감성을 표방하며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바로 그 그릇들이었다. 상을 차리는 어머니들은 죄다 70세, 80세이시고 허리가 구부러진 분들도 있었다. 어머니들은 내 탄성에 활짝 웃으며 의기양양 자랑삼아 이렇게 말하셨다.

'그거 죄다 10년도 넘은 거야!'

아...... 깨지지 않는 튼튼한 플라스틱으로 나온 일명 멜라민 그릇들은 포름알데히드를 반응시켜 만드는 멜라민 수지 즉 열경화성 수지로 열과 산, 그리고 용제에 대하여 강하고 전기적 성질도 뛰어나 주방용 식기나 잡화 또는 전기 기기 등의 성형재료로 많이 쓰인다. 어쨌든 환경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물질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이 플라스틱은 장기간 노출되면 신부전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농한기 거의 매일을 경로당에 모여 밥을 차려 먹었던 그릇이다.

'10년 넘었으면 바꾸실 때 되셨네요'

환경 호르몬이니, 신부전이니, 전립선이다 뭐다 할 수 있는 말이 없으니 그냥 웃으며 한 마디 했다.

'그렇잖아도 삶을 수가 없어서 '스뎅 그릇'으로 바꾸자고 하고 있어요'

나는 다시 내 앞으로 전달된 밥을 보고 난감했다. 조선 시대 장정이 먹을 만큼의 고봉밥이다. 국그릇에 담겨 날아온 콩비지 찌개는 돼지고기를 싫어하시는 노인 회장님 취향을 고려하여 새우젓을 넣으셨다고 한다. 곪 삭은 그 특유의 꼬릿 한 냄새가 피어오르는 비지찌개도 내겐 도전 대상이다.

'잘 먹겠습니다!'

일단은 호기롭고 경쾌하게 인사를 하고 나물에 먼저 도전했다. 머리가 굵은 콩나물 무침, 고르게 채친 무나물, 묵은 취나물 볶음, 도라지오이초무침, 익지 않은 상태로 묵은 김장김치, 도토리묵김치 무침.... 역시 음식의 내공이 느껴지는 그 반찬의 맛은 마치 꾸미지 않은 시골 어머니의 소박한 매력처럼 입에 달았다. 다행히 반찬이 입에 맞아 단단한 각오로 밥을 공략했다. 밥숟갈로 퍼내도 퍼내도 없어지지 않는 밥을 야속하게 바라보며 최선을 다한다. 맛 표현도 잊으면 안 된다. '콩나물이 대가리가 커서 고소하다, 직접 기르셨느냐, 무 채를 어떻게 요렇게 고르게 잘 치셨을까, 취나물 볶음을 부들부들하다, 도라지가 하나도 쓴 맛이 없고 달고 아작아작하다, 묵은 누가 쑤셨느냐, 탱글 하게 잘 무치셨다..... 먹방 하는 예능처럼 모두가 나를 보며 평가를 기다리시니 하나하나 언급을 해드려야 한다. 묵을 쑤어 오신 분, 콩나물을 주전자에 기르신 분, 김치를 가져오신 분, 작년 가을에 캔 도라지를 간 밤에 잠은 안 오고 '텔레비전'보면서 까셨다는 분, 작년 봄에 뜯어서 말려 놓았던 취나물을 불려서 볶아 오신 분들이 모두 행복해하시면 자꾸만 내 앞으로 반찬을 밀어 놓으신다. 노인 회장님과 마주 앉아 겸상을 하면서 매운 것을 못 드신다니는 회장님 앞에 구운 김을 밀어 드리고 회장님은 다시 내 앞으로 김을 밀어 놓으며 그렇게 점심 식사가 끝난다. 최선을 다해서 먹었지만 밥 한 그릇을 다 먹지 못하여 죄송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해야 했다. '밥이 질었나.. 젊은 사람들은 진 밥을 싫어하지....'하시는 밥 담당 어머니의 자책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경로당 평균 연령이 80대가 되었다. 그 누구도 남을 위해 걷어 부치고 밥과 반찬을 도맡아서 하실 분이 없다. 홀몸 노인의 삶이란 나 자신을 위해서 음식을 하기도 귀찮은 법이다. 어쩌다 마을 잔치를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읍내 큰 식당에 다 같이 차를 타고 가서 먹고 오거나 출장 뷔페를 부르곤 한다. 나 역시 시골 마을 보건진료소장 일을 하면서 십여 년 전엔 농한기 겨울 내내 경로당에서 매일의 한 끼를 어르신들과 함께 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일이 흔치 않다. 밥을 짓고 반찬을 준비할 사람이 없다. 코로나로 셧다운이 되었던 지난 2,3년 간의 공백 덕분에 경로당 식사는 이제 옛날 말처럼 되었다. 그나마 올해 겨우 서서히 경로당 한 끼가 시작되는 추세이다. 이분들이 세상을 떠나면 이런 문화조차 역사가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해서 먹는다. 맛 표현도 연습하고 먹음직스럽게 먹으려고 아침부터 공복 상태로 경로당에 나간다. 남을 먹이면서 행복해하는 어머니들에게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서 멜라민이건 뭐건 가리지 않는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내 관할 어르신들과 의리가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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