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도망은 왜 가요!

시골 복숭아는 뜨거워야 익는다.

by 베로니카의 참견

계속 이어지는 폭염이다. 십 년 전에 갔었던 적도 말레이시아의 하늘 같은 나날이다. 시골은 그나마 도시보다는 덜 덥다고 해도, 그래도 시골로 연일 30도를 웃돈다. 묵묵히 인내해야 하는 매일이다. 문제는 시골의 어르신들이다. 시골 어르신들의 아침은 새벽 4시 또는 5시에 시작된다. 초저녁에 한숨 자고 나면 깨어 잠 못 드는 노년, 날이 더우니 차라리 일어나서 움직이는 것이 낫다. 새벽에 밭에 나가 김을 매기 시작하면 선선하던 기온이 완만하게 오르기 시작해 30도에 도달할 때까지 잘 모른다. 일에 몰두하기도 하고 서서히 체온이 오르니 참을 만하니까 저기까지 마저 김을 매고 들어가 점심 먹으면 되겠다고 생각한다. 일사병은 뜨거운 햇살에 겉이 뜨겁게 마르지만 열사병은 맥반석 계란 익듯 몸 안부터 익어버리니 현기증에 어지럽기 전에 심장이 멎어버리곤 한다. 그러면 '아무개 어머이는 밭고랑에 쓰러져 있다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곤 하는 것이다.


작년 이맘때 밭에서 돌아가신 그 어르신은 날이 더우니 내일 새벽에 하라는 영감님의 잔소리를 무시하고 일을 마치려고 나갔다가 심장마비 상태로 발견되어 돌아가셨다. 심장이 워낙 안 좋으셨지만 그러려니 하다가 변을 당했다. 평생 일만 하며 몸이 모두 퇴행된 채 좋은 음식, 좋은 옷, 관광 한 번 못 가보고 죽었다고 영감님이 한탄하셨다. 올해는 그런 분이 나오면 안 된다는 마음이 조급하다. 폭염 주의보가 내리기 시작한 날부터 매일 폭염 예찰과 온열질환 예방을 위한 방문, 전화, 내소자 교육, 문자 안부를 실적으로 보고하는 중이다. 나도 매일 독거노인들과 거동불편자들, 고령자들에게 매일 전화를 한다.


'너무 더워서 안부 전화 한 번 드려 봅니다~'하면 자식들보다 낫다고 반가워하신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전화를 받지 않으시는 분이 계셔서 '혹시라도'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직접 차를 몰고 그 마을로 갔다. 시간은 11시였지만 기온은 벌써 31도에 도달하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서 벌써 한 분을 체포한다. 땀이 범벅이 된 채 밭에 엎드려 김을 매고 있다가 진료소장 고함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든다. 고구만 순을 뜯어먹다가 들킨 고라니처럼 보여 웃음이 터진다.

"어머니! 그만하고 나오셔! 얼른 나오셔!"

소리를 지르니 천천히 밭 가장자리로 나오신다.

"이리 오셔, 차로 집에 태워다 드릴게"

"그렇잖아도 그만하고 들어가려고 했어"

차문을 열어 타게 하니 차 에어컨 덕분에 시원하다고, 살 것 같다고 좋아하신다. 온갖 잔소리를 하며 집 앞에 태워다 드린다. 들어가서 차 한 잔 하자고 하셨지만 '얼른 샤워하시고 점심 맛나게 잡수라'하고 떠나온다. 하늘은 얄밉도록 새파랗고 구름은 뭉게뭉게 아주 천천히 떠간다.

전화를 받지 않으시던 어르신 집에 가보았다. 애타게 불러 보았지만 집에 안 계신다. 출타를 하셨나 싶어서 다시 차를 돌려 버스정류장 앞으로 가본다. 대부분 어르신들은 일명 '유마차'라고 하시는 실버카를 밀고 다니신다. 그리고 6년 차 진료소장인 나는 실버카만 보아도 누구 것인지 대충 알 정도는 된다. 땡볕에 달구어진 버스 정류장 옆엔 실버카가 한 대도 없다. 그렇다면 읍에 나가신 것도 아니다. 다시 어르신 집으로 가려다가 집을 지나 고개 넘어 있는 어르신의 밭 쪽으로 천천히 차를 몰았다. 그 짧은 시간에 이런저런 무서운 생각이 든다. 5시부터 나와 계셨다면 6시간이 지났다. 고개를 넘자마자 밭 가에 서 계시는 어르신이 눈이 들어온다. 반가운 마음에 차문을 열고 '어머니!'하고 불렀다. 고개를 돌리는 어머니는 모자를 앞으로 하나, 뒤로 하나, 두 개를 겹쳐서 쓴 채 진료소장을 보더니 배시시 웃으며 걸음을 서둘러 빠르게 실버카를 몰고 집 쪽으로 갔다. 이제까지 그 어르신이 그렇게 빨리 걸으실 수 있는 분인 줄 몰랐었다. 차를 돌려 어르신 집으로 쫓아갔다. 마당에 실버카를 놓고 마루로 올라가 모자를 벗는 어르신에게 따졌다.

"아니, 전화는 안 받으면서 도망은 왜 가요!"

어르신이 깔깔대며 손뼉을 치고 웃는다.

"도망은 왜 가신 거예요?"

"소장님한테 혼날까 봐!"

우리는 마주 보며 허리가 끊어져라 웃고 또 웃었다.


"맨날 더위 조심하라고 전화하시는데, 풀이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 오늘은 마저 하고 들어오려고 생각하고 정신없이 김매느라고 더운 줄도 몰랐어."

시원한 물을 한 잔 마시면서 어머니가 웃고 웃으신다. 나시 잔소리를 잔뜩 늘어놓는 나에게 냉장고에서 천도복숭아 한 봉지를 꺼내 주신다.

"밭 가에 복숭아나무가 두 그루 있어. 맛있게 잘 익은 건 새가 다 쪼아 먹어서, 에라, 새한테 뺏기기 전에 죄 땄더니 어떤 건 익었고 어떤 건 덜 익었어. 그냥 시원한 맛으로 먹어요."

단단한 복숭아가 또랑또랑 봉지 안에서 내게 인사한다. 싱그러운 천도복숭아를 내미는 어머니의 손은 두툼하고 크고 거칠다. 하지만 순수하고 착한 마음으로 하늘만 믿고 홀로 살아가는, 꽃모자 두 개를 앞뒤로 쓰는 것으로 더위에 소극적으로 대항하는 이 어르신이 앞으로 몇 년 더 농사를 지으실 수 있을지 대충 시간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서글프다. 부디 올해는 단 한 명도 열사와 일사에 쓰러져 작별 인사 없이 가시는 분이 없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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