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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유 Jan 17. 2021

소주에 대한 변명

숙취에 시달리며 김수영의 글을 읽고.

 나는 확실히 미치지 않은 미친 사람일세 그려.

 아름다움으로 병든 미친 사람일세.

 - 김수영 낙타과음 中


 김수영은 과음 후 공상에 빠지는 것을 좋아했다. 공상에 빠지는 일에 대해 그는 '내가 나의 작은 머리를 작용시켜서 공상을 하는 것이 아니고 전신이 그대로 공상이 되어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거진 유체이탈의 경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공상 속에서 그는 글을 썼다. 술이 점차 깨어가는 과정에서 시를 쓰고 산문을 썼다. 이 과정을 위해 그는 술을 마셨다. 

  나도 어제 새벽 술을 마셨다. 병으로 사가면 소리가 나니 소위 데꾸리라 칭하는 페트병 소주를 사서 몰래 마셨다. 그래서 지금도 속이 좋지 않다. 일어나서는 죽을 것 같아 누워있었고 정신은 이제야 조금 깨어나는 것 같다. 


 어제 굳이 새벽에 편의점까지 가면서 술을 사온 이유는 무엇이고 술을 마시겠다는 강한 일념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다음날 고생할 것을 알면서도 미친듯 달려드는 모습이 거진 알콜중독자와 진배없다. 

 고생하면서, 그러면서도 며칠 후에는 다시 소주를 마시고 싶을 것이다. 술은 질리지 않는다. 마시면 평화롭고 웃음이 난다. 술 마시고 울어본 바 없다. 그래서 우울한 날이면 소주를 찾는다. 웃으면서, 밤 새워 나를 공격하는 불안과 두려움을 끄집어내고 깊은 잠에 빠지게 한다. 

 그렇게 푹 자고 일어나서 글을 쓰면 문체가 달라져 있다. 김수영이 술을 마시는 이유에 대해서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하지만 약간의 감정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조금 더 공격적이고 나 자신이 부끄러워하는 일들을 글에 강하게 드러낼 수 있게 된다.

 어지러운 상태가 나를 비판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반쯤 정신을 놓고 글을 쓰게 만드는 것. 나를 제 3자의 입장에서 반쯤 걸쳐놓고 글을 쓸 수 있게 만드는 일종의 도핑 같은 것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술이 나쁜 건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데. 끊어보는 건 어떨까. 하지만 소주는 다시금 말하지만 질리지 않는다. 달달하게 또 속아넘어가고, 다음날 몽롱한 상태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문장을 창출하는 원동력으로서 작용한다. 

 이에 나는 소주를 마시는 일에 대하여 변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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