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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몽상 Feb 09. 2022

예술

그대로 바라보는 것

 홍상수 작품은 언제나 어렵다.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잘 파악되지 않는다. 반복은 계속된다. 반복에서 차이가 일어난다. 그 차이에서 메세지를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실패한다. 그의 영화는 딱히 사회를 다루지 않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있다. 그가 아닌 이상 우리는 그의 영화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 문득 들은 생각. 알 수 없음을 인지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것. 다만 느끼는 것. 느낀다는 말의 무성의함에 대하여 나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느낀다'는 단어가 예술을 받아들이는 것에 있어 가장 근접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예술품을 보았을 때, 그 작품이 관람객 모두에게 똑같은 메세지를 전한다면 그것은 실패한 예술이다. 플랜카드에 '이것은 예술품입니다.'라 적어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국립박물관 2층 사유의 방.

 예술은 해체하지 않아도 좋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내면과 대화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국보 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바라보자. 그가 웃고 있는가? 그는 어디를 보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며 작품을 만든 의도를 찾아가 해체할 이유는 없다. 그는 웃고 있으면서도 무표정하고, 앞을 보는 것 같으면서도 보지 않을 수도 있다. 답이 있는가? 없다. 그러므로 작품을 바라본 후 내면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대화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그것을 봤을 때 느껴지는 느낌. 그것이 중요하다. 예술은 메세지를 주지 않는다. 예술은 그 자체이다.

현재 보살상은 부식으로 인하여 박물관 안에 있다. 위 사진은 복제품

 나는 예술과 인간의 관계를 탑과 보살의 관계로 설명한다. 강원도지역 고려시대 사찰의 특징으로는 탑 앞에 석조보살좌상이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은 월정사 대웅전 앞 팔각구층석탑과 석조보살좌상이다. 탑과 보살을 세트로 만드는 이유는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진 바 없다. 추측컨대, 나는 보살이 탑을 보며 깨달음을 얻어가는 모습을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보살은 사유했을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사유하고 있을 것이다. 보살은 그렇게 천년의 세월을 탑 앞에서 보내왔다. 탑은 그에게 무엇을 건네지 않았다. 다만 서 있을 뿐이다. 보살은 그러나 탑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고 있으리라. 그러므로 보살은 탑 앞을 떠나지 않았다. 무의미가 의미로 치환되는 경이. 나는 이를 사랑이라고 하고싶다. 

 예술은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인간은 예술을 사랑한다. 예술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예술은 인간을 초월한다. 초월의 원인은 그러나 다시 인간의 마음 속으로 돌아와야 찾을 수 있다. 어딘가 끊긴 듯, 그러나 다시 돌아오는 것. 무의미에서 의미를 구제해 의미를 만드는 것. 그 모호함의 두려움과 신비로움 속에서 나는 여전히 예술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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