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너무나 좋았기에, 커피 한잔과 함께 도서관 인근 골목길을 한 바퀴 돌았던 참이었다. 다시 책을 읽으러 돌아가기 전 나는 담배를 베어 물고 흡연실로 들어갔다. 그곳엔 정장을 입은 돌고래가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비린내를 아주 심하게 풍기면서. 당황스러워 입에 물었던 담배도 떨어뜨렸다. 그래도 담뱃값이 아깝다는 집념 하에 다시 그것을 들고 후후 불어 손에 쥐었다. “아, 당황하셨군요. 걱정 마십시오. 해치지 않습니다.” 나는 순간 사랑니가 뻗어 난 것 마냥 입이 닫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지만도, 여전히 돌고래는 흉포한 수백 개의 이를 드러내며 에쎄를 뻑뻑 피워대고 있었다. 허허.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나는 기가 차서 라이터를 찾았다. 하필 또 라이터가 없었다. 분명 40분 전에 피울 때 까지는 나의 와이셔츠 앞주머니에 있었다. 이건 꿈일 거라는 확신이 점차 들어서, 혀를 깨물어 보려고 했다. “라이터가 없으시군요?” 돌고래는 살가운 말투로 말하며, 강시마냥 콩콩 뛰어와 퇴화된 손으로 어정쩡하게 불을 붙여줬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과잉친절이지만, 감사하다고 고개를 살짝 꾸벅했다. 담배의 맛은 현실의 맛과 똑같았다. 매캐한 맛과 구수한 향이 입 안에 가득히 퍼졌다. “여긴 바다가 아닌데요?” 나는 믿을 수 없듯이 그에게 물었다. “아, 끼르륵, 저는 미국에서 왔습니다.” 동문서답이다, 아 그렇군요. 그렇게 말하고 당장이라도 택시를 잡아 바다로 돌아가야 할 돌고래가 미국에서 왔다니.북태평양에서 헤엄치는 신선한 물고기 때를 방금까지 삼키다가 왔다면 모를까, 굉장히 자연스럽게 미국에서 왔다니. 그런데 말투를 들어보면 정말 미국에서 온 것 같기도 했다. 어설프지만 집에서 부모가 한국어를 사용해 양국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런 재미동포의 말투와 똑같았다. 소위 말하는 ‘미쿡’느낌이었다. “미국요?” “예, 꺄르륵. 캘리포니아에서요. 오렌지와 아널드 슈왈제네거로 유명하죠! 아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반은, 꺄르륵. 한국 고래입니다. 제 어머니가 제주 남방 큰 돌고래거든요. 어머니가 자주 하셔서 아주 익숙합니다.” 역시나 이상했다. 나는 얼른 담배를 태우고 이곳을 벗어나 경찰에게 신고할 생각만 하고 있었다. 정말로 그의 얼굴은 공포스러웠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말에서 섞여 나오는 ‘꺄르륵’ 소리는 정말로 소름 끼쳤다. “아, 끼르르륵. 너무 놀라지는 마세요.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당신을 해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국에는 제 과의 친구가 별로 없지만, 쉽게 말하자면 끼르르륵르륵끼륵. 돌고래 친구들 말이죠. 어쨌건, 미국에서는 지금 넘쳐나죠. 트럼프 대통령이 돌고래의 왕과 양해각서를 체결했어요. 멕시코 이민자를 받을 바엔 차라리 똑똑한 돌고래들을 산업 전선에 뛰어들게 하겠다는 것이죠, 미국인들은. 끼르르륵꺄륵. 이제는 아주 익숙하답니다.” 돌고래는 담배를 비벼 끄며 이상한 울음소리를 조용히 계속 내뱉었다. 나는 거의 얼이 나가 석고상마냥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아니, 미국인들만 알고 우리가 잘 모르는 것도 있는가? 다민족이 섞인 국가 아닌가? 그리고 또 돌고래의 왕은 누구고, 트럼프는 얼마나 미친놈인 것인가? 꿈일 것이다. 하고 계속 생각했지만, 도서관에 오기 4시간 전 충분이 잠을 잤고, 담배의 탄내, 시작되는 봄의 향기, 휴대전화의 배경, 모든 것이 현실 그대로였다. “이거 꿈 아니죠?” “네. 당연하. 끼르륵. 죠 하하.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의 얘기를 좀 들어주시겠습니까?” 돌고래의 입에서는 주문진 어시장의 냄새가 물씬 풍겨와 썩 기분을 나쁘게 만들었다. 어쨌건, 나는 굳이 오늘까지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아직 도서관을 닫으려면 시간이 오래 남았기에. 그에게 말을 해보라고 전했다. “감사합니다. 시간을 내 꺄르르륵 주셔서. 우리 돌고래들은 처음 통조림 가공 공장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화폐가 필요 없기에, 통조림 20개를 만들면, 싱싱한 물고기 한 개를 받아먹지요. 꺄르륵. 하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10개 통조림 당 한 개의 물고기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저희를 무시하고, 필요시에는 탄압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인간이 물고기를 너무나 많이 잡아서 사냥이 힘든 돌고래들이, 단지 생존의 문제로서, 생존권이 달린 노동을 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돈도 받지 않고 말입니다. 퇴근 후 바다에 있는 우리의 집으로 쉽게 가는 워터슬라이드 끼르르륵 시공 비를 제외해도, 인간들은 너무나 가혹하게 저희를 대하는 겁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묘하게 설득이 되는 말이었다. 나는 원래 권리를 -어떤 것이든 간에, 혹여 그것이 돌고래라 할지라도.- 중요시하는 사람이기에, 더욱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이건 인간들이 나빴군요.” “이해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끼르륵. 다시 각설하면, 저희는 뭉치기로 했습니다. 더욱 굶주리면서도, 물고기를 한 두 개씩 빼돌리고, 더 노력하는 친구는 퇴근 후 돈을 위하여 화류계로 빠졌습니다.” “화류계요?” “돌고래는 인간보다 성기가 크기에, 끼르르륵. 자연스럽게 수컷들은 사모님들의 자연산 딜도가 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딜도이기에 단골들도 많이 생겼지요. 다행히, 그들의 노력 덕에 우리는 많은 돈을 얻을 수 있었고, 그들을 기리며 암컷들은 몰래 빼내는 물고기를 마트에 납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 후, 우리는 강사를 모셔올 수 있었고, 노동조합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기념비적인 끼르르륵 사건이었습니다. 마약과 같은 소량의 복어 독에 취하여 빠지는 황홀경만큼이나 희열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주경야독을 하며, 총 파업을 계획했습니다. 제 1대 보이콧, 작전명 ‘돌핀 댄스’였습니다. 돌고래가 성노동을 하고 노조를 만든다는 사실에 나는 이제 ‘나도 모르겠다.’ 식이 되어 버렸다. 그냥 끝까지 들어봐야겠다 싶어 졌다. 학생 시절에 운동권에 가담해 일했던 일이 잦았기에, 동질감도 은근히 생겼다. “우리는 파업 날 아침 컨베이어 벨트에서 나오는 물고기를 모조리 집어 먹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호를 외쳤죠. ‘아임 스틸 헝그리’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아시겠지만 끼르륵. 돌고래가 울면 굉장히 시끄럽습니다. 공장의 직원들은 처음 보는 ‘돌고래 보이콧’에 당황해 안절부절못하지 못했습니다. 끼르르꺄륵. 그러나 갑자기 경찰들이 들이닥쳤고, 저희 중 저를 포함한 몇 명은 불법 파업 선동 명목으로 잡혀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현대 사회에서 이래도 되냐며, 돌고래의 권리를 외쳤으나, 경찰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며 우리를 모조리 때렸습니다. 물론, 우리에게 노조 강의를 해준 변호사님의 도움으로 금방 풀려나게 돼 감옥은 가지 않았지만, 공장엔 리더를 잃어 괴로이 일을 하는 한 무리의 돌고래만이 남아있었습니다. 아아. 끼르륵.” “그렇게 실패했나요?” “끼르륵. 그렇죠. 결국 공장주는 일을 할 다른 돌고래는 많다며, 너희는 서커스장에 취직이나 하라고 모욕적 언사를 일삼았으며, 반이나 되는 돌고래가 해고당했습니다. 길에 돌아다니면, 사람들은 돌고래 따위가 만물의 영장에 비빈다며 욕을 했고, 그 처우는 1950년대 흑인보다도 못했습니다. 바다에서 조차, 순응적 돌고래들이 우리를 따돌렸습니다. 끼르륵륵륵. 인간에게 배은망덕하다는 논리로 말이죠. 그들은 자기들의 자존심도 없고, 자신의 삶도 없습니다. 못 배워먹은 일종의 돌머리 고래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여론이 180도 뒤집혔습니다. 아사 직전의 어린 돌고래를 안고 우는 어미 돌고래가 사진에 찍혀 뉴스 보도를 탄 것입니다. 이 사진은 올해의 퓰리쳐상을 수상했고, 우리는 다시 힘을 얻게 됐습니다. 해고자들은 대부분이 좋은 대우에서 복직했고, 다른 지역의 돌고래들에게도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꺄룩. 이에 저를 포함한 다른 보이콧의 리더들은 여러 미국의 주를 돌면서 노조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온 이유도 노조 창립인가요? 여기는 돌고래가 길에 없는데요?” “사실, 믿음이 가는 분이라 당신에게만 말씀드리자면, 곧 제주 큰 남방돌고래들과 강릉시가 양해각서를 체결할 것으로 보입니다. 주문진 수산시장의 상인의 노인인구의 증가하여, 시장의 노령화가 진행되고, 이는 존폐위기를 맞았습니다. 끼르르륵륵. 이에 우리 노조의 암컷들이 물고기를 판매한 것을 강릉시가 벤치마킹하여, 돌고래들이 곧 시장에서 물고기를 판매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소식을 듣고 끼르르륵륵. 그들의 상인회 설립을 위한 컨설팅 고문으로서 이곳에 온 것입니다. 한국어도 제가 잘하니까요. 도서관에 찾은 것은 향토적 사전조사를 위함이었습니다.” “남방 돌고래 측이 당신들에게 요청을 한 것인가요?” “어머니를 통해 들었을 뿐입니다. 깨루루룩 요청은 없었지만, 돌고래의 권익을 위하여 한숨에 쉬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이제 사전조사를 끝냈으니, 남방 돌고래 무리를 만나 그들의 권리를 알려줄 것입니다. 강성한 상인회가 되어, 그 누구도 권익을 침범하지 못하게 말입니다. 끼륵끼륵 그리고 이 일을 시작으로, 한국에 사는 돌고래들의 권익을 위한 리더가 될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선생님께서도 멋지다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나는 그의 숨구멍에 다 타버린 담배꽁초를 던졌다. 그러자 돌고래는 미친 듯이 초음파 같은 신음을 쏟다가 이내 괴로운 듯이 바닥에 쓰러졌다. “왜... 꺅꺅꺅... 나한테... 꺅꺅꺅... 당신은... 꺅... 돌고래의 권익을... 꺅... 당신은... 꺄르르륵... 살경(鯨) 자야...” 곧 돌고래는 숨을 쉬지 못하고 눈을 희번덕 뜨고 요단강을 건넜다. 귀족노조라면 나는 정말 질색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