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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간여행가K Jan 21. 2021

온전한 하루의 하늘을 느끼다

03.  여행에서의 하늘 in 베를린

그 여행의 어느 순간부터 '여행은 시간의 흐름을 보기 위한 시간'이란 생각을 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초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동안 했던 여행 중 최장기간이었고 그 덕분에 일정을 여유롭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여유롭게 앉아 하늘을 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을 것이다. 그 여유가 만족스러워, 해 질 무렵 야외에 앉아 하늘빛의 변화를 보는 것이 좋았다. 이전의 바쁜 여행과 일상에선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꼈고, '시간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여행이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특정 시간대 중에서는 노을을 보는 것이 빛의 변화가 다채로워 가장 좋았지만, 온전한 하루 동안 하늘빛의 변화를 느낀 건 베를린에서의 하루이다.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은 독일이었고, 프라하로 넘어가기 전 독일에서 지낸 마지막 도시는 베를린이었다. 베를린에서는 꼭 가고 싶었던 몇 곳이 있었다. 공간 디자이너의 시선에서 궁금한 건축 공간들이었다. 쇼핑몰에서 동물원이 보인다는 트렌디한 비키니 베를린, 호텔 한가운데 아쿠아리움이 있다는 아쿠아돔&씨라이프 베를린,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리노베이션 했고 투명한 돔 위에서 국가 의회 의사당 내부를 볼 수 있는 리히탁돔,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유대인 박물관, 피터 아이젠만의 홀로코스트 추모공원.


그중에서도 유대인 박물관과 홀로코스트 추모공원은 독일에서 공간으로 희생자를 어떻게 추모하고 있는지 보고 싶어 꼭 가고 싶었던 곳이었고, '다크 투어'라 조금은 경건하고 조금은 비장한 마음으로 연계해서 방문하려 했다.




전날 비가 와서 '다크 투어'를 하는 아침에는 하늘이 흐렸었다. 유대인 박물관의 칼로 벤 듯한 창들과 색이 자연스럽게 달라진 듯한 외피가 구름이 잔뜩 낀 흐린 하늘과 어우러져 희생자들의 소리 없는 울부짖음이 들려오는 듯했다.


 

유대인 박물관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무거운 분위기라고 느껴졌는데, 박물관에서 나올 때쯤부터 하늘이 점점 맑아지더니, 브란덴부르크 문 근처에 가니까 '다크 투어'라는 주제와 감정에 맞지 않는 듯한 쾌청한 빛이 되었다.




홀로코스트 추모공원에 가기 전에 아침에 예약해둔 리히탁돔을 보려 했으나, 알고 보니 예약된 것이 아니어서 남은 자리인 밤 9시 반 입장을 현장 예약하고 홀로코스트 추모공원에 먼저 갔었다. 사전 조사를 하면서 추모공원이 어떤 모습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주변을 보며 그곳까지 걸어갔을 때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가는 길에 보였던 티어가르텐과 가로수로 초록의 기운을 듬뿍 받고, 추모공원도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어 생각했던 것보다 무거운 분위기가 아니었다.



바닥과 기둥의 높낮이가 달라지고, 사방으로 보이는 풍경이 다른 공간에 맑은 하늘이 더해졌다. 일상적인 시간을 보내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고,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는 사람들 등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조금은 여유로워 보인 덕분일까. 유대인 박물관을 보며 무거워졌던 마음이 조금은 말랑해진 것 같기도 했다. 조금은 말랑해진 마음으로 추모공원에 있던 사람들처럼 골목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시야를 경험해보기도 하고, 돌기둥에 걸터앉아 음악을 듣기도 했다.



그러다가 입장 시간의 제약이 있는 지하 공간에서 추모 전시를 보고 나와, 또 돌기둥 위에 앉아서 아까와 달라진 하늘의 모습을 보았다. 리히탁돔 입장 시간까지는 아직 멀었었기 때문에 근처 식당 야외 자리에서 저녁을 먹고는 다시 추모공원에 들려 어두워지는 시간의 모습도 바라보았다.



온전한 하루의 하늘을 느낀 그날의 여유가 정말 좋았다. 맑아진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의 모습이 도심 속 공간과 어우러진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고, 도심 속 공간과 공원의 조화도 볼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예약 문제 덕에 공원에서의 시간을 충분히 즐기면서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추모공간이 강한 통곡만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 이러한 풍경과 일상 같기도 한 모습과 어우러진 느낌이었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홀로코스트 추모공원에서의 시간과 리히탁돔 야간 투어로 '다크 투어'의 무거움에서 조금씩 빠져나오는 것을 느끼며, 공간과 하늘의 어우러짐이 주는 힘도 경험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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