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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Apr 19. 2021

전 하우스어셔(공연장안내원)가 일하면서 배운 것들

06 | 처음으로 일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다



학교 다니면서 공연장 아르바이트를 약 2년 가까이 했다. 이전에 일했던 개인 사업장보다는 거대했던 지역문화회관에서 건네받은 유니폼, 무전기, 꽤 경직된 분위기 같은 것들이 얼마나 생경했던지.



나름 체계도 갖춘 터라 업무 및 고객 응대 매뉴얼이 마련되어 있는 건 물론이고, 이미 그곳에서 3~4년을 근무해 저마다 노하우가 쌓인 선배들도 여럿 있었다(아르바이트인 데다 모두 대학생인 걸 고려하면 대단히 여겨질 만한 연차였다).



공연예술과 공연장 업무에 진심이었던 사람들 사이에 있자니 하루하루가 설렘과 배움의 연속이었다. 좁은 시야와 모자란 센스를 갖고 있던 내게 기본적인 검표 방법과 관람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 그리고 안전한 관람을 위해 상황을 통제하는 요령을 끊임없이 가르쳤으니 말이다. 게다가 날마다 공연에 대한 평을 나누며 하루를 마감하곤 했으니, 누구든 문화예술과 사람을 좋아한다면 공연장 일을 추천해주고 싶다.






서비스의 본질을 배운 곳


대학교 신입생이 졸업반 언니, 오빠들을 동경하듯 몇 살 차이 나지 않았던 일터에서의 선배들을 졸졸 쫓아다니며 일을 배웠다. 그들은 탁월한 일 처리를 몸소 보여주며 신입들을 가르쳤다. 예컨대 검표하면서 껌을 씹고 있는 관람객에게는 뱉은 뒤 입장하기를 알려야 했는데, 노하우가 쌓인 이들은 아예 냅킨을 사 등분 한 ‘(자체 제작)껌종이’를 들고 다니며 안내와 함께 건네 드리곤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나에게는 혹여 공연장 바닥에 껌을 뱉은 쓰레기가 나뒹굴지 않도록 휴지는 꼭 회수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공연의 중간 쉬는 시간인 인터미션에는 화장실이 붐빌 수 있으니 긴 줄로 기다리시는 분들에게는 다른 층 화장실을 안내해드리라고도 했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업무 ‘꿀팁’을 전수받았던 셈이다. 아르바이트였음에도 자기 일에 책임감을 느끼고 할 일을 찾아서 해내던 프로다운 모습을 보며 나는 비로소 내가 선택한 업무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었다. 공연장 서비스를 제공하는 하우스어셔는 관람객의 관점에서 필요한 걸 캐치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직무였다. 그러니까 이건 단순히 미소로 때우는 일도 아니거니와 매뉴얼만 보고 적용할 수도 없는, 융통성과 통찰력 있는 감각이 필요한 일이었다.



매뉴얼에 적혀있지는 않지만, 혹여 공연 전 무대 연출로 자욱한 연기가 쓰이는 날에는 객석에서 대기 중인 관객들에게 무대효과임을 알리는 센스가 필요했다. 우리에겐 익숙한 효과일지라도 처음 접한 관객들은 화재로 오인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좌석 안내도를 한참 보고 계시는 어르신께는 먼저 다가가서 티켓을 확인한 후 좌석 설명을 해드리고, 어린이 공연에 아이 혼자 들여보낸 뒤 문 앞에서 기다리는 보호자께는 아이 상황에 대해 간간이 알려드리며 안심 시켜 드리는 일까지. 다양한 관람객의 욕구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모든 촉수를 곤두세워야 했다.



꽤 까다로운 일이지만, 즐겁게 해낼 수 있었던 건 공연만큼이나 사람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공연도 공연이지만, 좋은 공연에 호응하고 만족하는 사람들과 현장의 기분 좋은 열기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는 게 이 일의 특권이기도 했다. 공연과 사람을 좋아하고 열정 가득한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다양한 관람객과 현장을 관찰하는 일이 까다롭게 느껴지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하우스어셔는 서비스직 중에서도 일에 대한 성취감이나 동기부여가 확실한 편이리라.




처음으로 일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다


돌이켜보면 모진 말 만큼이나 감사한 말도 많이 들었다. 덕분에 꽤 많은 날 폭언과 컴플레인을 응대하며 갖은 감정 노동에 시달렸음에도 이 일이 싫지만은 않았던 거다.



하루는 유니폼을 입고 공연장을 종일 뛰어다닌 날이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된 공연이었고, 이를 미리 공지했음에도 공연 내내 중구난방으로 터지는 플래시를 제지하러 허리를 숙여 계단을 오르내리길 반복했다. 그렇게 유독 분주했던 공연이 끝난 뒤 기진맥진하며 관람객의 퇴장을 돕고 있었는데, 한 관람객분께서 ‘오늘 너무 수고 많았다’며 ‘덕분에 잘 봤다’는 말씀을 건네주셨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내 말을 안 들어줄까’하고 야속했을 무렵, 놀랍게도 그 말 한마디에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녹아내렸다.



때때로 폭언과 갑질을 마주해야 했던 감정 노동이었지만, 몇몇 사람이 표하는 격려의 말은 일의 쓸모를 되새기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일하는 사람들이야 매일 가는 공연장이지만, 관람하는 누군가에겐 일생에 있어 단 한 번의 특별한 장소와 공연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생애 단 한 번의 경험이 즐겁고 안전하길 바라는 것. 그건 개인적인 문화애호가로서의 소망이자 안내원으로서의 책임감이기도 했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하다 처음으로 돈벌이 이상의 가치-일터에 대한 애정, 일에 대한 자부심, 성장하고 싶은 욕망 같은 것들-를 부여했던 곳. 그곳에서 나는 일의 기술을 익힌 것뿐만 아니라 내가 선택한 업을 대하는 태도를 기른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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