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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May 23. 2021

스물셋에 처음 아이를 돌보고선

07 | 아이 돌봄 아르바이트 기록


스물셋, 아르바이트 공백기가 못내 불안해서 앱을 통해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던 아이 돌봄 아르바이트를 지원했다. 지원서에는 평소에 아이를 좋아했다는 것을 어필하며 스무 살 때 호기심에 따뒀던 구연동화 자격증을 슬쩍 끼워 넣기도 했다.



경력은 없었는데 운이 좋았는지 플랫폼에 지원서를 올린 지 하루 만에 옆 동네에 거주하던 분께 연락이 왔다. 집을 비우는 동안 7살, 8살 남자아이 두 명을 돌봐 달라고 하셨다. 넉넉한 시급과 택시비까지 챙겨줄 테니 놀아만 주면 된다고. 급해서, 조건이 좋아서, 또 아이를 좋아한다고 믿었으니까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로부터 그 집이 이사를 가기까지 약 6개월간 아이들과 함께했다.






아이들은 예쁘고 활동적이었다. 낯을 가리지 않았고 ‘누나’하고 부르는 목소리는 친밀했으나 종종 지켜야 할 선을 모르기도 했다. 감정 표현에 솔직하고 순수했으며 종종 나보다 어른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편견에 취약하기도 했다. 머리를 짧게 자른 누나는 남자 같다며, 오늘은 왜 입술을 바르지 않았냐는 등의 말이 8살 남자아이 입에서 나오기도 했다. 가끔은 비속어를 빌려 분노를 표출하고 공격성을 보이기도 했는데 ‘유튜브’나 ‘틱톡’을 비롯한 미디어의 유해성을 피부로 느끼게 된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이 주로 보던 콘텐츠는 해로웠다. 어린이가 주 구독층이었음에도, 폭력과 비하를 희화화하고 편견을 고착시키는 워딩을 뱉는 어른들이 많았다. 창작의 자유를 옹호하지만, 능력 있는 어른들이 자신의 파급력을 고려하지 않은 게으른 창작가가 되진 않았으면 싶다. 미디어 비평 능력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도 점차 이뤄지겠지마는.



한편으론 맞벌이 가정에 코로나까지 맞물리는 상황 탓에 가족이나 친구보다는 미디어 매체와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었으니 마냥 누구를 탓하기도 어려운 일이지 싶다.



하필이면 그 1년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진득한 사람 한 명 없이 나와 비슷한 대학생 시터들이 여럿 거쳐 갔더랬다. 그만큼 인스턴트 관계에 익숙했던 아이들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늘 이별에 의연해야만 했던 아이들이 한편으론 안타까웠다. 값싼 동정이었을까, 떠난 사람 각자의 사정도 모르면서 내가 먼저 손을 놓지는 않으리라 섣불리도 약속했다.



처음 관계를 맺게 된 아이들이니까, ‘개성을 발견해주고 분노는 적절히 표출하는 법을 알려줘야지’하며 패기 어린 다짐도 했다. 며칠 놀아주는 시터라고 생각하면 편할 일인데 처음부터 책임의 범위를 넓게 설정한 셈이다. 열정이 넘쳐서 오버한 구석도 있었다.



이내 순진한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일은 생각처럼 쉽게 풀리지 않았다. 매일같이 시터일지를 작성하고 건강한 놀이-감정낱말 카드놀이, 상자 속 물건 맞추기 등-를 찾아보고 교구를 만들던 그간의 노력이 무색해지던 순간이 많았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집중력이 약했고, 쉽게 질려 했다. 웬만해선 핸드폰을 쥐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교구를 워낙 시시해 해서 ‘유튜버 놀이’인 척 카메라를 켜놓고 진행하듯 놀이를 이어가기도 했다.


‘놀이로 어떻게 교육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모바일 게임보다 나랑 노는 걸 더 재밌어할까?’

고민이 깊어지면 아이 교육에 힘 쏟는 모든 어머니, 아버지와 선생님들께 절로 존경과 경의를 표하게 된다.



한편으론 아이들이 똑똑해서 내가 뱉은 말을 곧잘 지적해주기도 했는데, ‘누나, 어른이 왜 그런 말을 써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가 그렇게 부끄러웠다. 세대 차이를 좁혀보겠다고 무작정 신조어를 남발한 게 화근이었다. 빨개진 얼굴로 실언에 대해 사과를 건네기도 했는데, 그런 걸 보면 아이라고 마냥 보호하고 가르칠 만한 대상에 놓이는 건 아니지 싶다.



그런데 요즘처럼 저마다 헬린이(헬스+어린이, 헬스 입문자를 일컫는 신조어)니, 주린이(주식+어린이)니, 키덜트니 하는 어른들의 언어 습관을 아이들이 알면 얼마나 어이가 없을까. 내가 잠시나마 돌봤던 그 아이들이 알았더라면 ‘누나, 어른이 왜 어린이라고 해요?’라며 의문을 품었을 것만 같다.



어린이라고 다 서툴기만 한 건 아니었는데, 적어도 그 친구들은 나보다 감정 표현도 태권도도 게임도 잘했다. 친구와 가족, 사랑에 대한 짧은 토론도 가능했다. 본질을 관통하는 순수한 생각과 날 것의 관점은 새로웠고 내가 더 배워가는 구석이 많았다. 그런데도 은연중에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을 낮잡아 보는 단어를 쓰지 않았는지 반성하게 되는 요즘이다.



그새 시간이 흘렀다고 아이들이 짓궂던 기억은 희석되고 사랑이 전부였던 모습만 남았다. 아픈 동생한테만 관심 가진다고 서운해했던 모습이나 '오늘도 누나 사랑해~' 하고 내게 안부 인사처럼 건네던 말을 빼곡히 기록해둔 일지를 들춰보면 좀 더 사랑 많고 좋은 어른처럼 굴 걸 싶기도 하다. 좋은 어른의 기준이 따로 없겠지마는, 나조차도 영향을 끼치는 사람임을 체감하고서는 이전보다 자주 좋고 나쁨의 가치를 판단해내게 된다. 워딩 하나에도 세심해지는 일련의 과정이 선한 행동이라 믿는 거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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