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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Mar 19. 2021

카페 단골손님께 아이패드를 받았다

04 | 낭만보다 더 요상한 현실



스무 살 때 유독 카페 아르바이트에 대한 낭만이 있었다. 드라마 소재로 자주 쓰였기 때문일까, 당시 카페의 이미지는 커피 향이 솔솔 나고 듣기 좋은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이었다. 순전히 손님의 관점이었다. 물론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그 환상은 오래 유지되지 못했지만, 육체적으로 힘들었어도 젊은 감각의 사장님, 또래의 알바생들, 그리고 유흥이 즐비한 거리에 위치한 것 하며 젊음과 청춘이라는 타이틀이 잘 어울리는 곳이기도 했다.  




경력자만 구하는 탓에 신입에겐 불모지 같던 카페 아르바이트 시장에서 어리고도 미숙한 나를 받아준 그곳은 술집이 즐비한 거리 한가운데에 있는 2층짜리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가장 손님이 많은 금요일, 토요일에 저녁 7부터 새벽 3시까지 음료 제조부터 시작해 흡연실 청소로 마무리되는 일과였기에 조금은 고됐지만, 솔직히 초반에는 뭘 해도 봐주는 스무 살이라는 막내 타이틀과 그때만 누릴 수 있던 특권이 좋았다. 게다가 카페 배경음악을 내 플레이리스트로 채울 수 있다는 소소한 낙도 일을 버틸 수 있게 했다. 무엇보다 매주 카운터에서 단골손님들을 마주하면 묘하게 반가웠는데, 낯이 익었다는 이유만으로 평소 성격과는 다르게 살갑게 말을 붙일 수 있었던 모든 과정이 카페 아르바이트만의 장점이 아니었나 싶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었는데, 북적북적한 카페에서도 매일 새벽 3시까지 앉아 진득하게 공부를 끝내고 늘 마지막으로 문을 나섰던 사람이었다. 작고 차분한 목소리의 그 손님은 가끔 카운터로 내려와 지금 흘러나오는 노래가 뭐냐고 물으며 선곡자인 나를 뿌듯하게 만들곤 했다. 그분의 지정석과 다름없었던 2층 구석진 자리까지 더 잘 들리라고 볼륨도 높이곤 했으니까 말이다. ‘취업준비생인가, 시끄러운데 집중은 잘 되려나’하는 호기심과 궁금증을 품으며 그 손님이 오면 유독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고 줄곧 음료를 사이즈업해서 내드리곤 했다.



물론 이런 낭만적인 현실은 아주 잠깐이었고, 보통의 나날은 카운터에서 입구까지 늘어선 줄을 감당하며 2층에 쌓인 컵과 쟁반들을 치울 틈 없던 그런 날로 채워졌다. 하루는 또 한 차례 주문 폭풍이 휩쓸고 난 뒤 한숨 돌리려는데, 그 손님이 카운터로 내려와 머뭇거리는 것이었다.



혹시 아이패드 살 생각 없으세요?



또 제목 물어보려고 오셨나 싶었는데, 갑자기 아이패드 거래를 하자는 거였다. ‘아이패드를 중고로 팔아봤자 몇십 만 원은 할 텐데’하는 돈 걱정부터 들어 사실 살 마음은 없었지만, 얼마나 급했나 싶어 가격이라도 물어보는 게 성의이지 싶었다.



“얼마에 파시게요?”

“오백 원에 팔게요.”



오백 원이라니. 장난을 치고 싶으셨던 걸까, 당황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다시 여쭤보니, 정말 오백 원에 팔고 싶다고, 동전이 없으면 그냥 드리겠다는 거다.



“학생이시죠? 평소에 열심히 일하시는 게 보기 좋아서요.

공부할 때 이걸로 쓰세요. 저는 이제 필요 없기도 하고 줄 사람도 없어서요.”



하잘것없는 취급을 받았던 알바생의 노동 가치를 알아봐 준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이미 비싼 값이 매겨진 물질적 호의까지 받아 버렸다. 낭만보다 더 요상한 현실이었다. 그렇게 받기도 뭐하고 안 받기도 뭐한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자, 같이 일하는 언니는 마음 바뀌기 전에 어서 받으라고 종용하기 시작했다. 결국 ‘감사합니다.’를 연신 내뱉고 얼떨결에 손에 쥔 아이패드를 보며 끝까지 이걸 받아도 되는 건가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 날에는 값비싼 만년필을, 그다음 날에는 자전거와 가방을, 그리고 그다음 날에는 플레이스테이션을 다른 알바생들에게 건네줬다. 아르바이트하면서 별의별 경험을 다 겪어봤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도 낯선 광경에 혹시나 나쁜 마음을 먹은 게 아닐까 걱정부터 들었다. 넌지시 어디 멀리 떠나시는 거냐 물었지만, ‘비슷하다’라는 모호한 답변에 더 불안해지는 마음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가족사와 관련된 거라 자세히 말씀드리긴 어렵다며 서둘러 답하곤 웃음을 내보였다.



그래서 조금은 안도하며 중고나라에 내놓으면 비싸게 받으실 수 있을 거라 말씀드렸지만, 파는 법도 모르겠거니와 시간도 없다던 그분은 대체 무슨 생각이셨던 걸까. 나는 여전히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저 가방을 건네면서 다른 건 몰라도 가방에 달린 ‘위안부’ 할머니 후원 배지와 세월호 배지는 버리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던 모습만이 선하게 남아있다.



햇수로 5년이 지난 일인데, 지금도 그날의 기억이 선연하다. 나는 내심 그분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근무를 나갔지만, 그 후로 볼 수 없었다. 일을 그만둔 지 한참이 지난 어느 날, 다시 카페에 들렀다는 소식을 건너 들었을 뿐이었다. 당시에는 갑자기 물건을 처분하는 속사정이 마냥 궁금했는데, 지금은 그저 어디에서든 잘살고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어쩌면 그분에겐 별것 아니었을 순간 혹은 빨리 털어내 버리고 싶었던 날을 이토록 붙잡고 있는 나를 보며 당혹스러워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무 의도 없이 건넨 말과 물건이 당신에겐 버리고 싶은 조각이었을지언정, 나에겐 특별한 위안이 되었다고 이렇게라도 말하고 싶다. 매일같이 같은 시간에 카페로 출근해 마감 때까지 할 일을 해내던 성실함과 사려 깊은 말솜씨와 곧은 신념을 기억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고도.



스쳐 지나간 인연이기에, 대가 없이 받은 물건이 있었기에 좋은 기억으로 포장하고 싶은 것도 사실은 맞다. 그래도 그냥 누구나 하나쯤은 특별한 순간으로 치부하고 싶은 기억이 있는 거니까, 이미 지나간 순간에 대한 왜곡이어도 좋으니 종종 꺼내 보고픈 추억으로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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