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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Feb 04. 2021

어떤 손님의 호의

03 | 식당에서 센스를 발휘하고 싶다면 이들처럼



찌개집에서 아르바이트했을 당시, 손님이 없던 한적한 낮에 모자가 단둘이 와서 김치찌개를 시킨 적이 있었다. 나보다 두어 살 위인 것 같던 아들이 음식이 나오기 전에도 음식이 나온 후에도 자기 어머니를 살뜰히 챙겨주는 걸 어쩐지 계속 눈에 담고 싶은 날이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뒷모습이 괜히 아쉬울 정도로, 참 보기 좋았었다. 그리고 테이블을 치우려는데 웬걸, 음식물은 따로 분리되고, 접시와 수저는 한데 모여 있었다.


 

게다가 포개져 있던 접시 중 가장 위에 있던 앞 접시에는 밑반찬이었던 콩자반과 콩나물로 만들어진 귀여운 스마일 표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이고….’ 추운 겨울날, 어떤 마음으로 그 짧은 순간에 호의와 정성을 베풀었을지 헤아리니 아련하고도 기분 좋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손님의 귀여운 센스에 재빨리 상을 치우지도 못하고 결국 사진을 찍어 직원들에게 그 흔적(?)을 다 같이 감상하게 만들고야 말았다. 나는 그 방법이 꽤 인상적이었는지, 5년이 지난 지금도 식당에 가면 식기를 간단히 정리 후 반찬 그릇에 애매하게 남은 밑반찬 두 어 가지를 집어 하트나 스마일을 만드는 등의 흔적을 남기고 오곤 한다.



물론 너무 바쁜 시간대라면 발견해주기도 어렵고 더 번거로워질 수도 있으니 여유로운 시간대에 귀찮은 장난으로 여겨지지 않게 작업하는 게 팁이라면 팁이다! '굳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고 유치한 방법이래도 할 수 없지만, 감성이 필요한 누군가가 눈치채고 피식 웃어주길 바라며 식당을 나서는 건 나만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사실 그런 사소한 호의가 누군가에겐 그다음 일을 하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적어도 일하면서 수없이 접한 누군가의 무례함과 불쾌한 언행이 지겨웠던 나의 사회 경험 첫 장에 ‘그런데도’라는 접속사를 붙인 소중한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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