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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Feb 03. 2021

나의 첫 서빙 아르바이트

02 | 혐오가 얼룩진 사회를 목격하기 시작한 곳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던 곳은 동네 사람들이 따뜻한 국물과 한 잔을 종종 비우러 오던 복작복작한 찌개집이었다. 주 5일간 서빙을 하는 일이었는데, 수능이 끝난 직후 용돈 벌이를 할 겸 지원했던 기억이 난다. 쓸 내용도 없었지만, 형식적으로나마 난생처음 이력서를 작성하고 면접을 보러 갔다.



“저, 안녕하세요. 면접 보러 왔는데요.”

“아, 예. 안녕하세요. 이력서 주시고… 음, 이제 가보셔도 되세요.”


무언가 따져보기도 전에 아니 뭘 따져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부딪혀보자는 심정으로 지원했는데, 두 어 마디 주고받은 게 면접의 전부였다. ‘뭐지?’ 10초 만에 끝난 면접에 혼자 멍해 있다 허무하게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그게 덜컥 붙게 될 줄이야, 이거야말로 상상도 못 한 전개였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날 뽑은 진짜 이유, 그 불쾌한 평가의 전말을 알게 된 후 물러 터졌던 내 삶의 방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니 여러모로 이곳에서의 경험은 내 20대에서 꽤 의미 있는 첫 단추였는지도 모르겠다.



“아가씨, 여기 빨간 거 하나!”


그렇게 운 좋게(?) 붙은 일터에서의 첫날, 당장 소주 이름부터 달달 외웠다. 사실 달달 외울 것도 없이 여기저기서 외치는 ‘빨간 거’의 의미를 첫날부터 자연스레 알게 됐다. ‘참 독한 술 찾는 사람 많다’며 잠시 생각할 뿐, 종일 주문받고, 나르고, 치우느라 길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빈번하게 들리는 ‘아가씨’라는 호칭과 반말들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테이블을 치우면서 또래 알바생과 잠깐 떠드는 순간은 고된 마음을 정화하는 소소한 낙이기도 했다. 적당히 유해한 환경에서 여느 알바생과 다를 바 없이 그냥 그렇게 버텨낸 거다.



간혹 무례한 손님을 만나기도, 소주잔을 깨트리는 실수를 하기도, 다친 손에 밴드를 건네줬던 우리끼리의 일화도 가득했던 그곳에 적응이 됐을 무렵, 나를 고용한 사람으로부터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말을 듣기도 했다.



“근데, 그때 어떻게 경험도 없던 저를 뽑아주신 거예요?”

“딱 보면 알지. 아니, 사실 다리가 예뻐서? 각선미가…


그 발언을 시작으로 희롱 섞인 말을 늘어놓던 상황을 떠올리자니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당시에는 머릿속이 하얘져서 성희롱이라는 대꾸 한마디 못 하고 그저 화제를 돌리며 혼자 끙끙 앓기나 했다. 어린 시절 남에게 싫은 말 못 하고 곤란하면 웃음으로 때웠던 병이 하필 거기서 도져버린 거다.



아무리 그래도 그때 느낀 불쾌함과 후에도 계속 타인의 시선과 생각을 신경 써야 했던 불편함, 나의 답답했던 대처에 대한 자책과 무력함 그리고 후회는 왜 오로지 내 몫이어야만 했던 걸까. 조금은 억울했다.



끝내 더러워서 피한다는 명목하에 첫 아르바이트를 도망치듯 그만둔 지 어언 5년이 지났다. 물론 어딜 가도 이런 사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바로 다음 조직에서 알게 됐고, 적당히 체념하고 '웃으며 잘' 대처하는 법부터 습득해야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제는 한때 여성들의 외모에 순위를 매기고 대놓고 품평을 일삼았던 사람들이 점차 발언하기 전에 주변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매번 타인의 눈치를 보던 내가 이제는 누군가의 무례한 발언에 대해 눈치를 줄 수 있는 위치를 갖게 된 거다. 물론 많은 사람이 지지하고 계속 발언해줬기에, 그래서 지금은 다수가 공공연히 차별과 희롱으로 인정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대놓고’ 안 할 뿐, 수법은 오히려 영악하고 교묘해졌고 먼지처럼 존재하는 혐오와 멸시를 누군가는 또 숨 쉬듯 흡입하고 있는 광경을 여러 번 목격해야만 했다. 물밑으로 무한히 재생산되며 '야동'으로 소비되던 불법촬영물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각종 디지털성범죄 사건들이 이를 증명한다. 불법촬영 문제가 활발히 지적된 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용화장실 작은 구멍을 휴지로 막고 다니며, 모욕감과 부끄러움이 섞인 희롱과 추행의 경험을 수면 아래에서 조심스레 공유하는 수많은 여성을 보면, 아무리 사회가 바뀌었다 한들 바뀐 현실을 체감하기란 도무지 쉽지 않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고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위해 나아가고 연대하는 수많은 여성을 보며 버거운 사회를 버틸 힘을 얻기도 했다. 자기계발에 힘쓰고 비판에 주저하지 않으며 같은 피해의 양산을 막으려는 따뜻하면서도 강한 주위 롤모델들을 찾아보는 것, 나 또한 그런 롤모델이 되고자 하는 마음과 가벼운 실행. 나는 종종 그렇게 무력감에서 빠져나오곤 했다. 그러니 혐오와 멸시가 얼룩진 사회에 막연한 분노가 차오르더라도, 언제든 같이 버티거나 맞서 줄 준비가 되어 있는 비슷한 처지의 여성이 바로 옆에 있다는 믿음이 더욱더 만연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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