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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Sep 12. 2022

106 "화성 배치"는 어떤 순서로 했을까?-후편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 106

"화성 배치"는 어떤 순서로 했을까?-후편


전편 1단계로 전체의 25%인 16곳을 배치 완료하였다. 이어서 2단계부터 배치 완성까지 살펴보자.


2단계로 시설물 20곳을 배치한다.


20곳은 옹성 4곳, 적대 4곳, 암문 5곳, 지(池) 3곳, 동장대, 서북공심돈, 남공심돈, 서노대이다. 이 부류는 종속성(從屬性)이 강한 시설물이다. 즉 1단계 시설물과 함께 하나의 시스템을 이루는 시설물이라는 의미이다.


먼저, "문(門)"에 종속되는 "옹성, 적대, 공심돈"이 배치된다.

성에서 가장 취약한 문을 방어하기 위해 옹성(瓮城)은 전면에, 적대(敵臺)는 좌우에 배치하였다. 옹성과 적대는 문과 시스템을 이루는 시설물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화서문에는 평지 쪽에 높은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을 돌출시켜 배치했다. 방어에 취약한 남수문에는 평지 쪽에 높은 남공심돈(南空心墩)을 전진 배치하였다.


다음, "동장대(東將臺)"는 서장대와 마주한 곳에 배치한다.

동장대는 서장대와 하나의 짝(Pair)을 이루는 시설물로 대련(對聯)이나 대구(對句)와 같은 관계이다. 아울러 2만 평(坪) 크기의 군사 조련장이 있어야 하므로 너른 땅이 있는 동북성 안에 배치하였다. 

성에서 가장 취약한 곳은 문(門)이다. 그런데 화서문에는 적대를 대신하여 높은 서북공심돈을 배치한다.

다음, 성 밖 마을에 종속되는 "암문(暗門)"을 배치한다.

백성이 건널 수 없는 성 밖 수원천을 감안하고, 성 밖 마을에서 성안으로 최단거리가 되는 곳에 배치하였다. 화성 암문은 군사를 위한 숨겨진 문이 아니라 백성들이 성안으로 쉽게 오갈 수 있는 공개된 백성의 문이라는 특징이 있다. 다만 입지(立地)는 긴급 시 폐쇄하기 쉬운 푹 꺼진 지형을 선택하였다.


다음, "지(池, 못)"는 은구(隱溝)나 남수문에 종속되어 배치한다.

상남지(上南池)는 남은구 직전에, 북지(北池)는 북은구 직후에 설치하였다. 하동지(下東池)는 남수문 공사가 원활하도록 유량(流量) 조절을 위해 남수문(龜川) 위쪽에 배치하였다.


끝으로, 서장대(西將臺)에 종속되는 "서노대(西弩臺)"가 배치된다.

당시 쇠뇌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졌기 때문에 정탐과 경보(警報)의 기능으로 변환해 서장대 곁에 배치하였다.


이렇게 2단계는 20곳으로 1단계와 합치면 36곳이 된다. 전체의 60%에 해당하는 배치 설계가 완료된다. 

서노대는 서장대의 종속 건축이다. 쇠뇌를 쏘는 원래의 기능과 함께 정탐과 경보 신호의 전달도 큰 기능이다.

3단계는 시설물 19곳 배치이다.


19곳은 포루(砲樓) 5곳, 포루(舖樓) 5곳, 치성(雉城) 8곳, 동북노대이다. 이 부류는 기초 방어시설이다. 남아있는 빈자리에 배치된다.


먼저, "동북노대(東北弩臺)"를 동북성(東北城) 높은 곳에 배치한다.

가까이 동장대에 적 상황을 보고하고, 옆의 동북공심돈과 함께 성 밖 맞은편 높은 선암산에 올라온 적을 협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 "포루(砲樓), 포루(舖樓), 치성(雉城)"을 배치한다.

기본 계획서의 하나인 정약용의 "포루도설"에 언급이 있었으나, 사실상 감동당상(監董堂上) 조심태의 주도로 배치된다. 도청(都廳) 이유경도 배치 설계에 상당 부분 참여하였을 것은 당연하다. 간격 110보(步)를 기준으로 방어와 건설에 유리한 지형에 전략적으로 배치하였다.


이렇게 3단계는 19곳으로 1, 2단계와 합하면 55곳이 된다. 전체의 90%에 해당하는 배치 설계가 완료된다. 

동장대는 군사 조련장(操鍊場)이 인근에 있어야 했다. 2만 평의 조련장이 들어갈 너른 터를 잡아야 했다.

마지막 4단계는 시설물 7곳 배치이다.


마지막 7곳은 포사(舖舍) 3곳, 상동지, 하남지, 봉돈, 성신사이다.

원성과 떨어져 있는 시설, 완공 후 필요한 시설, 위치가 변경된 시설, 그리고 신설된 시설물이다.


먼저, "포사(舖舍) 3곳"을 역할에 맞는 위치에 배치한다.

서남(西南)포사는 팔달산 능선 위에 배치하여 서성과 남성의 정탐을 관활하고, 중(中)포사는 북성과 동성을 관활하기 위해 매향동 첫 등성이에 배치했다. 내(內)포사는 최종 보고처인 화성행궁 안에 배치하였다.


다음, "지(池) 2곳"은 완공 후의 역할 때문에 배치한다.

상남지(上南池)에 하남지(下南池)를 추가하여 남지를 2지(池) 시스템으로 만들어 지(池)의 기능을 완성시켰다. 상동지(上東池)는 너른 동북성 유역의 유량(流量) 조절로 성역 후 수원천 범람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이다.


다음, "봉돈(烽墩)"은 위치를 변경하여 화성에 배치한다.

당초 계획은 "성 밖 산 위의 봉수대(烽燧臺)"였다. 이를 행궁 맞은편 동성(東城)으로 끌어들여 계획된 치성(雉城) 자리에 돈(墩)과 융합한 공격형 봉화시설 형태로 바꾸었다. 세계 최초의 "봉돈(烽墩)"이 탄생한 것이다.


끝으로, "성신사(城神祠)"는 정조의 특별한 요청으로 신설한다.

화성의 위상을 높여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정조는 성역이 끝나기 직전 성신사의 설치를 특별히 지시한다. 정조의 지시로 행궁 뒤 팔달산 기슭에 배치하였다.


이렇게 마지막 단계로 5곳을 배치해 시설물 60곳 배치 설계가 100% 완료된다. 시설물 수 60이란 수치는 상남지와 하남지, 상동지와 하동지를 각각 1곳으로 보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성 밖 봉수대(烽燧臺)"를 시설물과 결합시켜 세계 최초로 "성에 붙은 봉돈(烽墩)"으로 탄생시켰다.

"배치 과정(Process of Site Plan)"의 복기(復棋)를 통해 60개 화성 시설물의 기능(Function), 역할(Role), 목적(Target)과 토목계획, 건축계획은 물론 입지(立地)전략, 방어(防禦)전략을 알아보았다. 


이번 "배치설계 과정"은 성역 이후 최초의 발표이다. 화성의 전모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화성 배치설계 프로세스"를 통해 정조(正祖)의 전략 마인드를 엿보았다. 


오늘을 끝으로 저의 "점정조지도(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를 마친다. "후손에게 화성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남겨야겠다"란 것이 본래 시작할 때의 뜻이었다. 한눈팔지 않고 이 뜻을 지금까지 지켰다. 


이제부터 이 콘텐츠를 어떻게 알리느냐, 어떻게 남기느냐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 "재미없고 딱딱한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라는 말을 드리며 2년 반의 여정(旅程)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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