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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학엄마 Jan 24. 2022

아직도 - 크론병과 살아가기

딸의 크론병 이야기 30

  아직 완전한 관해기는 아니지만 일단 증상은 많이 호전되었다. 작년 12월에 레미케이드 5차 때 피검사 수치도 crp 0.1 (정상범위 0.5까지) esr 6 (정상 범위 20까지)로 안정된 상태이다. 변검사로 확인하는 칼프로텍틴 수치도 190에서 200 사이로 아직 아주 낮은 수치는 아니지만 크론병 환우들은 250 이하로 유지하면 괜찮은 정도라고 하니 그럭저럭 유지되고 있다. 재작년에는 음식이 조금이라도 안 좋게 들어가면 바로 반응이 왔었기에 하나하나 음식이 조심스러웠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작년에는 먹어볼 생각도 못했던 음식들도 이제는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우선 김치부터 시작했다. 물론 김치는 고춧가루는 최대한 털어내고 이파리 부분이 아닌 줄기 부분으로 먹기 시작했다. 원래도 이파리 부분 보다는 줄기 부분을 좋아하기에. 일단 김치를 먹기 시작하니 입맛이 많이 돌아서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울 수 있었다. 김치에 계란 프라이에 밥만 먹어도 어찌나 맛있어했는지... 김치에 뒤이어 김을 먹는 것도 시도해 보았다. 따끈한 밥 위에 김치 하나 올리고 김을 싸서 먹는 그 맛을 일 년 반 가량을 참았으니 얼마나 맛있었을까.

  민지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은 수박이다. 재작년에 진단받은 직후였던 여름에는 민지가 수박을 못 먹으니 집에 수박을 사놓지 않았었다. 사봐야 민지가 못 먹으니 수박 한 통을 다 먹을 사람이 없었고 차마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아이 앞에서 먹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이제 벌써 작년인 2021년에는 레미케이드 치료를 시작하면서 변 횟수가 줄어들고 변이 좀 굳기 시작하니 수박도 꽤나 먹었다. 수박, 블루베리, 황금향, 귤 정도의 과일은 먹어도 탈이 없었다. 원래 민지는 사과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지난가을부터는 사과도 아주 잘 먹는다. 

  하지만 아직도 민지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밖에서 민지가 변을 보는지 소변을 보는지 귀를 쫑긋 세우게 된다. 혹시라도 변 횟수가 늘어나진 않을까. 좀 변 상태가 좋지 않으면 먼저 이야기해주시는 하지만 혹시라도 아프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요즘엔 복통은 거의 오지 않긴 하지만 아주 간혹 가다 춥거나 스트레스받을 때 배가 잠깐 아팠다는 말을 하면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오늘은 민지가 코로나 백신 주사를 맞고 왔다. 학기 중에는 중간에 아프면 학교에 빠져야 해서 시험에 지장이 있을까 봐 절대 맞지 않겠다고 하다가 방학이 되니 맞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했다. 나와 신랑은 민지의 선택에 맡겼다. 네가 맞아야 할 것 같으면 맞고 맞는 것이 불안하면 맞지 말라고. 사실 맞아도 불안하고 안 맞아도 불안한 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크론병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민지는 더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백신을 맞기로 결정을 한 후에 크론병 카페에서 계속 검색을 해 본다. 백신을 맞은 사람들의 후기를. 간혹 맞은 후에 아팠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백신 맞고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몸살 하루 정도 겪었다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백신을 맞고 온 민지에게 오늘 저녁은 떡만둣국을 해 줬다. 만두는 엄마가 직접 만든 만두로. 이제는 손만두 만드는 것쯤은 쉽게 뚝딱 할 수 있다. (사실은 이것저것 손이 많이 가긴 하고 하나씩 빚느라 어깨도 아프지만 아이가 맛있게 먹으니 그쯤은 괜찮다.) 맛도 중요하지만 눈으로 보이는 것도 어느 정도 맛에 영향을 주는 듯하여 요즘엔 요리의 비주얼에도 신경을 쓰게 된다. 표고버섯과 양파는 따로 물로 볶아서 소금 간을 하고 따로 고명으로 만들어 놓았다. 당근도 채 썰어 물에 푹 익히고 노른자와 흰자를 분리한 계란도 따로따로 지단을 붙인다. 만둣국을 예쁜 그릇에 담고 따로 만들어 둔 고명을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식구들이 떡만둣국을 보며 "우와 예쁘다"라고 한다. 아직 매운 것, 날 것, 우유, 치즈, 기름진 음식은 피하고 있지만 이 정도로라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 민지에게, 우리 가족에게 행복인 듯싶다. 올 한 해도 크론병과 함께 씩씩하게 잘 살아 가보자. 민지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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