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결과, 보이지 않는 노동
디자인 일을 하다 보면 한 가지 현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견적서에는 디자인 결과물만 적혀 있지만, 실제 노동은 그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클라이언트가 보는 것은 최종 결과물이다. 하지만 그 결과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여러 과정이 필요하다.
자료를 찾고 시장조사 뿐만 아니라 타겟을 분석하고 방향을 고민하는 시간, 그리고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정리하고 해석하는 과정, 또한 여러 가능성을 검토하고 선택지를 만드는 작업, 내부 검토와 수정, 그리고 다시 정리하는 과정까지. 이 모든 과정은 디자인 결과물 뒤에 숨어 있다.
대부분은 이런부분은 견적서에 항목으로 따로 적히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작업 시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디자이너로 일할 때는 이런 과정이 크게 문제로 느껴지지 않았다.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라고만 생각했다. 견적 단가에 대한 기준을 생각한적이 없다.
하지만 회사를 운영하게 되면서 시선이 달라졌다. 견적서에 적힌 금액과 실제 투입되는 노동 사이의 간격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 간격이 그대로 운영 부담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디자인 프로젝트는 물품 단가가 있는 기성품이 아니어서 제안을 하는 과정에서 이미 노동의 시간이 발생한다. 그 제안에 따른 견적을 산출하고 제조사와 조율 과정이 필요하다. 이후 견적서를 작성하는 시간은 모두 업무에 포함된다. 하지만 이런 시간들은 대부분 계약을 위한 일반 과정으로 여겨 견적에 반영되지 않는다.
견적을 위한 노동 대가를 요청하기 어려운 현실은 개선되어야 부분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로고 디자인을 의뢰받아 세 가지 시안을 제출했다고 하자. 계약서에는 시안 3종과 수정 2회가 포함되어 있지만 실제 프로젝트에서는 ‘조금만 더’, ‘이 버전도 한번 보고 싶다’는 요청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작은 요청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에서 디자이너의 시간이 계속 추가된다. 이 시간이 반복되면 결국 견적서에 없는 노동이 쌓이고, 인건비는 발생한다. 그만큼 회사의 운영 부담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디자인 작업은 눈에 보이는 결과보다 보이지 않는 준비 과정이 더 많다. 회의를 준비하고, 방향을 정리하고, 자료를 조사하고, 내부에서 여러 번 검토한다. 이런 과정이 있어야 결과물이 만들어진다. 문제는 이런 일련의 과정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정에 들어간 시간과 고민은 감각이라는 미명아래 뚝딱 나오는 아이디어 즉 창의에 가치를 너무 가볍게 여겨긴다. 뿐만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추가 결과물 정도는 쉽게 만들어 제공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거절하게 되면 야박하다는 불쾌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창의성을 기반으로 한 사업은 기분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디자인 작업은 단순한 일로 큰 돈을 버는 일처럼 이해되기도 하는것이 현실이다.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이런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다. 견적서는 단순히 결과물의 가격이 아니라 그 결과를 만들기 위해 투입된 과정의 가치를 포함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모든 과정을 견적서에 세세하게 적을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작업 범위와 수정 범위, 필요한 과정은 가능한 한 분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래야 서로의 기대가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경험상 좋은 거래는 결과물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작업 과정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있을 때 관계가 오래 이어진다. 디자인은 결과로 평가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보이지 않는 시간과 노동 위에서 만들어진다. 견적서에는 다 담기지 않지만, 그 노동 역시 디자인의 중요한 일부이다.
대부분의 노동은 디자인 결과물,그 이전 과정에 있습니다.
체크 포인트
□ 견적서에 작업 범위와 수정 범위를 충분히 설명했는가?
□ 예상되는 추가 작업이나 변수를 미리 공유했는가?
□ 결과물의 가격이 아니라 과정의 가치도 고려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