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 크리스마스에 딸한테 생색내려고 쓰는 글
벤츠를 위한 가치투자법
산타할아버지~ 신디 머리핀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세요
내 딸은 한 달 전부터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다. 아니, 정확히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렸다.
다람이가 그토록 기다린 선물은 시크릿쥬쥬의 최애 캐릭터 '신디'의 머리핀이었다.
"시크릿쥬쥬 머리핀 있나요?"
나는 점심시간에 밥도 거른 채 남대문 아동복 매장의 노점을 일일이 방문하며 물었다.
"없어요~ 요즘 시크릿쥬쥬는 인기 없어. 다 티니핑만 찾지."
아무리 그래도 너무했다. 아무리 아이들이 티니핑만 찾는다고 해도 진짜 해도 해도 너무했다. 마이너한 취향은 전혀 존중받지 않는 걸까? 남대문 시장에서 시크릿쥬쥬는 그야말로 찬밥 신세였다. 겨우 찾은 시크릿쥬쥬 머리핀 한 줄은 모두 신디가 아닌 주인공 쥬쥬의 몫이었다.
그렇게 허탕을 치고 돌아온 날, 아내는 신디 머리핀은 시크릿쥬쥬 음료에서 구할 수 있는 거였다는 사실을 나에게 알려줬다. 집 앞의 마트에서 몇 번 봤던 그 음료수.
어차피 크리스마스는 아직 좀 남았으니까 뭐~ 전 날에 사면되겠네 하는 안일한 마음이었다. 만약에 내가 그날의 나로 회귀라든지, 환생이라든지, 빙의라든지, 뭐든 한다면 당시의 얼빠진 나에게 정신 차리라고 외쳤겠지만. 하핫 나는 안타깝게도 진도준이 아니었습니다.
며칠이 지나 23일이 됐다. 금요일 기분 좋게 퇴근을 하고 장인 장모님 처남 부부와 조카까지 함께 모여 저녁을 먹었다. 아내와 딸을 먼저 집으로 보내고 나는 마트에서 시크릿쥬쥬 음료수(에 들어있는 신디 머리끈)를 살 생각이었다. 그런데,
없었다.
마트의 진열대에는 시크릿쥬쥬 음료수가 없었다. 있었는데 없었다. 분명히 있었는데 없어... 왜....?
직원 분을 붙잡고 절박하게 물었다.
"시크릿쥬쥬 음료수 이제 없나요???"
심드렁하게 돌아온 대답.
"거기 없으면 없는 거예요~"
와..... 이게 뭐지... 와......... 몰카인가?
인터넷 주문해도 이틀은 걸릴 텐데... ㅎ.. ㅎㅎ.....어쩌지...??
황급히 검색을 하고는 무작정 15분 거리의 가장 큰 마트로 내달렸다. 영업은 9시까지였다.
"시크릿쥬쥬 음료수 있나요???"
없었다.
그 옆의 편의점에도, 그 옆의 문구점에도, 그 옆의 다른 편의점에도, 그 옆의 다이소에도, 그 옆의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도, 시크릿쥬쥬 음료수는 없었다.
체감온도 영하 20도의 거리에서 시크릿쥬쥬의 행방을 몇 번이나 물었는지 모르겠다. 대강 10번은 물었겠지.
발품을 파는 건 포기하고 근처 대형마트들에 전화를 돌렸다. 이마트 홈플러스 하나로마트 코스트코.. 근방 20킬로 안의 마트는 전화를 다 돌린 것 같다. 안내음성은 또 왜 이리 길고 복잡한지.. 아 됐고 상담원 연결해줘! 0번!!
네 전화받았습니다~
시크릿쥬쥬 음료수 있나요? 시크릿쥬쥬 있어요??
시크릿!! 시크릿!!쥬쥬!!! 치링치링 치리링 쥬쥬~~!!!! 선샤인빌 출신의 쥬쥬와 둘도 없는 친구인데... 실력이 엄청나게 뛰어난 천재 기타리스트..... 초록 머리를 한 15살 그녀를 모르시나요? 마법능력은 무려 공간이동이라구요...
신디 정말 모르세요? 신디를 제발 찾아주세요..... 제발요.......
간절한 나의 마음이 닿은 걸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번호를 남겼던 홈플러스에서 연락이 왔다.
"시크릿쥬쥬 재고 있어요 고객님~"
나는 홈플러스로 차를 몰았다. 20분이 걸렸다.
"시크릿쥬쥬 음료수가 있다고 해서 왔는데 어디에 있나요???"
직원 분의 안내에 이끌려 간 진열대 한쪽에는 시크릿쥬쥬 음료수들이 있었다.
그토록 찾아 헤맨 나의 그녀.
나의 쥬쥬, 나의 스텔라,
나의 신디
주인공 3명의 머리핀이 있을 테니까 대강 뭐 6개 사면 신디 하나는 나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음료수 6개를 결제했다. 계산대를 벗어나자마자 참지 못하고 뚜껑을 까기 시작했다.
신디 신디 신디 신디 나와라 신디 신디 제발 신디
결과는? 와.. 6개를 다 까봐도 신디는 없었다.
이런 제길.. 머리핀만 있는 게 아니었다. 머리끈도 있었고, 피규어도 있었고, 무엇보다 그 안의 캐릭터는 3명이 아니었다. 노란 머리의 넌 대체 누구니?
다시 진열대로 갔다. 이번에도 6개를 샀다.
결과는? 신디는 없었다.
다시 진열대로 갔다. 이번에도 6개를 샀다.
결과는? 이번엔 스텔라만 6개가 나왔다.
제발 신디!!! 짠 스텔라에요~
제발 이번엔 신디!!! 에엥~? 스텔라지롱~
제발 이젠 신디 나올 때 됐어!! 짜라란 스텔라 기다리셨나요~?
제발요 초록머리 신디!!! 응~ 아니야 또 스텔라야~
나한테 이러지 마 이번엔 신디!! 또 스텔라 나왔쥬?
아 진짜 이번엔 나오겠지 신디!! 어~ 돌아가~~~ 신디 줄 생각 없어~
스텔라가 연달아 나오는데 세상이 혹시 정말로 내 몰카를 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주차장에서 18개의 음료수를 앞에 두고 헛웃음도 나왔다.
오기가 생긴 난 진열대의 남은 음료수를 모두 쓸어왔다.
총 28개의 쥬쥬 음료수. 직원 분은 네 번에 걸쳐 28개의 시크릿쥬쥬 음료수를 사는 30대 남자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결과는? 너무도 다행히 나는 신디 머리핀 1개와 신디 머리끈 3개를 얻을 수 있었다.
스텔라 피규어 7개.. 부들부들..
다른 소소한 것들과 함께 포장. 껴놓은 스텔라는 훼이크다 이녀석아
11시가 되도록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며 잠 못 이루던 다람이가 내일 아침 행복하게 웃으면 좋겠다. 그거면 된다.
사실 지금 이 글은 훗날 내 딸이 산타할아버지를 믿지 않을 만큼 컸을 때 아빠의 노력을 생색 내기 위한 기록이다. 딸이 취업을 하고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쯤 보여주는 게 좋을 것도 같다. 뭐라도 나한테 주겠지. 벤츠를 바라는 건 무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