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루비 블랙, Mont-rubi Black
예전에 매장으로 한 통의 전화가 왔었다. 몽루비라는 스페인 와인에 대해 문의를 주셨는데, 와인에 대한 문의도 문의지만 오가닉, 내추럴, 유기농 등의 용어를 섞어가며 소위 말하는 "이런 용어가 붙은" 와인에 대해서 많이 궁금해하셨다. 그래서 마침 오전 중에 한가하기도 했던 터라 오가닉, 내추럴, 유기농, 비오디나믹, 비건 등 헷갈려하실 만한 내용을 꽤 오랜 시간 설명해 드렸다.
그런데 한참 재밌게 대화를 나누다 잠시 우물쭈물하시면서 조심스레 다시 말을 꺼내셨는데, 지인 중 한 분이 그리 심하지 않은 가벼운(?) 암을 치료 중에 있는데 어느 한 외국 자료에서 이런 유기농 레드와인은 마셔도 괜찮다고 하던데 괜찮냐는 질문을 추가로 던지셨다.
순간 살짝 당황을 했지만 웃으면서 솔직하게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답을 드렸다. 사실 내추럴이고 바이오다이내믹이고 뭐고 간에 본질은 포도를 발효한 알코올이 함유된 술이라는 점 아닌가. 와인을 좋아하고, 또 드시고 싶어 하는 욕심이야 나도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200% 공감하나 책임질 수 없는 조언을 해줄 수는 없었다. 아무튼 부정적인 답변을 들으시고 약간 풀이 죽으신 것이 조금 안쓰러웠지만 그래도 어찌하겠나.
이 전화를 끊고 나름 레드와인과 관련된 논문도 조금 찾아보고 그랬으나 뭔가 프랑스의 입김이 느껴지는 "하루 한잔 레드와인은 좋지도 몰랑" 정도의 내용과 "단 한잔의 와인이라도 좋을 리가 없다"라는 강경한 미국발 논문들이 주로 보였다.
아무튼 오늘 갑자기 브런치를 쓰는 건, 내가 최근에 '고작' 감기에 걸려서 와인을 자제하고 있기 때문인데 좀 더 큰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마 그때가 되면 나도 뻔뻔하게 유기농이니까 좀 마셔도 괜찮지 않을까 라며 너스레를 떨지도 모르겠다.
스페인의 뜨거운 열정이 기른 가르나차 100%의 펄떡이는 활어같은 힘찬 몽루비 블랙을 마시면 뭐.. 좀 기운을 얻을지도 모르잖아.
그나저나 스페인 가고 싶네...
가면 몽루비 호텔에 묵으면서 가르나차 와인이나 한사발 하고 싶구나.
Mont-rubi Black, garnatxa, 14%
50년 고목의 가르나차에서 느껴지는 어린 과실미가 주는 모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