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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새 Sep 15. 2020

기회의 신(관계)

손틈새로 빠져나간 순간 잡을 수 없다.

나는 감성충이다.

그중 주종목은 추억팔이이다. 과거의 이야기로 하루를 보내자고 마음 먹으면 일주일은 지나 있을 정도로 추억을 짙게 즐기는 편이다.

알아둬야 할 것은, 후회가 아닌 추억에 대한 짙은 향수나 해결할 수 없는 미련을 반추하며 과거의 '나'에 대해서 그리고 '과거 나의 감정'을 다시금 꺼내어 보는 행위일 뿐 시간낭비가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가장 많이 생각하는 나의 아릿한 추억에서 나온 생각은 바로

'언제든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게 보이지 않게 흘러나가더니 더이상 잡히지 않았던 것' 이다.

늘 옆에 있을 줄 알았고 그렇기에 감정을 다 쏟아내기도 감추기도 했던 것 같다.

조금만 덜 솔직하고 더 솔직했더라면 놓치지 않았을텐데 하고 후회를 했던 기억도 있다.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렀고, 순간의 아픔과 순간을 만들었던 감정들은 과거가 되었지만 '다시는 나의 소중한 것 들을 놓치지 않으리' 라는 다짐은 현재 내 옆에 늘 존재한다.

모든 것 들이 이 다짐에 큰 격언이 되어준다.

1. 지금 당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2. 소중함을 당연함으로 여겨서 흘러보내는 시간.
3.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

일은 돈과 직결되고 시간은 자아실현과 직결된다. 어느정도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극복이 되는 것 들이다.

하지만 마지막 3번은 물질도 나 자신도 아닌 타인과 연관되어지기에 절대 내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다.


대학시절 오래만났던 남자친구가 있었다. 친구로 시작했던 관계는 어느덧 자라서 가족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집에서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왠종일 함께했고 짜증을 내도 관계가 틀어져도 우리는 함께일거라고 나도 모르게 생각했었던 듯 하다.

그렇게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이별의 순간이 다가왔다. 얼마나 많이 사랑했냐는 중요치 않았다. 얼마나 사랑하지 않게 되었느냐 그것이 관건이었다. 익숙함은 어리숙했던 나에게 '사랑하지 않음'으로 다가왔고 쉽게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사실 내 안에선 마침표가 쉼표로 작용했었던 것 같다.

바쁜 날들을 보냈다. 못만났던 사람들도 만나고 누구도 내 인생에 관여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는 나를 그리워 할 것 이라고 단정지으며 "나 이렇게 행복하게 산다 쌤통이다" 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동창 모임에서 마주친 '사랑하지 않는 사랑했던 사람'을 보고 잘 쌓여져 있던 마음의 벽돌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얼마나 잡았는지 모른다. 썩은 밧줄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놓을 수 없었다. 죽을 것 만 같았다. 익숙함이 없는 것에서 시작된 불편함과 불안함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 겪어본 사람이 아니라면 알 수 없을 것 이다.

약하디 약한 밧줄이 언젠가 끊어져 나를 아프게 할것이란 것을 알고있었다. 결국 밧줄을 놓았다.

끔찍한 방황을 겪었다. 허공에 대고 손을 휘휘 젓고 물고기를 잡겠다며 낚시를 했었던것이다.


그후 아무것도 놓치고싶지않아서 튼튼한 연결고리가 없으면 관계를 구성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낱 사람마음이 어디 생각처럼 움직여주던가?

나에겐 또 다시 소중한 사람이 생기고 말았다. 결국 이렇게 사랑하게 될줄 알았더라면 앞서 말한 것 처럼 내 감정에 솔직해질 것 을 하며 귀여운 후회를 하는 요즘이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땐 여느 커플들 처럼 많이 부딛혔다. 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자체가 너무 성급한건 아닌지 고민도 했었다. 한 평생을 남으로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랑이라는 그늘 아래 함께한다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었다. 또 헤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이렇게 의심으로 얼룩덜룩해진 불쌍한 내게 그 큰 두손을 내밀며 "절대 너랑은 헤어지지 않아" 라는 말로 다독여주었다. 그 어떤 무엇도 내 앞에서 그에게 우선이 되는 것은 없었다.

아침 일찍 출근을 하기에 여태 살아오던 생활 패턴보다 일찍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침에 가장 첫번째로 내 눈에 보이는 건 석가모니처럼 평온한 얼굴로 잠을 즐기고 있는 그의 모습이다. 나는 피곤에 몸부림치며 부러울 때도 있지만 그를 보며 힘을 낸다. 이런게 행복이지 라는 말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이젠 소중한 것을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알게 되었다. 그럴만한 나이가 된건지도 모르겠다. 병원에서 일을 하면서 소중한 순간들을 많이 마주한다. 시간에게 젊음을 빼앗긴 사람들, 고목의 나이테로 더 넓은 그늘을 만들어주는 사람들, 늙는법을 배우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 그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난 지금 어떤 것 들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한번 새기고 또 반성하게 되는 것 같다.

결국 똑같은 사람인 내가 언제까지 젊기만하고 이런 생각으로 살아갈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소중한 것을 잊지도 잃지도 않는 방법을 아는 사람으로 남고싶다. 그거 하나면 나의 노년엔 충분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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