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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tgreen Aug 15. 2020

[연극] <마우스피스>와 프랜시스 베이컨

연극열전8의 두 번째 연극 <마우스피스> 포스터와 원작 <Mouthpiece>

리비는 한때 유망했지만 지금은 자신의 한계를 느껴 괴로워하는 중년의 극작가입니다인적이 없는 솔즈베리 언덕에서 술을 마시고 비틀대던 리비를 우연히 구하게 되는 데클란은 가난하고 불행한 가정사를 지닌17살의 소년이에요. 리비와 데클란은 올해 진행되고 있는 여덟 번째 ‘연극열전’의 두 번째 작품 <마우스피스>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영국의 극작가 키이란 헐리(Kieran Hurley)가 2018년 발표한 희곡의 제목, ‘마우스피스(mouthpiece)’는 전화기나 악기에서 입을 대는 부분 혹은 ‘대변자’를 뜻해요. 극 안에서 리비는 데클란의 내밀한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바탕으로 극본을 써서 무대에 올립니다. 데클란이 리비의 ‘마우스피스’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데클란은 세상에 불만이 가득한 반항적인 소년이라, 처음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던 건 아니에요. 데클란이 그린, 커다란 입이 등장하는 그림을 보고 리비는 그 아이의 눈부신 재능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데클란을 (데클란이 여태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현대미술관에 데려가는데, 그곳에서는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전시회가 진행되고 있었어요. 자신의 그림에서도 중요한 모티프로 사용되는 ‘커다랗게 미쳐버린 입’을 저렇게 매혹적으로 그리는 작가라니! 데클란은 흥분합니다. 


프랜시스 베이컨, <조지 다이어의 두상 연구>, 1967

베이컨의 <조지 다이어의 두상 연구>입니다. 조지 다이어는 동성애자였던 베이컨의 애인인데요, 이들은 첫만남부터 평범하지 않은 일화들을 보여줍니다. 둘은 1963년 다이어가 물건을 훔치기 위해 베이컨의 집에 몰래 들어갔다가 만났다고 해요. 그리고 1971년 파리에서 베이컨의 첫 회고전이 열리기 이틀 전, 다이어는 베이컨과 함께 머무르던 호텔에서 자살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순조롭지는 않았지만 8여년간 베이컨의 곁에서 예술적 영감을 주었던 다이어의 자살은 베이컨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이후에도 베이컨은 다이어가 등장하는 그림을 지속적으로 그려냅니다. 아직 다이어가 살아 있었던 1967년작 <조지 다이어의 두상 연구>는 남자의 옆모습을 그린 것인데, 동시에 거대한 입이 그 얼굴을 삼켜버릴 것처럼 표현되어 있습니다. 


프랜시스 베이컨, <십자가 책형을 위한 세 개의 연구>, 1944

사실, 애인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 이전에 베이컨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미친 사건은 1939년 발발하여 1945년까지 이어진 제2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사람들은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바탕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베이컨 역시 전쟁을 겪으며 갖게 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그로테스크한 형태들로 표현하기 시작했지요. 1944년작 <십자가 책형을 위한 세 개의 연구>는 그야말로 고통 속의 존재들을 나타냅니다. 보통 종교화는 삼위일체를 의미하는 세폭화 형식으로 많이 제작되는데, 그러한 형식을 빌어오면서 원래 종교화에 등장해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 대신 푸줏간에 걸린 고깃덩어리들을 그려 넣고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참하게 난도질해버린 전쟁의 끔찍함을 보여주기 위한 방법이었겠지요. 


프랜시스 베이컨, <머리 VI>, 1949

베이컨의 또다른 작품 <머리 VI>입니다. 베이컨은 1949년에 <머리> 시리즈를 제작했는데, 그 중 마지막 그림이에요. 어딘가에 갇힌 듯한 남성이 입을 크게 벌려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고 있습니다. 감옥의 독방을 연상시키는 네모난 공간에서 고문을 받고 있는 것처럼 표현된 이 그림을 보면서, 관람자들은 직접적인 공포감을 전달받게 됩니다. 1945년 봄, 전쟁이 끝난 후 유럽인들은 인간성의 추락을 목격하게 됩니다. 나치가 저지른 믿을 수 없는 만행들을, 시체 더미나 산처럼 쌓여 있는 유대인의 신발 등을 담은 수용소의 기록 사진을 통해 확인하게 된 것이지요. 베이컨의 그림에서 바로 이러한 절망의 감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프랜시스 베이컨,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 초상화에 따른 연구>, 1953; 디에고 벨라스케스,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 c.1650

베이컨의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 초상화에 따른 연구>는 스페인의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가 그린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을 재해석한 것입니다. 스페인의 궁정화가였던 벨라스케스는 고위성직자임을 나타내기 위해 교황에게 붉은 옷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베이컨은 회개와 속죄를 의미하는 보라색의 옷을 입은 교황을 그립니다. 또한 벨라스케스의 그림에 등장한 교황 의자가 베이컨의 작품에서는 마치 전기고문의자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베이컨의 화면은 고문의자에 앉은 20세기의 교황이 내지르는, 결코 끝나지 않을 절규로 가득 찹니다. 


연극 <마우스피스>의 데클란이 본 베이컨의 그림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그것이 무엇이었건, 처절한 고통을 담은 베이컨의 작품 안에서 데클란은 마음껏 소리지르며 내면의 아픔을 토해내는 자신을 보았던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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