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남편과 함께 배구 경기를 재미있게 보기 시작했다. 특히 여자배구를. 남편은 여자배구가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같이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남자배구가 더 재미있다. 힘이 넘치는 남자배구, 눈 깜짝할 새에 네트를 넘어가는 공을 볼 수는 없어도 강스파이크 소리가 너무나 명쾌해서 쌓인 스트레스를 시원시원하게 날려주는 거 같다. 여기서도 음양의 상호 보완의 원리가 작동하나 보다.
한나아~, 두 우울, 셋!
난 한국도로공사팀과 현대건설팀의 경기를 즐겨본다. 2:2의 상황에서 5세트를 가슴 조이며 듀스, 또 듀스. 김연경도 잘하고 박정아도 잘하고 이소영도 잘하고. 근데 어느 시점에서 나는 깨달았다. 난 배구 경기를 보면서도 경기보다 사람을 보고 있음을.
감독을 본다. 감독의 리더십을 본다. 1점이 아쉬운 상황에서 그 짧은 작전타임 시간을 이용해서 감독이 선수들에게 하는 말과 태도. 군주형, 독재형, 자상한 어버이형,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도 만약 내가 감독이고 코치라면 저 상황에서 나는 선수들에게 어떻게 말할까? 선수들도 이론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텐데.
대부분의 감독들은 선수들을 불러서는 다독이면서 격려한다. 하지만 A 감독은 그렇지 않다. 짜증 섞인 목소리로 선수들을 마구 채근하는 감독이다. “야!!!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하니? 그것도 모르니?” 그래서 난 A 감독을 싫어한다. 저 상황에서 다그친들 그것이 먹힐까? 더 주눅 들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할 텐데.
선수들의 입장에 감정이입이 되면서 너무나 속상하다. 화가 난다. ‘저희들도 잘하고 싶어요’ ‘말로는 저희들도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히딩크 감독, 박항서 감독, 모든 선수들을 아들 대하듯, 동생 대하듯 다독이면서 앞에서는 끌고 뒤에서는 밀고 했을테다.
코트 밖에서 전체를 볼 수 있는 입장에서는 많이 답답함을 느낄 것이다. 얼마나 답답할까? 차라리 내가 직접 뛰는 게 좋겠다 싶으시겠지. 하지만 공을 중심으로 전후좌우 몇 미터밖에 볼 수 없는 상황에서야 얼마나 어렵겠는가 말이다.
최근에 읽은 책 제목들이다. ‘당신이 옳다’ ‘누구도 나를 비난할 수 없다’ 셀 수 없을 정도로 엮여 있는 인연의 인트라망 속에서 한 코가 빗나가면 모든 코가 풀려나간다는 신념 아닌 신념으로 무장한 채, 모든 한 코 한 코를 소중하게 여기느라 나를 소홀히 여기고 살아온 날들.
‘당신이 옳다’는 곧 ‘나도 옳다’의 전체 집합이고, ‘누구도 나를 비난할 수 없다’는 ‘나도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의 치환인 것을. 무엇보다 사람이 먼저임을 절실히 느끼게 되는 장면들이다.
사람이 먼저다.